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최성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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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한 단상


최성수(신학박사, 영화및 문화평론가, 시인)



최초 퍼블리싱 이후 5주가 넘은 지금까지도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이슈가 되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은 물론, 이에 발맞춰 대중음악 평론가들로부터 쏟아지는 이런저런 논평들이 우후죽순으로 인터넷 음악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는 현재 조회수 5000만 고지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는 소식도 나온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인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유투브, SNS 같은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한 배포가 첫 째다. 물론 이와 같은 방식의 배포가 이번에 처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약 5년 전 원더걸스의 소속사 JYP가 ‘So hot’을 다음(DAUM) 팟 플레이어라는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배급한 사례가 있다. 차이라면 다음은 국내에서 다수의 사용자들을 확보하고 있었고, 유투브의 경우는 전 세계 수 억명의 유저들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방식의 배급을 통해 성공한 사례 또한 이미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이번에 ‘강남스타일’을 보고 싸이에게 러브콜을 보낸 미국의 팝스타 저스틴 비버를 들 수 있다. 그는 유투브를 통해 성공한 인터넷 플랫폼의 수혜자이다. 하지만 이번 ‘강남스타일’의 흥행이 국내에서만큼은 이례적인 사례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국내의 대형 소속사들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자해 미국진출을 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손쉽게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번 성공을 단순히 용이한 접근성 혹은 배포 플랫폼의 덕으로 판단하는 것은 반쪽짜리 정답에 불과하다. 사실 ‘강남스타일’의 인기, 특히 미국에서의 인기는 최근 미국 대중음악의 경향과 대중들의 취향과 깊이 맞물려 있다. 다시 말해서 특별한 주제의식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감각적인 경쾌함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선호하는 경향을 말한다. 포스트모던한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꼽히는 이런 현상은 현재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혹자들은 ‘강남스타일’의 인기가 강남지역의 특징, 가령 부동산이나 강남 8학군과 같은 대한민국 강남이 쥐고 있는 권력을 비꼬는 해학과 풍자에서 나온다고 말하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이 곡이 국내 음원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인기는 사실 그리 괄목할 만한 것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해외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조금 더 찾아보게 되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여타 아이돌 음악과 비교해서 상당히 낮은 인지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들이 강남이라는 지역이 대한민국에서 쥐고 있는 여러 가지 권력들의 복잡다단한 구조를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어느 면으로 보나 강남의 권력이란 국내에 국한된 힘이기 때문이다. ‘강남스타일’의 인기는 오히려 ‘강남’이라는 레토릭을 기존의 의미보다 훨씬 더 가볍게 파악해야만 그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강남스타일’의 흥행 원인은 굉장히 직관적인 유머 코드에 있다는 것이다.

직관적이고 코믹한 가사에 익숙한 일렉트로닉 음악, 거기다 연신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우스꽝스러운 뮤직비디오. 사실 미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스타일의 음악들이 이전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The Lonely Island’라는 팀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소재로 하고 있는 아이템들은 성적인 농담이나 유명 스타를 오버스러운 제스처로 재해석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농담은 사실 풍자나 해학과는 거리가 먼, 직설적인 음담패설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익숙하고 흥겨운 복고풍 일렉트로닉 음악에 얹힌 코믹한 뮤직비디오. 그리고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멜로디. 게다가 상식적인 세련됨을 뒤집는, 말 그대로 기가 막히는 코믹함이 있기 때문이다. ‘강남스타일’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대중들의 취향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찬찬히 뜯어보면 평론가나 문화 논평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코드들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실제로 ‘강남’이라는 권력을 이해한 상태에서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우리는 조금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재력을 바탕으로 한 세련된 스타일을 뒤집어엎는 유머러스한 장면들은 강남이 갖고 있는 문화 권력을 전제하고 보는 이들에게 일종의 통쾌함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직 그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고급문화를 키치적으로 끌어내렸다는 평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다소 무거운 평가는 음악을 듣고 즐기는 이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강남스타일’이 ‘강남’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어느 면으로 뜯어보나 그런 무거운 의미의 ‘강남’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나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가 언제부터 강남에서만 발견되는 기인이던가. 여기서 ‘강남’이라는 이미지는 다만 하나의 ‘뉘앙스’로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예전에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 등장했던 “압구정 스타일”이나 그 후에 이어지는 각종 스타일리쉬한 의상으로 코믹함을 선사했던 개그우먼들의 개그도 강남 스타일을 표방했었다. 이렇게 보면 “강남스타일”은 멋쟁이에다가 놀 때 화끈하게 잘 노는 그런 사람. 개성있고, 개인주의적이며, 인기 있는 남녀들이 운집하는 곳의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개그에서 독특한 의상으로 표현했던 것과는 달리 싸이는 말춤과 단순한 랩 그리고 중독성 짙은 멜로디를 통해 ‘싸이 스타일’로 재해석해낸 정말 싸이다운 음악이 바로 ‘강남스타일’인 것이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이 음악에 대해 어떤 말을 갖다 붙여도 그저 촌스러운 수사가 될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강남’의 권력을 조롱하는 듯한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낀 이들은 나름대로 그것을 즐기면 되는 일이고, 그것이 아닌 정말 ‘싸이 스타일’의 음악을 즐기고 춤추길 원하는 이들은 또 나름대로 그 음악을 즐기면 되는 일이다.

특히 “강남스타일” 현상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SNS와 유투브의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데, 현대 문화의 생산과 유통과 소비에 있어서 미디어의 역할을 단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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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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