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안녕하세요. [수다 꽃이 피었습니다] 네 번째 시간은 장정은 교수님을 모시고 기독교 정신분석학적으로 본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하는데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책임연구원 김지혜입니다. 각자 자기소개 한번 부탁드릴게요.
장정은: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대에서 기독교학과 목회상담을 가르치고 있는 장정은 교수입니다. 저를 더 소개하자면, 미국에서 정신분석 수련을 받고 왔으며 주로 정신분석 종교에 대해 관심을 두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임주은: 저는 오늘 함께 이야기를 나눌, 문화선교연구원에서 기획간사로 섬기고 있는 임주은입니다..
진행자: 특별히 오늘 다룰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웰메이드 심리극’이라고 불리는데요. 각 인물들이 어렸을 때 경험했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 지금까지 행동에도 영향을 끼치고, 또 사건의 장이 ‘가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신분석학’과 이 드라마가 큰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요. 정신분석학에 대해 살짝 소개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장정은: 정신분석은 심리 내적 세계를 다루는데요. 심리 내적 세계의 주요 구성요소가 ‘대상표상’인데요. 대상 표상이라는 것은 “대상에 대한 느낌이나 이미지”이고요. 자기 표상이라는 것은 “자기에 대한 느낌이나 이미지”를 뜻하는데요. 이 두 가지는 맞물려 있어요. 그런데 그 배경은 어린 시절에서의 관계 역동에서 비롯됩니다. 반복적인 패턴으로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심리 내적 세계가 구성이 되고 그 구성된 세계가 성인이 돼서도 일반적인 관계에 그대로 영향을 끼쳐요. 이것을 ‘기억’과 ‘재현’이라고 말해요. 정신분석은 이러한 것을 다루기 때문에 사실 ‘가족’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죠.
진행자: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워낙 화제였잖아요. 기사도 많이 나오고, 주변에서도 많이들 보고 있고요. 교수님께서는 이 드라마가 왜 그토록 대중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화제가 되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장정은: 사람들은 누구나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소망, 욕구, 역동 등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고 드러내며 살기가 어렵죠. 그런데 드라마에서 그런 것들을 다루게 된다면, 아무래도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거죠. 사람들은 문명사회에 살아가기 때문에 흔히 ‘불륜’이라는 것을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자기 자신을 억압하며 살아가요. 이런 걸 ‘반동 형성’이라 하죠. 그런데 사실은 그런 욕망이 드러나는 드라마 스토리가 궁금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리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하죠. 또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을 거고요.
진행자: 사실 ‘불륜’은 드라마에서 정말 자주 다뤄지고 있는 소재예요. 그런데 <부부의 세계>는 부부간의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심리 내적인 것들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주인공 시점에서 몰입해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게 흥미진진했어요. 그러면서 또한 외적으로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정’, ‘부부 관계’ 그리고 ‘이혼’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 신랄하게 드러내 주었다는 게 이 드라마가 매력이었던 것 같네요.
임주은: 지금까지 불륜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들을 보면, 남편의 외도로 여성들이 겪는 ‘상실감’과 나아가 그 상실을 채워줄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스토리에 더 중점을 두었다고 보였거든요. 그런데 <부부의 세계> 속 지선우는 혼자서 자신의 것들을 지키면서 동시에 복수를 위한 치밀한 계획과 그것을 하나씩 실행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캐릭터’라고 느껴졌어요. 비록 그 과정에서 증오, 파멸 등 부정적인 감정들도 많았겠지만, 그 또한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주인공의 모습이기에 오히려 시청자들로 하여금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듯해요.
진행자: 우리 그러면, <부부의 세계>를 시청하면서 각 등장인물의 심리적 내면세계와 그에 따른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여러분께서는 각자 어떤 관점으로 등장인물들을 바라봤나요?
장정은: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며 ‘갈등’의 두 가지 양상이 떠올랐어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연결되고 관계를 유지하며 외롭지 않으려는 뿌리 깊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한 사람과 깊게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게 기본적인 욕구예요. 그런데 또 그때마다 끌리는 사람을 새롭게 만나고 싶은 욕구도 있겠죠? 극 중 ‘이태오’와 ‘손제혁’은 이 두 욕구 사이에 대한 ‘갈등’을 가지는 인물로 등장해요.
