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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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으로서 성공적인 육아의 세 가지 이유

<늑대 아이>(호소다 마모루 감독, 애니메이션, 판타지, 전체, 2012)

 

 

<늑대 아이>는 아름다운 그림과 음악은 물론이고 과감하게 생략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스토리 전개로 인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러나 같은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고레에다 히로카즈, 2004)와 비교해볼 때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1988년 일본 열도를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던 스가모 아이 방치 사건으로 알려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파트에 버려진 네 아이들의 힘겹고 비참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싱글맘이었던 아이들의 엄마 역시 처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한 후, 그녀는 자신의 삶을 위해 미련 없이 아이들을 떠났다. 남겨진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비참한 삶의 편린들을 보면서 그리고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면서 제일 먼저 든 의문은 ‘무엇이 그녀를 떠나게 만든 것일까?’였다. 분노에 앞서 공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 단서들을 떠올리긴 했지만, 동일한 입장에 설 수 없었던 까닭에 단정할 수 없었고, 강한 감동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해 깊은 감동을 글로 옮길 수 없었다.

그리고 <늑대 아이>를 보았다. 자녀들과 함께 홀로 남은 엄마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먹고 사는 문제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늑대 아이>는 특별히 싱글맘으로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특별히 ‘늑대’는 유럽이나 북미의 전설이나 설화에서 버려진 혹은 저주받은 존재를 상징할 때 많이 사용된 대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늑대 아이>는 바로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또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아이들을 부각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지메 현상이 심한 일본 사회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일임을 명심한다면 충분히 공감하며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강의실에서 늑대와 인간의 피를 가진 청년을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여대생 하나는 눈 내리는 날에 유끼를, 비 오는 날에 아메를 낳는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메를 낳고 얼마 후에 시체로 발견된다. 남편의 실체를 밝힐 수 없었던 하나는 싱글맘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두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하나는 도시를 떠나 농촌, 그것도 외딴 지역에서 아이들을 키우게 된다. 아이들을 위해 결정한 일이지만, 농촌에서의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다. 외딴 지역에서 평생 해보지 않은 일을 하면서 애를 써보지만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도움은 그녀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런데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하나는 새로운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화가 날 때나 흥분할 때마다 늑대의 모습으로 변하는 아이들이 인간들 틈에서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유끼는 그런대로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만, 아메는 학교보다는 산 속으로 가서 머무는 일을 좋아한다. 결국 인간과 늑대의 두 정체성 가운데서 유끼는 인간을 선택하고, 아메는 늑대를 선택한다. 아이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지켜주기로 남편과 약속했던 하나는 비록 슬프지만 아이들이 각자 자신들의 세계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만족해한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에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조이게 만드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들고 또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까닭은 세 가지다. 첫째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이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하나의 마음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을 단순히 모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앞서 언급한 <아무도 모른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학생활마저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양육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배경에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약속이 있었다. 남편에 대한 기억은 그녀에게 하나의 종교와 같은 것이었다. 둘째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었다. 하나로서는 평생 처음 접해보는 낯선 경험이었고, 그래서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농사일이었다. 다소 투박하긴 해도 도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의 도움은 하나가 새로운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마지막 셋째는 아이들의 양육 문제에서 겪게 되는 정체성 문제를 아이들의 선택에 맡긴 것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일이었을 뿐, 고민과 결정은 아이들 스스로에게 맡긴 일이었다. 한국의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만일 이 일에 있어서 하나가 직접 나섰다면, 영화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결정과정을 지켜보면서 받아주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부모의 입장으로서는 개입하며 참견하는 것보다 더욱 힘든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영화는 사회적인 편견으로 결코 평탄한 삶을 살 수 없는 환경과 위치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아이들을 키우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그런 상황에서 올바른 양육은 어떻게 가능한 지를 스케치한다. 영화가 감동적인 까닭은 결코 비극적인 혹은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힘겨운 삶의 과정에서 희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와 공동체, 그리고 올바른 양육 태도가 성공적인 양육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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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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