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히어로 #8] 아버지는 늘 말하셨지 '음악은 취미다' : 뮤지션과 직업의 세계



어떤 학생이 음악으로 진로를 정했다고 말할 때 늘 부모님들은 말씀하시곤 한다. ‘음악 하면 배고프다’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등에서 단골 스토리텔링이 바로 그런 이야기이다. ‘긴 무명의 시절 너무나 배고프고 안 해본 궂은일이 없는데, 이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어 마음껏 음악 하게 되었다’라는 성공스토리.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음악으로 꼭 생계가 되어야만 음악을 할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은 사례들이 꽤 많다. 래퍼 뱃사공은 mnet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 시즌 8>의 프로듀서 자리를 거절하고 맥딜리버리 일을 계속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오랫동안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을 해온 그는 2019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상을 받으면서 그동안의 수고가 보상받는 듯했다. 하지만 쉽게 재정 상황이 나아졌던 거 같지는 않다.

2018년 7월 인터뷰만 해도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라디오스타에 게스트로 나와서 ‘소속사 건물 청소 알바를 지금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부를 구한다기에 자기가 한다고 했고, 다른 이들과 동일한 페이(하루에 7~8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쇼미더머니 시즌 8>의 프로듀서 제안이 왔지만 자신이 유명해져서 음악이 변하는 게 싫고, 힘들게 아르바이트하며 리얼한 음악을 만드는 게 좋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맥도널드 딜리버리 일을 하는 셀카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의 음악세계와도 맞는 발언이기에 팬들은 그가 진짜 힙합 뮤지션이라며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으로만은 생계가 해결되기 어려운 현실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음악을 하지 못하란 법은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알버트 슈바이처를 들고 싶다.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이다. 그는 의사이자 동시에 신학자, 그리고 음악인이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환경에서 자란 그는 10살부터 18살까지 독일 오르가니스트 오이게네 뮌히로부터 바그너의 음악을 배웠다. 이후 1893년 파리의 명 오르가니스트인 샤를 마리 비도르를 만나 바흐 음악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의 스승인 비도르는 이미 슈바이처를 제자의 경지를 넘어 바흐를 독보적으로 해석하는 동료 음악가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37세에 아프리카에 의료인으로 헌신하겠다고 이주한 후 랑바레네에서 병원 운영을 시작한다. 맨 처음 아프리카로 건너갈 때 슈바이처가 가장 괴로워한 것은 음악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파리 바흐협회는 방서, 방습 기능을 갖춘 피아노를 만들어 선물함으로 아프리카에서도 그가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쉽지 않은 병원 운영 가운데 슈바이처는 3년에 한 번 정도 유럽으로 건너가 연주회를 열고 거기서 받은 연주료와 책의 인세, 강연 사례금으로 약품과 의료기구를 구입했다고 한다.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다. 음악으로 돈을 벌어서 자선 병원 운영기금을 만들었다니! 지금도 그가 녹음한 오르간 음반 음원이 남아있다.

슈바이처 이야기를 하며 또 떠오르는 사람은 성경의 인물 다윗이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그는 젊은 시절 하프 연주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당시 사울 왕이 건강상의 문제로 악기 연주자를 궁정으로 불러모았는데, 거기 뽑힌 사람이 다윗이었다. 왕 앞에 설 연주자를 뽑았다면 얼마나 쟁쟁한 사람들이 왔겠는가. 그렇게 볼 때 다윗은 A급 하프 세션이었을 것이다. 그는 진지한 음악가이자 정치인이었다.

만화와 영화의 인물을 보면 시대의 인물상이 보인다고 했다. 최근 일본에서 인기 있는 ‘돈가스 DJ 아게타로’가 그러하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 도쿄 시뷰야에 돈가스 가게가 하나 있다. 3대째인 아게타로는 아버지 밑에서 별생각 없이 수습 수업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돈가스를 배달하러 간 클럽에서 그때까지 맛본 적이 없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바로 DJ와 음악의 세계이다. 그의 고민은 시작된다. DJ를 할 것인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돈가스를 튀길 것인가.