그리고 또 다른 양상의 갈등도 있어요. 사람은 일평생 ‘사랑’과 ‘증오’라는 양가감정의 심리적 갈등 속에 살죠.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 발달을 ‘사랑’과 ‘미움’을 통합해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극 중 지선우나 고예림은 남편에 대해 사랑과 증오를 통합하지 못하고, 두 감정이 극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인 것 같아요.
임주은: 지선우와 이태오 모두 어린 시절, 각 가정에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있고, 그 때문에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강박 속에서 살아왔잖아요. 이런 것들이 그들의 삶과 선택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장정은: 그런 걸 ‘숙달 이론’이라고 말해요. ‘원가족(原家族)’에서 미해결 되었다고 여기는 과제를 무의식적으로 지금 현실에서 다루려고 하는 거예요. 지선우와 이태오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불륜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 때문에 “나는 절대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강박을 가지고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다시 꺼내보고 반복하고 재현할 수밖에 없는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거 같아요.
임주은: 지선우는 엄마가 남편에 대한 증오와 복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 함께 파멸로 치닫게 된 걸 봤었잖아요. 그래서 자신은 엄마와 ‘다르게’ 자신의 삶의 모든 것들은 그대로 지키고, 이태오만 깨끗하게 도려내야 한다는 집착이 컸던 것 같아요.
진행자: 이 드라마의 원작자(BBC, ‘닥터포스터’) ‘마이크 바틀릿’은 한 인터뷰에서 밝히길, “사랑이라고 하는 게 약한 고리인데, 그 약한 고리에서 기인한 관계, 그리고 부부라는 숭고한 인연의 속성을 밝히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부부’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관계이면서, 동시에 깨진다고 해서 완벽하게 분리될 수는 없는 관계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부부의 세계>가 시청자에게 하고 싶던 말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요?
임주은: 저는 가부장제 문화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는 ‘완벽한 가정’ 콤플렉스를 집중해서 보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는데요.
이태오: “당신한테 결혼은 뭐였어? 사랑은 또 뭐였고?”
지선우: “나한테 결혼은... 착각이었지. 내 울타리, 내 안정적인 삶의 기반, 누구도 깰 수 없는
온전한 내 거라고 믿었으니까. 사랑은 그 착각의 시작이자 상처의 끝이었고..”
임주은: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제 문화가 완연한 한국에서 흔히 사람들이 결혼을 고민할 때, “그 사람은 나에게 안정감을 줄 것이고, 좋은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되어줄 거야, 그래야만 해”라는 통념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지선우는 자신의 통념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그리고 자신이 가정을 (드라마 대사에서)‘정상적인 가정’으로 지킬 수 있다고 여기는 여다경에게 지선우는 ‘그것도 결국 착각’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했던 것 같고요.
진행자: 드라마 등장인물들이 거의 다 표면적으로 화려한 삶을 사는 중산층인데, 유독 ‘완벽’한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에 더 집착하는 심리가 자주 등장해요. 지선우도 여다경도 “나는 완벽한 가정을 이룰 거야”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지선우는 “이태오만 완벽히 도려내면”, 여다경은 “이태오의 맘만 잘 붙잡으면”, 다시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고요. 이태오는 지선우 때문에 완벽한 가정이 깨졌다고 생각하고요. 자신의 내면의 취약함이나 불안함을 직면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완벽’이란 허상이 깨졌다고 생각하니 그것을 메우기 위해 더욱 집착하고 강박에 빠지는 것 같아요.
장정은: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부장제적 분위기가 여성들에게 그런 이상과 기대를 잘못 심어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런 것도 ‘기억과 재현’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어요. 거기다가 결핍이 잘 해결되지 않았던 사람은 ‘이상적인 돌봄’에 대한 기대까지 더해지게 되는 것이죠.
