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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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에 감춰진 존재

<미운 오리 새끼>(곽경택, 드라마, 15세, 2012)




곽경택 감독은 <친구>(2001) 이후로 줄곧 남자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왔다. 남자들의 거친 삶과 내면의 세계를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서 재현했는데, 그의 열한 번째 영화 <미운 오리 새끼> 역시 대한민국 남성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군대 이야기다. 오프닝 씬에서 곽경택 감독은 자신의 군대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직접적인 배경은 6월 항쟁이 있었던 87년대이나 아마도 80년대에 군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시대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대단히 코믹하고 또 남성들의 단순한 영웅담이나 술안주 역할을 하는 군대 이야기로만 볼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심지어 여성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면, 주연급 스타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매우 복잡한 상황의 이야기를 코믹하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감독의 역량이 그 어떤 작품보다도 십분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낙만(김준구 분)의 아버지로 분한 오달수와 중대장으로 분한 조지훈의 연기는 단연코 돋보인다.

영화가 차용하고 있는 제목은 안데르센 동화 “미운 오리 새끼”이다. 동화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일종의 패러디라고 생각하며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80년대 격동의 한국적인 정치 사회 현실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꿈과 좌절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군대 이야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고, 끈끈한 부자 관계를 읽을 수 있으며, 한 청년의 성장 이야기로도 독해가 가능하다. 때로는 정치 사회 비판적인 안목에서 조명될 수도 있다.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지만 대단히 뛰어난 내러티브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 영화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만일 동화를 패러디 했다고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정체성 문제에 천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주제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측면의 관점을 포괄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므로 영화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정체성이란 한 개인에게 있어서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면을 말한다. 과거에는 모든 인간은 저마다 고유한 특질을 타고 나기 때문에 그것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질에 맞게 살아가는 것을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하며 중시했다. 대체로 자아 정체성이라는 말로 대변되는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형태로 표현된다.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 그것은 자아실현의 가장 우선적인 출발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청소년 시절에 대답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여겼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정체성을 어떤 방식으로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서 정체성의 의미가 퇴색되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체성 자체를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처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과정적인 성격을 강조할 뿐이다. 정체성이란 고정되어 있어서 그것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여정을 통틀어서 성장해나가면서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그러니 삶의 어느 순간의 나를 두고 나의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단지 인간은 각종 환경에 따라 적응해 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이것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말하는 정체성이다.

여하튼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세 가지 방향에서 정체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첫째는 과거를 통해 규정하려고 한다. 여기에서는 조상, 가문, 전통, 출신, 학력 등의 요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의 형성과 전승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과거 지향적이라서 성장 저해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정통주의 혹은 보수주의로 나타나기도 한다.

둘째는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규정하려고 한다. 과거를 배제하지는 않아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누구와 관계하고 있는지를 중시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지금 관계하고 있는 사람을 통해 나의 본질을 규정하려는 것이다. 만족할 만한 상황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체성은 심각할 정도로 흔들린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함부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들을 양산할 수 있다.

