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미>




욕망의 극대화는 작은 일탈에서 시작된다

<에너미>(드니 빌뇌브, 미스터리/스릴러, 청소년관람불가, 2014)

 

캐나다 출신의 드니 빌뇌브 감독은 <그을린 사랑>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2012년 영국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모슬렘 지역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이었던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영화다. 비극적인 이야기 자체가 주는 인간학적인 의미도 심오하지만, 관객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숨겨 놓고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내어 끝까지 긴장감을 풀 수 없게 만든 연출력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영화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나 자신과 똑같은 생물체)를 원작으로 한다. 소설을 영화화 하면서 각종 심리묘사를 압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영화는 주로 아담 벨(제이크 질렌홀 분)의 판타지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결과적으로 소설은 두 명의 동일한 인물이 서로 만남으로써 일어나는 심리적인 긴장감과 파열음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매력을 주는데 비해, 영화는 서로 동일한 모습을 가진 남자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긴장감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남성들의 성적인 판타지에 집중한다.

제목이 도플갱어가 아니라 에너미로 된 것은 나와 또 다른 나의 관계가 상반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내가 또 다른 나에 대해 갖는 생각의 핵심을 잘 표현해준다. 다시 말해 거대 도시에선 괜찮은 직업을 가졌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고 또한 수많은 군중들 가운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도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현실의 나에 대해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 현실과는 전혀 다른 삶을 꿈꾼다. 현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려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또 다른 나가 나의 현실을 부정하도록 허락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거나 혹은 이중인격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 의해 상상되는 또 다른 나는 비록 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 해도, 현실의 나와의 관계는 언제나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나의 연인과 동승하고 있는 또 다른 나인 앤서니가 타고 있는 차가 교통사고로 뒤집혀 지는 모습은 현실의 나가 또 다른 나에 대해 적대감을 표현한 장면이다.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면서 특히 이중적인 존재의 긴장감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감독이 가진 중심적인 질문은 이렇다. 만일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게다가 서로에게 여자가 있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영화에서는 또 다른 나인 3류 배우 앤서니가 도발적인 제안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이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방어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는 남자의 잠재의식이 앤서니라는 캐릭터로 투영된 것이다. 그의 제안은 하루 동안 서로의 여자를 바꾸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아무리 상상력이라 해도 아담 벨은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와 성공적인 잠자리를 갖는 것을 허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결국 두 사람이 파열음을 갖게 만들고 또 두 사람 모두를 현실에서 제거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 형태로든 현실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면서 지극히 평범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기회로 삼으려는 의도를 관철시킨다.

소설과 다른 상징체계를 동원하고 또한 스토리텔링을 변형해가면서까지 감독이 소설에서와 달리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과 관련해서 먼저 영화포스터에서 얻는 주요정보가 있다면, 한 남자의 머리 안에 메트로폴리스의 모습과 거대 거미가 있는 것이다. 안개에 휩싸인 거대 도시와 거대 거미가 공존하는 세계, 이것은 아담 벨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의 잠재의식을 표현한다. 따라서 거대 도시와 거대 거미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아는 것이 영화를 이해하는 관건이다.

이 영화를 단순히 남성의 성적 판타지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거대거미가 주는 상징 때문이다. 거대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일어날 수 있는 일탈에 불과하지만, 그 결과는 거대 거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극대화되는 것은 결국 작은 일탈로부터, 아니 상상 속의 일탈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흔히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작은 일탈을 꿈꾸고 실행에 옮기지만, 그것이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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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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