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히어로 #9]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일은 해야지: 성직자와 생업



 

 

 

“돈이 없을 땐
하나님 손자라도 일해야지
고픈 배는 채워야지 않겠어”
- from '밥값‘ (넉살의 앨범 ’작은 것들의 신‘)

 

세상에서 돈 버는 일과 가장 관계가 없을 듯한 직종은 성직자가 아닐까 한다. 단지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한다는 수동적 의미만이 아니라, 돈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터부시하거나 금지하는 성직의 전통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넉살의 노랫말처럼, 돈이 없고 배고프면 하나님 손자라도 일 해야 할 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가만 따져보면 생각보다 생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종교 전통도 많이 있다.

 

승려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니시무라 코도

불교를 먼저 보자. 불교의 승려는 전통적으로 별도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에는 꼭 생업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수행의 또 다른 방법으로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승려 니시무라 코도(31세)는 승복을 입고 활동하는 정식(?) 승려이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도쿄 시내 절의 주지스님이라 절에서 자랐지만 어렸을 때는 불교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일본 불교에서는 승려가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미국 유학생활을 하며 동양인으로서 외모컴플렉스에 시달렸는데, 그 때 화장을 통해 새로운 자아실현의 길을 발견했다. 후에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다니며 전문적인 기술을 익히고 뉴욕에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어릴 적 스며들었던 불교의 가르침이 되살아났던 것인지, 근원적인 질문들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 철학적인 질문들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다. 그는 결국 26세에 불교의 정식교육과정을 마치고 승려가 되었다.

그런데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내려놓고 승려를 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일본에서는 승려가 제2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아는 스님 중에는 의사, 감독, 학자인분들도 있다"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리는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DJ 스님 아사쿠라 스님

DJ스님으로 알려진 일본 정토진종 본사파 조은사 주지 아사쿠라 스님은 테크노 법회를 진행하곤 한다. 오프라인 방문자 16만 명, 온라인 방문자 600만 명을 기록한 이 행사에서 그는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함’이라며 테크노 디제잉을 선보였다.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이슬람 이맘와 유대교 랍비

이슬람교의 경우 모스크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제이며 회중 기도의 인도자인 이맘은 원칙적으로 직업이 아니라고 한다. 본래 이맘은 모스크 공동체내에서 선발된 직책이었으며 대부분 교육자, 법률가, 사업가나 상인으로 자신의 직업을 따로 갖고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교파별로 약간 다른데 큰 모스크에서는 직업적으로 일하는 유급 전임 이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나 신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이슬람의 가르침 상, 성직만을 위한 구별된 직업인이 아니라 공동체 내의 일반 생활인 가운데 이맘이 선출되는 것이 더 본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은 유대교도 마찬가지이다. 유대교의 모임 장소인 시나고그에서는 랍비를 중심으로 신자들끼리 모여 율법을 낭독하고 기도를 한다. 이곳에는 원칙적으로 종교를 직업으로 하는 성직자가 없고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학식이 풍부해 리더 역할을 하는 랍비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종파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Yehuda Sabiner는 어릴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가 속한 전통에 의해 랍비가 되기위한 종교교육만 받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우여곡절 끝에 현재(이 사진 당시) 의대 마지막 학년이라고 한다. Guardian지 기사 원문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8/sep/10/i-want-to-be-a-doctor-not-a-rabbi-how-israeli-ultra-orthodox-are-being-drawn-into-work)

 

기독교의 경우

기독교는 어떠한가? 중세 기독교는 성직만을 신이 허락한 1등 인간의 역할이고 나머지 다른 직업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2등 인간의 몫으로 설명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을 깊이 연구함으로서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 모든 직업의 영역에서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혁신적인 주장을 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몸소 그런 삶을 보여주었다. 루터와 그의 아내 카탈리나는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여 생계를 운영하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 펍을 운영하여 술을 팔았다. 마틴 루터는 천재 신학자였지만 글쟁이의 수입이 변변치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아내가 주도해서 이끌어 간 가정의 생업은 그들이 종교개혁을 이루어내는데 말할 수 없이 중요한 부분을 감당하지 않았을까.

