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기독교를 비판하고자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강동헌 감독은 오히려 영화 <기도하는 남자>가 “모든 이들이 가진 고민을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개척교회 사모 정인으로 등장하는 류현경 배우는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인생의 소용돌이를 표현한 영화”라고 밝힌다. 경제적인 어려움 혹은 어떠한 위기로 인해 찾아오는 진퇴양난의 상황 가운데 누구나 겪는 갈등과 고민을 담고자 했다는 것이다.
상가건물 지하에서 작은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대리운전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목사 태욱(박혁권)과 아내 정인(류현경). 당장 재개발 때문에 교회 공간을 비워줘야 하고, 얼마 되지 않는 성도 중 일부는 대형교회로 이동하기도 한다. 지독한 경제난 속에서 하루하루 버텨나가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소식이 들려온다. 정인 어머니의 치료비로 5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것. 도무지 길이 열리지 않는 두 사람에게 유혹의 손길이 찾아온다.
말씀을 진실하게 전하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신실하게 살았다. 목회자로서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은 없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돌아오는 것은 모멸과 수치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상황은 점점 악화될 뿐이다. 방황과 불안으로 유혹받는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의 의문을 풀어주시고 참된 평안을 갖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유혹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태욱의 설교는 다름 아닌 자신을 향한 간절한 바람이었다. 비단 열악한 목회 현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며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만 같고, 너무도 무력하여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상황에 놓인 모든 이들에게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렘 29:12)의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이 영화의 제목은 <기도하는 남자>이고, 영어 제목은 Pray, 곧 기도다. 마치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영화의 결말만 놓고 본다면, 교회 안에서 흔히 ‘고난 가운데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하셨다’는 간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영화를 줄곧 진지하게 따라간 이들이라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른 지점에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신앙과 신념에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려 하는 신자, 심지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가는 목회자라 할지라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며 욕망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 자본이 신이 되는 ‘바벨탑’ 세상에 피투(被投)되어 의인이지만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으로서 살아가는 모순적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두 사람이 헛된 것을 마음에 품었으나 유혹의 손을 끝내 잡지 못한 것이나 적어도 태욱이 부끄러움을 느꼈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가 기도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기독교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를 설명하는 또 다른 자리에서 강동헌 감독이 했던 말이다. 적어도 이 영화는 통상적으로 ‘기독교영화’로 분류되어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종류의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몇몇 장면이나 인물의 설정을 두고 신성모독 혹은 교회 비판 영화로 읽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7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는 이 영화를 상영작으로 선정했다. 기독교 가치를 담은 영화를 상영하는 이른바 ‘기독교영화제’로서 이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 내부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교회 바깥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보편의 문제로 확장시키고 소통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더욱이 취약한 사회적 안전망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교회를 지키는 목회자들이나 목회자 가정의 가족들, 나아가 삶 가운데 크나큰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힌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부분들이 있다.
문화선교연구원은 이미 영화 <밀양>을 ‘기독교에 말을 건네는 영화’라고 평가하거나, 물량주의와 성공지향주의를 지향하는 교회를 비판한 <쿼바디스>, 목회자 성폭력을 소재로 인간의 연약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룬 <로마서 8:37> 등의 영화를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 상영하고 감독들을 기독영화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기독교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울국제사랑영화제의 이해를 엿볼 수 있다. 바로 기독교영화란 비/기독교라는 선명한 경계선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경계가 모호한 지점이 있더라도 그로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성찰과 실천으로 이어지느냐일 것이다.
이 영화는 현실을 기반으로 영화적인 연출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영화를 따라가면서, 인간으로서 실존적 고뇌에 참여하고, 신앙인으로서 주변의 작은 교회와 이웃의 어려움을 내 몸의 그것처럼 관심하지 않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기도하는 남자>를 계기로 이제 막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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