진행자: 저는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이 사랑하고 결혼하고 관계 맺는 방식이 굉장히 ‘자기중심적’이라고 느꼈어요.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나를 위해 필요한” 관계 맺기를 하다 보니까 결국에 관계가 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관계를 지킨다는 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임주은: 드라마에서 지선우와 이태오 그리고 아들 이준영, 셋의 갈등이 그대로 드러났었는데요. 보통은 아이가 있는 부부가 헤어지는 과정에서 자녀가 받을 상처를 걱정하며 자신들의 감정은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지선우와 이태오는 비교적 자신들의 감정과 갈등을 자녀 앞에서 많이 드러낸 편이었어요. 처음에는 “부모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저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준영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관계적인 부분에서 가족이 조금 더 건강하게 헤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행자: 지선우와 이태오가 아들 준영이를 데리고 오기 위해 서로 갈등하는 과정이 굉장히 폭력적이었고,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준영이는 어쩔 수 없이 불안정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준영이를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 아무도 진심으로 준영이를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어른이고 부모이지만, 미성숙한 거예요. 드라마에서 설명숙이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했을 때 사이가 좋아도, 나빠도 싫었다는 말을 했던 것처럼, 준영이는 부모님을 너무 사랑하니까 그만큼 실망도 크고 힘들었겠죠.
장정은: 서로 사랑과 증오가 통합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갈등을 일으켰던 것처럼, 아마 준영이도 그 사이에서 부모를 바라볼 때, 그들을 “사랑해야 하나, 증오해야 하나” 이 두 감정이 갈등을 일으켰을 거예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쉽지 않은 갈등을 이 드라마가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단순히 상대를 내가 가지고 있는 결핍이나 기대로 채우려고 하거나, 혹은 내가 필요한 일부분의 모습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온전한 나로서 또 온전한 상대방으로서 맺는 성숙한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 게 필요하겠죠.
진행자: 제가 <부부의 세계> 명대사를 몇 가지 가져와 봤는데요,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를 하나씩 꼽아서 그 이유를 함께 이야기해보면 어떨까요?
임주은: 제가 고른 대사는,
민현서: “실망이네요. 선생님같이 성공한 여자도 나 같은 거랑 다를 게 없다는 게.”
극 중 민현서는 지선우의 거울이 되어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지선우가 민현서를 ‘폭력적인 관계’의 구렁텅이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이후에 지선우는 아무리 민현서가 도와주려고 해도 이태오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잖아요. 지선우의 삶은 의사로서 성공하고, 남부러울 것 없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혼 후 한 여자로서 심리적·관계적·사회적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지선우 같은 사람도 저러는데, 하물며 힘도 없고 여유도 없는 사람들의 이혼 후 삶은 얼마나 더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정은: 사실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민현서’나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 대해서도 여전히 연민을 버리지 못하는 ‘지선우’로 특정되는 인물들은 자신들의 관계와 사랑에 실패가 없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그런 남자들의 곁을 못 떠나는 것은 아니거든요. 민현서와 지선우는 “내 사랑으로 상대방을 바꿀 수 있을 거야”라는 대상에 대한 ‘기대’가 무의식적으로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 또한 결핍에서 나오는 집착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죠.
장정은: 제가 고른 대사는,
이태오: “사랑이 결혼이 되는 순간 모든 게 다 똑같아졌다고. 평범하고 시들해졌다고.”
이태오라는 인물이 얼마나 안정적이지 못하고 ‘스릴’이나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인지가 나타나는 대목이에요. 이태오는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면서 꼼꼼한 성격의 지선우를 보고 사랑에 빠졌었죠. 그런데 또 거기서 답답함을 느끼고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비슷한 새로운 여자를 찾아 나선 거잖아요. 그것은 이태오가 그 사람을 순수하게 사랑했다고 보기보다 ‘기억’과 ‘재현’의 한 방식으로 그 사람에게 빠진 것이죠. 결국 이태오는 상대방을 있는 모습을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랑이 아닌, 자신의 결핍에 대한 기억과 재현을 이루려고 하는 것뿐이죠. 자신의 결핍과 미성숙함으로 관계를 맺었다고 볼 수 있어요.
