<루시> 존재냐 소유냐





존재냐 소유냐

<루시>(뤽 베송, SF/액션, 청소년관람불가, 2014)

 

최성수


인간에겐 오래된 꿈이 있다. 현재보다 더 나아진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일이다. 더 나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신의 경지에 이르려 한다. 창세기에 나와 있듯이, 이는 호모 사피엔스의 초기 단계부터 가진 꿈이자 유혹이었다. 진화과정에서 획득되어 이젠 본능이 되어 버린 것인지, 아니면 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신이 되고 싶은 꿈의 한 형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모든 인간은 기능적으로 더 나아지는 꿈을 꾸면서, 결국 신이 하는 일을 할 수 있길 원한다. 특히 에리히 프롬이 지적하고 있듯이, 인간은 존재보다 언제나 소유를 지향하여 왔다. 인간이 기능의 향상을 추구함으로써 마침내 신이 되려는 것 역시 완전한 소유를 지향하는 것일까?

포이에르바흐나 블로흐의 이론을 빌린다면, 이런 꿈은 분명 인간이 가진 한계 때문에 생긴 것일 것이다. 포이에르바흐는 이것을 두고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투사한 결과라 했고, 블로흐는 희망의 이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인간은 자연에 혹은 본성에 순응하기보다 극복하는 길을 선택했다.

투사의 방식이든 아니면 희망의 방식이든, 한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생각하는 존재로서 호모 사피엔스의 특성이라 해도, 한계를 실제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모든 인간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좌절하여 도태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적응하여 살아남기도 하고, 소수는 그것을 극복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발하기도 했다. 금융자본주의사회에서 생존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되는 듯이 보인다.

한편, 컴퓨터 기술의 발달과 이것을 바탕으로 건설되는 스마트 세계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지성을 활용한 기능들은 점점 향상되고 그 가능성은 무한히 뻗어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능을 향상시키는 주체인 뇌에 대한 연구는 의외로 저조하다. 아직도 몇 %가 사용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대략 10% 내외로만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세계를 건설했고 또 계속해서 구성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만일 지성의 중심을 이루는 뇌의 기능을 향상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 <루시>를 태동하게 만든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뤽 베송 감독은 컴퓨터 기술이나 인공지능 기술 혹은 생명공학 기술을 다룬 영화들같이 그동안 기술 개발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다시 말해서 각종 기술 개발과 기능의 향상을 가능하게 하는 뇌 자체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다가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근대 철학적 성찰에 비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근대철학을 태동케 한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주체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고, 결과적으로 자아에 대한 연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등을 가능하게 하였고, 물질세계와는 다른 정신세계의 존재를 말할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인간을 신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기능의 향상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 역시 SF 영화에서 관심을 일으키는 주제이긴 하지만, 뤽 베송은 무엇보다 그런 기능을 가능하게 만든 뇌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루시는 사실 진화과정을 설명함에 있어서 잃어버린 고리에 해당하며 작업가설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화석의 발견 후에 비틀즈의 노래에서 차용하여 붙여진 여성 이름이다. 아직 정확한 존재가 가설적으로만 존재할 뿐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호모 사피엔스를 말함에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가공물이다.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뤽 베송이 자신의 상상을 하나의 작업가설로 삼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아직 과학적으로 확인되진 않았지만, 뇌 기능의 향상을 말하려고 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둘 것을 생각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뇌가 생각하고 추리하고 정보를 처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행동을 통제한다는 점에 착안해서(여기에는 과학적인 환원주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뇌의 기능이 100% 활성화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상상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인간의 현재의 삶의 의미를 조명하려고 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루시>는 인간을 탐구하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뤽 베송이 영화를 통해 제기하고 있는 또 다른 질문은, ‘만일 뇌 기능이 100%까지 이르게 될 때,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이다. 이런 질문을 제기하면서 영화에서는 거의 신 같은 존재를 등장시킨다. 그럼으로써 인간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신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게 했다. 다시 말해서 영화에서 보는 뇌 활용에 있어서 100%에 이른 존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존재로서 보이지 않으나 어디에나 있다. 이것은 현대 신학에서 말하는 신에 가깝다. 특히 지성으로서 신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뤽 베송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신은 결국 인류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돕는 존재로 부각된다. 그들의 삶을 돕고, 지식의 향상을 돕는다. 뇌 기능의 향상으로 결국 인간은 완전하게 인간을 돕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향상된 기능으로 욕망의 노예가 되어 끝없이 소유를 추구하는 대신에 타인을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소유보다는 존재를 지향하는 사회, 이것이 뤽 베송이 과학적인 상상력을 통해 제시하는 신학적이면서도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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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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