셋째는 미래와 관련해서 자신을 이해하려고 한다. 출신과 배경,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또 누구와 관계하고 있는지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미래에 구현될 스스로의 모습을 설정하고, 이것의 실현을 위해 매진한다. 이런 형태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미래지향적이다. 그러나 비전에 부합하는 근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때로는 공상으로 끝날 수도 있다. 비전을 통해 정체성을 추구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선호되는 모습이긴 하나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미래를 위해 쉬지 않고 정진할 뿐만 아니라 경쟁관계에서 결코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가운데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며 쉽게 탈진한다. 재독 한인 철학자 한병철이 주장하는 ‘피로사회’를 초래하는 주요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제는 영화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 동화의 이야기에 관심을 돌려보자. “미운 오리 새끼”는, 오리와 함께 부화한 백조가 오리들과 함께 살면서 미운 오리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지만, 성장해 나가면서 자신이 오리가 아니라 날개가 있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오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백조임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부조리한 현실에서 태어나고 자라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갇혀 살지 말고 현실의 고통을 참고 인내하며 살아갈 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영화 <미운 오리 새끼>를 이해하면서 먼저 정체성 형성의 세 가지 방향을 생각해본 이유는 동화의 주제와 교훈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사회 환경에 따라-오늘날에는 경제 환경도 포함되지만-정체성을 생각할 여유도 없는 시대가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라는 존재가 앞으로 무엇이 되겠는지, 그것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없고 그럴만한 형편도 되지 않는 시대가 있다는 말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는 일이 최선일 때가 있다. 경제문제로 버거운 인생을 꾸려가야만 하는 오늘날 같은 시대가 그렇지만, 사실 과거 우리에게는 그런 시대가 있었다. 과거에 연연해할 만한 전통도 없었고, 그렇다고 낙관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이유도 없으니 희망을 품을 수도 없었다. 무엇엔가 몰입하거나 미치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시대였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면서 민주화의 봄이 온 듯 했지만, 곧 이어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 하며 등장한 5공의 세력들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절망과 좌절의 시대, 술 권하는 사회, 바로 이런 시대에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 의식을 갖고 산다는 것, 시대의 아픔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그저 미운 오리 새끼로 사는 것일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에서 도피하든가, 회색인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도대체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지를 알 수도 없었고 그저 막막한 세월만을 보낼 뿐이었다.

곽경택 감독은 바로 이런 정치 사회 상황 속에서 정체성 문제를 군대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게다가 6개월 방위, 신의 아들이 아니면 도저히 가능하지 않는다는 방위병을 전면에 내세운다. 방위병 낙만은 흔히들 생각하듯이, 빽이 있어서 방위로 근무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전직 사진기자로 활동하다가 전두환이 통치하던 시절에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 이상이 된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에 방위가 된 것이었다. 엄마는 이혼한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정착하고 있다. 현역병에 의해 소외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헌병 방위로 근무하면서도 군인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정도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사역을 해야 하는 신세다. 게다가 훈련병 동기이면서 친구처럼 지냈던 현역에게 방위라는 이유로 결정적인 순간에 모멸감을 당한다. 그렇다고 낙만이 현실에 충실함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군대의 논리대로 헌병으로서 살아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자신의 왜곡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에게 희망이 있다면, 복무기간을 조속히 마치고 엄마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반공이데올로기에 부딪혀 좌절될 위기에 처한다.

도대체 이런 현실, 이런 환경에서 그는 무엇이 될 것이며,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막막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밝은 미래를 제시한다. 정신이 나가 거리를 헤매는 혜림이가 누구의 아기인지도 모를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을 본 낙만은 미운 오리 새끼를 떠올린 것이다. 미친 혜림이의 몸을 통해서 난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지 모르듯이, 정신 나간 아버지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앞으로 자신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백조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갈 그날을 고대하며 다만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미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갈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바로 여기까지다.

정리해본다면, 영화는 암울한 시대에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경제적으로 정치 사회적으로 암울해서 밝은 미래가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절망적인 시대적인 상황에서 도대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한편, 감독이 동화를 패러디해서 보여주고 있듯이, 기독교인의 정체성 역시 동일한 지평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독교인의 정체성 문제는 세상이 생각하는 방향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특히 결과적으로나 현상적으로는 같을 수 있어도, 근거에 있어서 전혀 다르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은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에 좌우되거나 구속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참고 인내하며 노력한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참 모습, 곧 믿는 자로서 우리의 정체성은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될 것이다. 이 말은 어떤 상황에 있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거하고, 그의 약속을 소망하며,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한, 우리는 그 안에서 발견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또 현재 무엇이 아니라고 해서 절망할 이유도 없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순간에라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도 우리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 약속을 굳게 붙잡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인지를 보여주실 것이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미운 오리 새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 안에 감춰진 존재이다. 장차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자로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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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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