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의 삶과 죽음은 그 어떤 이의 생애보다도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9년 2월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그가 선종1)한 후 5일의 장례 기간에 명동 성당에 수만의 인파가 몰려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조문 행렬을 이루었다. 당시에 언론은 그런 분위기를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이라 부르며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암울한 군사 독재 시절, 87년 6·10 항쟁 당시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몰려온 전경들을 향해 “나를 밟고 가라!”라고 외쳤던 유명한 그의 일화가 상징하듯이, 그는 인권의 수호자이자 민주화 운동의 든든한 지지자였고, 언제나 사회적 약자의 편이 되어 주며 종교의 벽을 넘어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어른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이별의 시간은 개신교 목사로 살아가는 나에게도 소명을 돌아보게 하는 한 위대한 성직자의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1주년을 맞이하며 영화 <저 산 너머>가 만들어졌다. 연출을 맡은 감독(최종태)이 연세대 신학과를 나와 가톨릭으로 개종한 기독교인이라는 이야기에서부터, 김 추기경의 생애에 감동한 불교 신자가 영화를 위해 40억이 넘는 거액을 투자하는 등 제작 과정부터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은, 코로나19 라는 공연 예술계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높은 영화적 완성도와 깊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로 조용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가족의 사랑 속에서 마음에 심어진 특별한 씨앗을 키워낸 7살 소년 수환이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저 산 너머 대구의 신학교에 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소년 김수환의 성장 스토리이자, 또한 그의 마음 밭에 심어진 신앙과 소명의 씨앗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다룬 첫 극영화이자 생전 추기경과 나눈 오랜 대화를 동화 형식으로 풀어낸 고(故) 정채봉(1946-2001) 동화 작가의 원작 <저 산 너머>를 영화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은 1868년 조선 조정이 가톨릭 교인을 대규모로 탄압한 병인박해(丙寅迫害)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수환 추기경의 조부 김보현 일가도 이때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배교하지 않고 순교로 생을 마친다. 수환의 할아버지는 감옥에서 고문의 후유증과 굶주림으로 아사(餓死)하였다고 전해지며, 할머니는 때마침 임신 중이어서 국법에 의해 화를 면했지만, 재산은 물론 모든 것을 잃고 유랑하며 온갖 고생을 하다가 옹기 가마 마을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아버지 김영석 요셉을 낳는다. 김영석도 당시 천대받는 일이었던 옹기장이 일을 하며 서중하 마르티나를 만나 수환을 낳게 된다. 그렇게 순교자 가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안에서 한 성직자의 생이 이어진다.
순하고 선한 아이 ‘수환’
<저 산 너머>는 자칫 종교 영화나 전기 영화의 주제가 되기 쉬운 인물의 신성화에 그 중심을 두지 않았기에 종교의 벽을 넘어서는 자연스러운 공감력과 설득력을 갖는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영화라면 종교 지도자로서의 모습이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드라마틱한 묘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우리네 시골에 살았던 평범했던 소년으로서 가톨릭 신앙의 언저리에서 자라는 아이의 모습으로 어린 수환을 그려낸다. ‘순한’이란 아명으로 불릴 만큼 순하고 착했던 수환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멱을 감고 서리도 하며,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산인 짚으로 만든 축구공을 차고 노는 평범한 아이다. 다만, 사람에 대한 사랑만은 남달라, 방귀 뀐 친구가 창피할까 봐 고개 숙여 주고, 동네 누나와 소꿉놀이 로맨스를 꽃피우기도 하고, 자신보다 생일이 빠른 조카와 다투다가도 조카가 울자 그 모습에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그가 일평생 보여준 성직자다운 품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천성이었음을 엿보게 한다.
어머니의 자리, 신앙의 못자리
영화를 보면서 어린 수환의 생을 형성하게 되는 주요 모티프들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수환의 어머니가 보인다. 그의 어머니가 특별한 이유는,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옹기장이로 전국을 떠돌며 병약하고 한 많은 삶을 살았던 남편을 일찍 여의고 갖은 고생 가운데 아이들을 키워 낸 여인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옹기 장사, 국화빵 장사, 포목 행상을 하며 궁핍함 속에서도 풍요롭고 아름다운 정신으로 자녀를 돌보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의연한 어머니여서만도 아닐 것이다. ‘부모란 하나님의 자식을 이 땅에 사는 동안만 맡아 기르는 책임자이니 자기들 마음대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키워야 한다’고 생전에 남편이 일러준 신앙으로 자녀를 키워 낸 그 어머니의 모습에서, 또한 신앙을 지키고자 선택한 가난 속에서도 신부 서품식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하나님께 순명코자 하는 서원 신부들의 부복(俯伏)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보며 두 아들 동한과 수환을 신부로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신심에서, 우리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목회자 디모데를 기른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와 같은 사랑과 신앙의 못자리를 엿보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옹기,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채워지는 빈자리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모티프는 영화를 관통하는 ‘옹기’ 모티프이다. 그의 할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이어 주는 옹기, 그가 세운 장학 재단 이름 또한 ‘옹기장학회’이다. 옹기는 장독, 물항, 쌀항, 시루, 젓동이 등 종류와 쓰임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게 붙는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옹기’로 통용된다. 옹기와 함께 어린 수환이 한 걸음씩 한 달음씩 성장할 때마다 옹기는 하나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자신을 비워 내는 과정을 드러내 준다. 그래서 옹기는 용기의 자리이기도 하다. 감독이 이 영화의 주요 상징이 옹기라고 말해주듯, 옹기는 인생이 빚어가야 할 마음의 빈자리이기도 하며, 그 빈자리는 재물이나 명예로 채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는 하나님 당신의 자리인 셈이기도 하다. 영화 <저 산 너머>의 옹기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씨앗을 담아내는 빈 그릇이자 그것을 키워 내는 터이고, 성직자로 도약하는 그런 용기를 담아내는 수환 그 자신이 되어 간다.
누구에게나 심어진 신성의 씨앗
정채봉 작가가 <저 산 너머>에 쓴 것처럼,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했지만 잊혔던 하나의 존재론적 진실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에게는 희망의 씨앗, 정의의 씨앗, 빛의 씨앗이 심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런 싹을 틔울 수 있다는 기대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마을 신부(강신일 역)가 소년 수환에게 했던 말은 후에 김 추기경의 입을 통해 전해져 작가 정채봉의 가슴에도 남는다.
사람한테는 세 사람의 자기가 있지요. 한 사람은 남이 아는 자기이고, 또 한 사람은 자기가 아는 자기이며, 나머지 한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자기입니다. 바라건대 제가 이 일을 하는 동안 남들이 아는 나보다 그리고 내가 아는 나보다도, 내가 모르는 내가 진실로 나타나서 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것이 신성이기 때문입니다.2)
우리 모두에게는 심어진 씨앗이 있으며, 하나님은 그 씨앗을 발아시켜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자 하신다고.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이 우리 가운데 머물러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딸, 아들이고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저 산 너머>는 말해 주는 것 같다.
<각주>
1) ‘착하게 살고 복되게 생을 마친다’는 뜻을 가진 선생복종(善生福終)에서 유래한 말.
2) 정채봉, 『저 산 너머』(고양: 리온엔터, 2019), 24쪽.
*이 리뷰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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