그는 둘 다 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돈가스와 DJ의 묘한 동질성을 발견한다. (좀 생뚱맞은 이야기 같기고 하지만, 이런 점이 이 만화의 재미 포인트이다.) 돈가스도 달구어서 튀겨내고, DJ로 플로어를 달구어서 사람들을 튀겨낸다!

그는 그렇게 음악을 배워가고 동시에 돈가스집 운영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아버지가 쓰러지시기도 하는데, 그는 이제 DJ로도 돈가스집 사장으로서도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간다.

나는 이 만화가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시작하며 고민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까, 생계를 위해 취업을 할까’. ‘나의 꿈을 좇을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까’ 돈가스 DJ 아게타로는 아직은 서툴지만 두 개를 동시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실하게 이루어 나가는 성장기를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오늘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현재 10권 이상의 단행본이 나와서 연재 중이고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실사영화도 제작되었다)

약간 시각을 바꾸어, 음악으로만 생계가 되는 사람은 행복할까? 옛말에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하지 말라 했다. 회사에 소속된 가수들은 노래하는 게 늘 즐겁지만은 않은 듯하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세계를 맘대로 추구할 수만은 없다. 회사와 딸린 식구들이 많기에, 시장에 팔릴 음악이라는 부분을 무시할 수 없고 자신의 예술세계는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다음 작품이 반응이 좋지 않으면 어쩌지 싶은 걱정이 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생계로서 뮤지션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이들은 이런 부분에서는 자유롭다. 그래서 인생은 공평한가 보다.

꿈이 뮤지션인 학생에게 두 가지 파라미터로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다. 1)음악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2)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가 다른 직업이 있는가

그렇다면 4가지 영역이 생긴다.

A)음악을 하고 그것으로 생계가 되는 사람

B)음악을 전업으로 하지만 생계가 쉽지 않은 사람

C)음악을 안 하고 전혀 다른 생업을 선택한 사람

D)음악을 하는데 생계는 다른 것으로 해결하는 사람

유명 가수들이 A유형이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피라미드 꼭대기의 축복을 누리는 이들이다. 화려한 인기, 넉넉한 수입, 큰 무대 등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 가는 것은 정말 소수에게만 허락되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오래 있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금방 내려오게 마련이다.

B유형은 소위 말하는 무명가수들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음악을 위해 모든 것을 올인하여 작품을 만든다. 역사상 많은 명작들이 이들을 통해 세상에 태어났다. 하지만 그 길이 참 쉽지 않기에 쉽게 권할 수는 없다. 고흐는 살아생전 작품을 한 개도 못 팔았다고 하지 않던가. 변변치 않은 수입에도 자신의 예술세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 이들은 진정 예술가이다.

C유형은 음악 같은 건 포기하고 취직을 선택한 경우이다. 후에 ‘나도 예전에는 음악가의 꿈이 있었는데’ 술잔을 기울이며 회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의 안정이라는 실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선택은 너무나 당연하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선택의 기회이다.

과거에는 A, B, C 의 유형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D유형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바로 뱃사공, 슈바이터, 돈가스 DJ아게타로 와 같은 이들이다. 생계를 위한 직업에 충실하면서도 시간을 쪼개어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해본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매우 힘들다고 한다. 퇴근한 후 다른 이들은 맥주 한잔에 넷플릭스로 하루의 피로를 풀 때에 책상에 앉아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장비를 사야 하고 음반을 내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얻어지는 자아실현의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리라.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에 이러한 이들이 점점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글쓴이: 이재윤
늘 딴짓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고를 나와 기계항공 공학부를 거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지만, 동시에 인디밴드를 결성하여 홍대 클럽 등에서 공연을 했다. 영혼에 대한 목마름으로 엉뚱하게도 신학교에 가고 목사가 되었다. 현재는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작은 문화공간을 운영하며 Art, Tech, Sprituality 세 개의 키워드로 다양한 딴짓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자음악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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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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