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가족




노년의 의미

<동경가족>(야마다 요지, 드라마, 전체관람가, 2014)

 

은퇴는 결코 잉여가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일이다. 직책에서 물러난다 해도 할 일이 없어지진 않고 또 다른 삶을 위한 관문이다. 그런데 비록 잉여는 아니라도, 사실 은퇴 후 잉여인간의 대접을 받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회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현실은 직장을 사명 혹은 소명으로 알고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잉여로 여겨질 수 있다. 더군다나 만일 경제적으로나 건강상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게 된다면, 잉여의 차원을 넘어서 가능한 한 빨리 내려놓아야 할 짐으로 여겨진다. 백발의 지혜를 영광으로 여기는 시대는 분명 지나간 것 같다. 잉여도 짐도 아니라면, 노년의 삶은 무엇을 의미할까?

최근 들어 노년의 삶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는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그만큼 노년 세대가 우리 사회의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는 말이겠다. 특히 노년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의 문제를 다룬 영화에는 <아무르>는 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한국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었다. 박범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은교>는 나이듦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영화다. 노년층이 두터워지는 때에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가족영화의 대가로 알려진 야마다 요지 감독 역시 이 문제를 두고 고심했던 것 같다. 그는 오즈 야스지로의 대표작인 <동경 이야기>(1953, 2014년에 디지털로 복원되어 개봉)를 개작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영화로 표현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섬에서 살던 노년의 부부가 자녀들이 사는 동경으로 여행을 왔다. 말이 여행이지, 사실 자녀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도착역에 대한 정보가 달라 처음부터 서로 어긋나더니, 자녀들은 자기들의 일정 때문에 부모와 함께 보낼 시간을 내지 못한다. 자녀들 중에 의사로서 가장 잘 나가는 장남은 진료 때문에 바쁘고, 부모로부터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티를 물씬 풍기는 둘째인 딸 역시 미장원 일로 분주해 여행을 안내할 여유가 없다. 심지어 집에서 치르는 모임 때문에 부모를 호텔에 모신다. 부모의 여행안내를 맡게 된 천덕꾸러기 막내아들은 제 앞가림을 제대로 하고 못하는 것 같아 늘 부모의 근심거리다 보니 함께 있어도 결코 맘이 편하지 않다. 막내아들과 함께 난생 처음으로 동경을 여행하며 신기한 것들을 많이 경험하지만, 즐거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다. 동경에 온 목적이 단지 여행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급기야 엄마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동경 여행은 엄마의 마지막 여정이 되었다.

<동경가족>은 다른 작품을 원작으로 해서 개작된 것이나 내용이 독일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도리스 되리, 2008)과 너무 유사해 이것을 염두에 둔 작품이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다. 독일과 일본 동경을 배경으로 하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생의 한 가운데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며, 그리고 사랑하는 죽은 자에 대한 기억에 힘입어 삶의 또 다른 차원에 대한 경험을 다룬다. 이에 비해 <동경가족>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더불어 삶의 또 다른 차원을 경험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특히 가족 안에서 전개되는 노년의 삶을 통해 그것의 의미를 성찰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다시 말해서 앞서 제기된 질문과 관련해서 <동경가족>을 통해 드러나 구체적인 질문은 이렇다. 직장에서 은퇴한 노년의 삶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녀들을 둥지에서 떠나보내고 난 부모의 삶은 무엇을 의미할까? 또한 홀로 남은 노년의 삶은 무엇을 의미할까?

은퇴 후 동경을 방문한 노부부는 자녀들이 한편으로는 여전히 부모의 관심과 손길을 필요로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아야 했다. 자녀들의 삶에는 더 이상 자신들이 머물 공간이 충분하지 않음을 확인해야 했으며, 또한 자녀들 때문에 갖게 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미련을 떨쳐버려야 함을 깨닫는다. 노년은 지키고 또 얻는 것보다는 놓아야 할 것이 많은 시기다. 영화 이야기에만 제한해서 본다면, 노년의 삶은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노년의 삶 역시 독립적인 삶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아내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의 남편이 홀로 남아 생활하는 것으로 영화가 마치고 있다는 점은 이것을 더욱 강하게 어필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층의 인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는 상황이기에 충분히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특히 직장을 사회에 기여하는 사명으로 알고 살았던 사람에게 은퇴는 사회가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은퇴 후 노년세대가 느끼는 상실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년 시대를 위한 목회를 고민해야 할 때다.

 


카카오스토리 구독하기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미지 맵

    웹진/문화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