루터 맥주

 

이것은 루터의 아내 카탈리나가 양조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녀는 어디서 그 기술을 배웠을까. 사실 그녀는 루터와 결혼하기전 봉쇄수도원의 수녀였는데, 그 수도원에 양조작업장이 있었다. 수녀들은 그곳에서 매일 술을 만드는 노동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의 유명한 술들이 수도원의 양조장에서 제조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자급자곡을 위한 양조였지만 점차 그 지역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를 잡았다.

수도원의 양조장

 

중세 기독교의 대표적인 여성 영성가 중 한 명인 힐데가르트 폰 빙엔도 맥주에 전문가였다. 그녀는 신학과 영성 뿐 아니라, 작곡, 의학, 생물학, 식물학 등 다방면의 연구를 한 학자였는데, 특히 맥주 연구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마시는 것은 물론 맥주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홉을 이용해서 맥주를 오래 보존하는 비법을 발견했기에 경쟁력있는 맥주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

 

현대 기독교에서도 소위 ‘이중직’(목사와 세속적직업을 동시에 갖는)은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내 최대 교단인 남침례교단(SBC)는 목사의 이중직을 미래를 대비한 하나의 전략으로 세우고 있다. 복음주의 언약 장로교단(ECO)의 경우는 이중직을 가진 목회자에게 라이선스까지 발급해주고 있다. 이는 일반인들이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도록 보호하며 이중직 목회자를 독려하고 양산하겠다는 의미이다.

한국에서는 탤런트 임동진씨가 목사와 연기자의 활동을 병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루터교단에 속해 있는데, 루터교단은 목회자가 목회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아마 양조장과 펍을 운영한 루터의 전통을 따른 것이 아닐까.

탤런트 임동진 씨는 목사의 일을 하면서 극단 예맥의 대표 역할을 계속하고 연기자로서도 변함없이 활동할 것이라고 인터뷰했다. 실제로 열린문 교회의 담임목사를 시작하던 무렵 드라마 '대조영'(KBS) 등에 출연하였다. 2015년 70세가 되어 목사의 자리에서 은퇴한 후에도 그는(교단법에 따라 70세까지가 정년) 변함없이 연기자로서 드라마 '장비록'(KBS), '장영실'(KBS) 등에 출연하였다.

사실 기독교 성경에 보면 종교활동만이 아니라 생업을 중시하는 구절이 많다.

- 힘든 노동을 피하지 말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마련하신 농사일을 싫어하지 말아라(집회서 7:15)
- 아무에게서도 빵을 거저 얻어 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러분 중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수고하며 애써 노동을 했습니다(데살로니가후서 3:8).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이 있는 바울의 말이다. 그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도 목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았던가. 역시 히어로들은 자기 직업이 있었다.

천막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바울을 그린 성화

 

종교 생활에 대한 다른 시각, "뭣이 중헌디?"

이렇게 보면 각 종교의 성직자들도 세상과는 담을 쌓고 생업 같은 건 터부시 하면서 종교 생활만 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역사상 이미 세상 속에서 다양한 직업, 자신만의 방식으로 종교수행을 해오던 이들이 있어 왔다.

처음 이 시리즈 ‘취미로 히어로’를 시작하면서 돈이 되는 일만 중요한 게 아니라, 돈이 되지 않아도 소중한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점은 역설적으로 밥벌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밥벌이가 시원찮으면 ‘돈이 되지 않아도 소중한’ 그 일 자체가 지속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밥벌이를 위해 돈을 버는 일도 중요하고, 돈이 되지 않아도 나에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그것도 같은 무게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글쓴이: 이재윤
늘 딴짓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고를 나와 기계항공 공학부를 거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지만, 동시에 인디밴드를 결성하여 홍대 클럽 등에서 공연을 했다. 영혼에 대한 목마름으로 엉뚱하게도 신학교에 가고 목사가 되었다. 현재는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작은 문화공간을 운영하며 Art, Tech, Sprituality 세 개의 키워드로 다양한 딴짓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자음악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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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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