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사랑의 콜센타>를 보다가 울컥했다. <미스터트롯> Top7 출연진들의 노래와 끼에 흥이 한창 무르익을 때였다. 통화가 처음 연결되었을 때 들리던 시청자의 반가운 목소리가 달라졌다. 너무 아파서 힘들었는데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힘이 되고, 많이 회복된 것 같다고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채 고마움을 표했다. 이야기를 듣던 출연자는 통화가 끊기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진심을 담아 노래를 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비단 이 시청자뿐 아니라 힘겨운 상황에 처한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자주 보지 않는 프로그램이라 머리로만 이해하던 인기의 원인을 온몸으로 절감했다. 전화 연결이 된 시청자뿐 아니라 필자를 포함해 코로나19로 힘든 모든 시청자들에게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무력감을 느끼며 힘들어하고 있다. 예민해지고 분노가 늘었는가 하면, 갈등과 혐오도 확산되고 있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겠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것은 바로 문화와 예술 같이 우리를 즐겁고 기쁘게 하는 아름다운 것들의 힘이 아닐까 싶다. <미스터트롯>이나 <사랑의 콜센타>를 비롯해 MBC <놀면 뭐하니?>의 ‘방구석 콘서트’나 JTBC <비긴어게인 코리아>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코로나19로 평범한 일상이 멈춰버린 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국민들을 위로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아름다움이 정말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쇼생크 탈출>은 자유와 희망에 대한 이야기지만,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가 쇼생크 교도소를 탈출하기까지 힘겨운 시간을 견디게 한 힘이 아름다운 것들, 곧 문화에서 온 게 아닐까 한다. 오직 속박만이 있는 절망적이고 척박한 쇼생크에 음악이 들리고, 책이 쌓이자 풍요로운 공간으로 변화되었다. 도서관을 찾는 재소자들의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지고, 생산적인 일들이 시작되었다. 제한적이나마 자유롭고 평범한 일상의 공간을 맛보게 되었다.
코로나19 시대,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나의 자유를 제한하며 거대한 쇼생크 안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는 특수한 재난적 상황에서 무엇보다 요청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불안이나 두려움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걱정하지 않고 어디서든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하고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일상 말이다. 하지만 백신이 개발되기까지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중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은 곁에 아름다운 것들을 두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넓게 보면, 인간의 역사와 문화, 예술, 그리고 대중문화까지도 하나님의 창조라고 인식될 수 있다. 미국 영적 대각성 운동의 핵심인물인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는 아름다움을 두 단계로 구분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탁월한 도덕적, 영적, 신적 아름다움이 일차적 아름다움이라면, 이 세상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들은 이차적인 것으로, 아름다우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반영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차적 아름다움에 접촉하는 경험을 통해 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생기 있게 해 준다고 보았다.
<사랑의 콜센타>를 보며, 과거 교회가 감당했던 치유와 회복의 사역들을 이제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함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다면, 그 이유는 아름다움 안에 깃드신 하나님의 은총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은혜가 필요하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키리에 엘레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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