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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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목사님!

<한경직>(천정훈 감독, 다큐멘터리, 전체, 2012)

 

 

오랜 만에 한국 개신교 측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가운데 제대로 된 작품을 만난 것 같다. 그동안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만들어진 몇 편의 작품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영화 미학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깊은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고 한경직 목사의 신앙과 사역을 보여주면서 주제의식도 분명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성찰해야 할 내용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각종 스캔들로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한국 기독교가, 특히 목회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어떤 자세로 목회를 해야 할 것인지를 제대로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 몇 년 사이에 종교계의 큰 별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를 비롯해서 불교계의 법정,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개신교의 한경직 목사이다. 앞의 세 분에 대한 영상은 고인이 되기 전부터 준비되었던 것이라 장례 직후에 개봉되었지만, 개신교 측에서는 전혀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영상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것인지 12년이나 지나서야 제작되어 개봉되었다.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생애가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것은 그만큼 종교계나 사회에서 비중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종교계의 신화 혹은 영웅 만들기는 아니다.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종교인으로서 누구나 거울로 삼고 살아야 할 본을 몸소 실천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종교를 떠나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미친 보편적인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울지마 톤즈>는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지역 사람들을 위한 이태석 신부의 사역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제작되었고, <법정 스님의 의자>는 법정의 무소유 영성을 환기하는 빈 의자를 중심 이미지로 삼아 그의 삶과 사상을 보여주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사역은 <바보야>라는 제목으로 다뤄졌는데, 이것 역시 그가 평소에 선호했던 이미지 ‘바보’를 따라 붙여진 제목이다. 이에 비해 <한경직>은 이름 자체를 제목으로 삼았다. 제목에서부터 ‘한경직론’ ‘한경직은 오늘 우리에게 누구인가’를 묻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경직론’이라고 하기에는 내용적으로 부족하지만, 여하튼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데에는 그를 상징할 만한 이미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시키기에는 버거운 무엇인가를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삶과 사역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목회자의 보편적인 귀감이 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날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영화는 주로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아들을 보내주셔서 하신 사역들을 사회복지와 교육 사업, 교회통합과 선교 분야에서 온 몸과 마음으로 실천한 한경직 목사의 신행일치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요한복음 3장 16절은 그가 가장 즐겨 설교했던 본문이었는데, 연구에 따르면, 한 목사는 평생 이 본문의 말씀을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로 삼고 실천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즐겨 찾으셨듯이, 그는 평생동안 사회적인 약자들을 돌보고 인재를 키우는 일에 헌신하였다. 그리고 청빈하고 소박하며 정직한 목회자의 삶을 끝까지 살다가 하늘로 부름을 받았다.

영화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한경직 목사는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법정의 영성이나 사회 정의를 위한 실천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김수환 추기경의 사회정치적인 영성, 그리고 이태석 신부의 봉사와 섬김의 영성을 두루 갖춘 것으로 조명되고 있다. 유산을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돌아가실 당시 개인 소유의 재산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던 것은 무소유의 정신과 일치한다. 물론 국민의 인권을 유린했던 유신정권과 5공 시절에 침묵을 지켰던 점과 그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배경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지만, 그는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던 시절을 살아왔던 경험에 비추어서 무정부보다는 그래도 결함이 있지만 주권이 있는 나라가 한결 낫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침묵만으로 일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화면, 곧 1965년 한일협정 반대에 참여했던 모습과 시국과 관련해서 박정희에게 보낸 연서 등은 어느 정도 오해를 풀 수 있는데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자료에 비추어볼 때, 김수환 추기경만큼 활발하지는 안았어도 정치사회적 영성의 부재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누구도 감히 선뜻 나서서 도움을 베풀어주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복지와 교육 사역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매진한 것은 그의 봉사와 섬김의 영성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다양한 측면을 조명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90여분 동안의 그의 삶과 사역은 그랬다. 이것이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까닭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육성으로 전해지는 “이 세상 살아갈 때 좋은 씨를 많이 뿌려라.”는 메시지에서 엿볼 수 있듯이, 한경직 목사는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당대보다는 후세대를 위해 좋은 씨를 뿌리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그는 진정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신 분이었다.

아, 한경직 목사님, 어디 계신가요?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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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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