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박세종] 할로윈데이와 기독교 신앙 - 의미와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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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데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아름답게 형형색색 옷을 갈아입고 한 해의 결실을 마음껏 뽐내는 가을, 때 아닌 놀이동산, 어린이 공원 등에서 할로윈 축제를 실시한다는 간판들이 지하철, 방송 매체를 통하여 홍보되고 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그 광고판을 보면서 “야 우리도 이번에 할로윈 축제에 가보자, 푸짐한 상품까지 있대!”라고 서스럼 없이 말을 주고 받는다. 이 할로윈 데이가 언제부터인가 한국에 하나의 빼빼로 데이처럼 축제의 자리로 잡게 되었는지 우리는 그 의미를 되돌려 보아야만 한다. 이런 할로윈 축제가 하나의 건전한 문화로 자리잡아야 하는지 아니면 그에 대한 문제점은 없는지 돌이켜 보고자 한다.

 

1. 기원

 

할로윈(Halloween)이라는 말은 Hallow라는 Holy(거룩한, 성스러운)라는 옛 영어이고, Eve(ning)이라는 말은 전야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할로윈이라는 말은 “Allhallows Eve(ning)”이라는 말, 즉 거룩한 전야라는 뜻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켈트족 문화의 영향이다.

슬라브, 게르만, 라틴족과 같이 유럽의 4대 민족의 한 민족으로 남아 있는 켈트족은 로마인에게 쫓기어 북유럽으로 쫓기어 올라가다 아일랜드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 켈트족은 주술사 드루이드 문화를 가졌고, 이는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아더왕 이야기, 그리고 백설공주와 같은 이야기들이 바로 이 켈트족의 문화적 영향 때문이다. 켈트인들이 살고 있는 이 아일랜드가 알프스를 넘어선 중북부 유럽에서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성패트릭에 의하여 이 기독교는 영국으로 전해졌으며 이는 다시 청교도들의 영향으로 미국으로 다시 기독교가 건너가면서 이 켈트문화는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켈트족의 달력으로 그들에게 있어서 신년은 11월 1일이고, 그 전날 밤인 10월 31일은 우리식으로는 섣달 그믐 즉 한 해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가을의 수확에 대하여 감사하고 축하하며 풍요로운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이 날 밤 모든 악령과 악마를 몰아내고 새해에는 행운과 풍작을 기원하는 의식을 올렸다. 이것이 바로 할로윈 축제의 기원이다.

 

다른 하나는 카톨릭적 유래이다. 카톨릭에서 지칭된 모든 성자들의 날로서 거룩한 이들을 위한 회상의 날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은 11월 1일 날 시행되는 카톨릭 교회의 축제로서 이미 받아들여져 있었다. 이 날은 원래 5월 13일 이 성자들의 날로 기념하고 있었는데, 교황 그레고리 3세에 의하여 11월로 옮기워 졌고, 8세기 경 로마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위한 예배로서 드리는 형태로시작되었다. 나아가 998년 클루니에 있는 수도사 St. Odilo에 의하여 모든 성인들의 날로 정해져 지금까지 지켜져 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 날 10월 31일을 purgartory(영혼이 정화되는 날)로 의미되어지기도 한다.

 

2. 한국의 대중문화의 형태로 자리잡은 할로윈 축제의 의미와 반성

 

이 할로윈의 축제 형태 가운데 우리가 살펴볼 것은 바로 의식(ritus)이다. 호박, 오이를 도려내 등불을 만들고 짚과 말린 보리자루 등으로 허수아비와 동물들을 만들고, 으시시한 가면을 만들어 쓰고, 악령과 귀신을 놀라게 해 퇴치하는 의식이다. 각 놀이동산, 공원, 그리고 백화점 등에서 매년 이 맘 때면 야심차게 할로윈 축제를 준비하여 이와 같은 의식의 의미도 모른 채 유사한 모습을 갖추고 함께 놀이마당으로 초대되어지고 있다. 이는 귀신과 유령 그리고 마귀와 같은 모습과 의상을 귀엽고 특이한 할로윈 축제기간만이 가질 수 있다는 현란한 광고와 문구가 사람들에게 귀신과 유령을 퇴치나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친숙의 대상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이것은 우선적으로 철저하게 숨겨진 대중문화를 이용한 상업적 수단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업적 수단아래 많은 대중 문화는 단순히 축제의 일부이고 서양에서 유입된 건전한 전통적인 문화형식의 일부로 인식기하기 쉬우며 무엇보다 신앙인으로서 이러한 대중문화를 그냥 무분별하게 방치할 경우 기독교적 신앙사고에 반하는 사고로 서서히 의식화 되어져 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할로윈 축제와 같은 행사를 단순히 대중문화적 요소로 넘어가게 만들어도 좋은가? 이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살필 수 있다.

 

하나는 귀신론이다. 성서는 귀신을 놀이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없다.  잘못하면 귀신 복장을 하고 드라큐라나 귀신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고 이러한 것이 신앙인들에게 오히려 신앙적인 위협과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다만 물리치고 퇴치해야 할 상대요, 함께 하거나 즐길 수 있는 도구가 아닌 것이다.

 


다른 하나는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의 날이다. 이는 개신교의 생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의 잘못된 구습과 전통에 대항하여 마르틴 루터가 자기의 삶의 정점에서 목숨을 걸고 비단 비기독교적인 부분을 타파하고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슬로건을 내걸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날이다. 그런데 이 종교개혁의 날에 잘못된 문화축제가 즐거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그 문화와 의식은 단호하게 배척이나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함께 어울려 즐기는 형태는 절제되고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개신교에서는 이 날을 종교개혁의 날을 더욱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독일의 많은 교회에서는 도리어 이 날은 루터의 사탕(Luther’s Bonbon)을 만들어 나누며 즐긴다.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루터의 사탕을 함께 나누며 종교개혁의 의미를 가르치고 되새기게 만든다. 도리어 할로윈의 축제로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종교개혁의 날로 축제의 의미를 즐겨 보는 것은 어떤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유와 당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올곧은 성서적 문화관을 갖는 것이다.  문화는 삶의 자리이기에 문화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형식은 곧 신앙과도 직결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10월 31일, 루터의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며, 참 신앙의 회복을 다지는 날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이 하루 비록 재해석되었다 할 지라도 그 유래가 성서적이지 못하였던 Halloween의 즐거움을 따를 것인가? 우리도 독일의 루터의 사탕처럼 이와 유사한 의미적 행사를 각 교회마다 만들어 보면 어떨까? 되새겨 볼 일이다.

 

박세종|본원 객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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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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