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12척의 진실



12척의 진실

<명량>(김한민, 드라마,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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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대의 장점은 영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과거의 사건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읽지 않고 영화적인 재현을 통해 보는 일은, 비록 역사 왜곡의 가능성을 피할 순 없다 해도, 역사에 대한 뜨거운 기억(hot memory)을 위해 대단히 유익하다.

명량해전은 이순신을 성웅으로 만든 대표적인 해전이다. 다른 해전들에 비해 명량해전이 특별히 유명한 까닭은 12척의 배로 300여척 이상의 배를 몰고 온 왜적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비교되는 숫자에 놀라고, 전쟁의 순간에 발휘된 지략에 놀라게 되며, 왜적의 장수마저 압도하는 리더십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최단기간에 1000만 관객을 훌쩍 넘긴 영화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물론 부정적이긴 하지만 상영관을 독차지하는 스크린 숫자에도 놀라게 된다.

<명량>의 흥행과 관련해서 영화를 보는 다양한 시선을 보면 흥미로운데, 그 가운데 필자의 주목을 끈 것은 영화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의 진정성을 묻는 질문이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인지 아니면 영화에 대한 관심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필자가 생각하건대, 영화적인 결함은 역사적인 사실이 덮어주고,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관심은 현실에 대한 관심 때문에 증폭되었다. 다시 말해 역사도 영화도 아닌 현실에 대한 관심이 영화에 투사되어 나타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역사와 영화가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지만, 영화에 대한 감동에는 무엇보다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리더십 부재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명량해전은 모두가 반대하는 싸움일 뿐만 아니라 어명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순신이 전쟁을 불사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래저래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는 절박한 마음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면서 또한 다른 사람들이 이순신과 다른 점은 남아 있는 12척을 보는 시선이었다.

사람들에게는 12척 밖에 안 되는 배였지만, 이순신은 아직 12척이나 남아 있다고 보았다. 물 컵의 1/2을 보고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들과 아직 반이나 남았다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다른 것처럼, 이순신의 시각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달랐다. 한층 더 나아가서 그의 시각은 긍정적인 사고를 넘어 종교적이었다. 다시 말해 그의 담대함은 12척 뒤에 작용하고 있는 초월적인 힘에 의지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종교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긍정적인 시선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아님을 시사한다. 오늘 우리가 역사를 보고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이 이순신으로 하여금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해주었느냐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미 임금의 버림을 받고 고문을 당해 만신창이가 된 몸 상태였다. 이순신의 진심을 뒤늦게 알고는 다시 3도 수군통제사로 보냈지만, 남아 있는 배는 12척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남아 있는 배 12척을 보고 또 왜적의 배 300여척을 보곤 전쟁불가를 외쳤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이순신은 보았던 것 같다. 12척의 배를 지지하고 있는 천심이었다. 곧 그것은 백성들에게 있는 천심이었고, 천심을 품고 있는 백성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책임감이었다. 천심에 따른 책임감 때문에 그는 주어진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의 결단을 할 수 있었다.

이순신에게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은 단지 병법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경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의 종교적인 고백이었다. 현실로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종교적인 신앙고백이었다. 감독이 모친의 위패 앞에 자주 서 있는 이순신의 모습을 연출한 이유도 바로 이점을 부각시키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종교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예수님도 마16:25에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12척에 대한 믿음은 현실적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에 대한 믿음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감독은 울돌목에서 일어난 자연현상은 물론이고 백성들이 도운 것을 천행이라 여긴다는 대사를 삽입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명량은 논리적으로는 더 이상 재현될 수 없는 전설이 되었지만, 12척을 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드러나는 바, 믿음이 승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면, 오늘날에도 재현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백성들에게 있는 천심에 대한 믿음, 바로 이 믿음에 따라서 이순신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보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볼 수 있다면, 두려움을 넘어 용기를 갖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현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과연 논리적(혹은 합리적)인지 아니면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인지를 꼼꼼하게 따져보되, 무엇보다 믿음에 바탕을 두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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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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