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복지논쟁과 교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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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복지논쟁과 교회의 역할

 


 

성석환(문선연 객원연구원/안양대)


한국의 차기 총선, 대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분명 '복지'이다. 지금도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을 두고 한 치 양보 없는 공방이 정치권뿐만 아니라 경제계나 문화계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성숙해지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제는 단지 법과 제도라는 형식적 틀만이 아니라 서민들의 살림살이와 생활복지의 수준이 향상되어야 할 간계에 와 있다.

사람들은 정치적 명분이나 역사적 대의보다는 일상적인 삶의 수준이 개인의 행복지수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유권자들의 욕구를 재빠르게 간파하고 최근 복지를 정치적 이슈로 삼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복지정당임을 주장하면서 서민의 복지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한다. 도식적으로 구분하면 한 쪽은 보편복지, 한 편은 선별복지를 주장하면서 전선을 넓혀가고 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같은 수준의 복지를 누릴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공적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전자의 입장이라면, 후자는 안 그래도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부자에게도 같은 혜택을 주기 위해 세금을 낭비하는 것은 복지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양 측은 서로 다른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어서 이 논쟁은 또 다시 전 국민을 양 쪽으로 갈라놓고 있다.

사실 정치권의 논쟁을 보면서 이들이 진정으로 국민의 복지를 걱정하고 있는지 의심이 간다. 이 논쟁들은 복지예산의 배분이나 수혜대상의 범위 등에 대한 거시적 측면만 다루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복지로 실현되려면 아마도 꽤 시간이 흘러야 할 것처럼 보인다. 모든 논의를 편 가르기로 환원시켜버리는 꼴사나운 정치놀이에 일부 기독교 인사들까지 가세하면서 교계도 양 쪽으로 지지층이 갈라진다.

서구의 복지사회가 본격적으로 정착된 것은 20세기의 대공항과 세계대전을 겪은 후 국가가 공공정책을 복지적 차원에서 실행하여 자본과 인간의 욕망을 계획적으로 통제 혹은 권장할 필요성을 강력히 느끼게 되었다. 특히 끔찍한 전쟁의 기억은 도덕적인 것들과 공적인 것들을 보다 더 보편적인 가치로 고양시켜야 한다는 합의로 이끌어내었다. 근대시대는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것들로 시작되었던 고로 사회적 공동체의 복원이 목표가 되었다.

적어도 60년대 신, 구세대의 문화적 충돌이 격렬해지기 전까지는 전후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동의했기 때문에 공동체적 사회보장제도가 꾸준히 발전했다. 문제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그러한 명분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 정의 등이 더 중요했다. 이전 세대가 공동체적 가치를 주장하면서도 아무런 명분 없는 전쟁에 동참하는 것이나 해결되지 않고 있었던 인권문제 등은 국가의 과도한 역할을 의심하도록 했다.

결국 80년대 후반부터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정책은 개개인의 자유와 국가역할의 축소를 내세우며 모두가 비슷한 수준의 경제규모로 살아가도록 하는 정책보다는 각자가 능력에 따라 선택적으로 지원받는 능력본위의 정책을 더 효율적인 것으로 선호하게 되었다. 겉으로 볼 때는 이것은 경제정책의 전환이었지만 실제로는 지구사회의 가치적 전환이었고 이제 사람들은 이전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기억을 거의 상실해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미국발 경제위기는 다시 국가의 역할에 대해 숙고하게 만들었고 능력과 효율성에만 기대는 정책으로는 경제적 성장조차도 건실하게 진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버린 사회적 불공평과 빈부격차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별다른 대안을 발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미 사람들은 사회의 만연한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한꺼번에 이룬 보기 드문 나라로 주목받는다. 세계 1등 상품도 많고 문화적 역량도 대단하여 국가 브랜드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답답한 현실이다.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만과 갈등이 높아지고 있으며 고용불안이 심각하여 양질의 일자리가 날로 줄어들고 있고 일부 계층의 사치와 낭비를 마치 이상적 삶인 것처럼 선전하는 천박한 태도가 만연하다.

기왕에 한국적 복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 자체는 다행이다. 또 이 흐름과 함께 기독교계에서도 최근 공공신학이나 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이 두 흐름을 연결하여 한국적 복지의 미래에 대해 몇 몇 단체나 기관에서 신학적 토론의 자리를 마련한 것은 의미 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개교회나 그리스도인 개인들을 이러한 논의와 실천에 어떻게 동참하도록 하느냐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적 불공평이나 공동체적 삶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신뢰를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 실제적으로는 민간부문의 복지를 상당히 많은 부분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교회가 우리사회의 공동체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보다 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바라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의 복지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교회가 무엇인가 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과 미국의 타락한 물신주의를 고발하면서 공적 대화를 복원하고 과거 유럽적 복지사회의 이상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토니 주트(Tony Judt)도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에서 더 이상 특정 종교계의 일방적인 목소리가 권위를 가질 수 없는 다원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지도자들과 종교계의 도덕적 가르침과 공동체적 삶의 모범은 매우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한국적 복지실천에 동참하고 기여할 수 있을까? 한국적 복지논쟁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주민의 참여나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하는 지역공동체 형성 모델이 아니라 관주도의 일방적이고도 정책적인 차원에서의 논의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겪으면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점에서 국가가 적절하게 자본을 통제하여 사회적 불공평을 해소하는 일에 재원을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과거 계획경제 시절처럼 국가가 모든 원칙과 룰을 정해주는 방식은 곤란하다. 이른바 거버넌스 형태의 논의구조와 지역주민 혹은 지역사회 주도의 실천구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바로 지역사회와 주민의 주도적 참여를 방해하는 모든 자본논리를 차단하고 공정하고 공평한 실행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인 것이다. 또한 바로 여기에 교회가 함께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역의 현안을 교회의 선교적 과제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지역사회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이나 당국과의 의사소통에도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소외된 이들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와 돌봄에도 탁월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 모든 일은 한국적 복지논의의 질을 한층 높이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높여 선교적 의미도 크다.

교회는 여당의 안이나 야당의 안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여 지지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더 성경적인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보다 더 근원적인 질문에 서서 답해야 한다. 몇 해 전 빌 게이츠가 세계 최고의 석학인 하버드 졸업생들에게 그들의 지성과 실력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세계에 만연한 불공평을 줄이는 일에 사용해 달라고 호소했던 것을 기억한다.

복지논쟁은 다만 정치적 논쟁거리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 원하느냐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하며, 교회는 무한대의 탐욕과 이기적 소비가 조장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성경적 가르침과 공동체적 가치를 중심에 두는 복지정책을 공론화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지금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고 후손들의 삶에 대해서 또 통일 이후 한민족의 미래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어떤 당파적 치우침도 없이 이 논의에 기여할 주체가 필요한데, 시민사회나 지식인들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아 보인다.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으로 본인들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또 교회가 당장의 성장보다는 지역사회의 공동체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에 재정적, 선교적 참여를 확대한다면 오늘날 한국사회의 소모적 복지논쟁과는 다른 대안적 논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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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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