진행자: 제가 고른 대사는,
고예림: "다 무너지고 보니까 이제야 보여. 내가 붙잡았던 건 사랑이 아니라 오기였다는 걸.
집착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 오히려 상처만 커지게 한다는 거. 언니도 이제 이태오 생각 버려.
이태오한테 벗어나라. 서로 이기자고 들면 끝도 없는 거야.”
지선우와 이태오 둘 다 헤어지면서 ‘집착’인지 ‘소유욕’인지 혹은 ‘승부욕’인지 모를 감정들을 놓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악화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대사가 와 닿더라고요. 개인의 상처나 트라우마가 회복되지 않은 채 사랑할 때 얼마나 그 관계가 왜곡되고 파괴적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또한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인 것 같아요.
임주은: 이 드라마에는 관계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면서 고통받는 세 명의 캐릭터 ‘지선우’, ‘고예림’, ‘민현서’가 등장하는데, 처음엔 가장 고통받는 것 같이 보였던 민현서가 결국 가장 빨리 ‘폭력적인 관계’에서 벗어났잖아요. 정작 가장 처음으로 이태오에게서 벗어났다고 여겨졌던 지선우는 가장 마지막까지 쉽게 벗어나지 못했어요. 저는 이게 현실적인 가부장제적인 문화가 잘 반영된 스토리라고 느껴졌어요. 결국 현서는 법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고예림은 결혼은 했지만 자녀가 없었는데, 지선우는 아이가 있었던 거죠. 이태오를 생각할 때 “내 아들의 아빠”라는 생각을 빼놓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게 지선우로 하여금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자꾸 주저하게 만든 것 같아요.
진행자: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지금껏 한국 교회는 ‘결혼’을 절대로 깨져서는 안 되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성스러운 관계이자 인생의 필수적인 하나의 단계처럼 여겼잖아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결혼’이나 ‘가정’ 그리고 ‘부부관계’에 대한 오늘날의 관점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를 통해서 교회가 고민해야 할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세요.
장정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소위 ‘완벽한 개인’ 그리고 ‘완벽한 가정’에 대한 환상이 아무래도 교회 안에서도 있죠. 그리고 그러한 기대와 이상들이 강박처럼 변하기도 하고 또 기준이 되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억압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임주은: 저는 고산시 사람들이 이혼한 지선우를 향해 갖는 왜곡된 편견,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준영이를 향해 갖는 차별적 시선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 분위기는 어떠한가 생각해보게 됐어요. 의도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이혼을 선택한 사람과 그 가족 구성원을 향해 보내는 시선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행자: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에 아마 지선우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내거나, 전문가를 찾아가서 자신의 문제를 상담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요즘 방영 중인 KBS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도 이혼을 다루는데, 이혼 후에 동네가 시끄러워도 서로 보듬는 가족이 있기에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반면, 선우에게는 그런 가족도 없고, 고산이라는 마을의 어느 누구도 공동체가 되어주지 못했던 거죠. 세상에서 취약함은 곧 약점이 되지만, 교회라는 공간만큼은 “약함이 곧 강함”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고, 부족함을 서로 지지해주는 공동체여야 하잖아요.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로서 그러지 못하는 부분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임주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자극적인 불륜만 다룬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한 이 드라마 콘텐츠에 대해 교회가 불편하게 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 욕망”에 대해서 다루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오늘날 교회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정’이라는 개념이 더욱 건강하게 세워져 갈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요.
진행자: 오늘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수다 꽃을 통해 <부부의 세계>를 단순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 불륜 드라마로 분류하지 않고 내밀하고도 치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관계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생각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개인의 욕망과 개인을 둘러싼 관계들의 이기적 욕망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지, 동시에 나를 위한 타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타자를 위한 나, 타자를 위한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했던 자리였습니다. 사랑이라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 어려운 주제를 깊이 있게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제17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추천 행사
*자세한 사항은 '서울국제사랑영화제' 홈페이지나 문선연 게시글을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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