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결정적인 계기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집회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종교(특히 사이비 종교)를 다룬 문화콘텐츠가 관심을 받았다. 드라마 <구해줘>에 신천지와 연결되는 우연한 지점들이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내기도 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인 <메시아 Messiah>(2020)는 신천지의 이만희 총회장의 ‘재림주’ 주장과 연관지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문제작 <메시아>
흥미롭게도 <메시아>는 어떤 종교를 특정하지 않은 채 스스로 자신을 메시아라고 이야기하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다. 총 10편으로 구성된 시즌1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이스라엘 감옥에서 미국 텍사스로, 예측하기 어려운 그의 행적을 추적하며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분쟁, 거기에 미군의 개입 등 국제 지정학적 정치와 종교 분쟁, 현대인들의 심리와 종교성까지 두루 건드리는 다층적인 스토리와 스케일이 예사롭지 않은데,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를 오가며, 정치사회적으로 첨예한 지점들을 건드리기 때문에 논란은 필연적이다. 사실 <메시아>는 세계평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위협하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서구중심적이며, 책 <문명의 충돌>을 모티브로 삼아 세계정치를 좌우하는 세 종교를 다루면서도 기독교에 무게중심이 쏠려있다. 요르단은 “종교의 신성함을 침해하며 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상영 금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민감한 부분을 다루는만큼 논란이 많이 일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배경으로 하는 몰입감있는 전개에 호평을 받기도 했다.
<메시아>의 제작자는 흥미롭게도 <나니아 연대기3: 새벽 출정호의 항해>의 각본을 쓴 마이클 페트로니이다. 그는 지금까지 미국과 호주 등지에서 초자연적 스릴러물에 여러 편 참여해왔는데, 가장 최신작이 <메시아>이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비추어볼 때, <메시아>에서 다종교를 다루는 부분은 신앙(faith)적 차원이 아니라 시청자의 몰입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로서 제도로서의 종교(religion)를 사용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이러한 관점으로 드라마를 본다면, 드라마가 제공하는 서스펜스를 경험하면서도, 이면에 심층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신앙적 메시지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메시아>가 ‘메시아’를 다루는 방식
<메시아>는 시리아에 주둔하던 미군이 철수하자 IS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설명과 함께 시작한다. 다마스커스는 폐허가 되고, 떠도는 난민들에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신께서 정하신 일 이외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없다. 역사는 끝났다! 구원의 손길이 닿으리라!” 신기하게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작된 모래폭풍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지상군이 철수하고 IS의 위협은 종식되었다. 이 사건을 경험한 상당수가 추종자가 되었고 사람들은 이 목소리를 낸 사람을 ‘알 마시히(Al Masih)’라고 불렀다. 이는 아랍어로 ‘메시아’, 곧 구원자라는 의미이다. 지금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동 성지가 된 예루살렘 성전산에서 총을 맞고 죽은 아이를 되살리는가 하면, 미국 텍사스의 한 마을을 휩쓴 토네이도 속에서 교회 하나와 소녀를 구하기도 한다. 미국을 건국한 조지 워싱턴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상징 워싱턴 기념탑 앞 호수 위를 걸어가기도 한다. 마치 2천 년 전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것을 오마주한 것처럼!
유대인 혈통의 그는 시리아인들에게 쿠란을 이용해 메시지를 전하지만, 이슬람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용은 기독교적이다. 구약(유대교)에서 메시아가 기름 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왕을 의미한다면, 신약(기독교)에서는 이미 오셨으나 세상의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알라를 섬기며, 미래의 구세주를 마흐디(Mahdi)라고 표현하는 이슬람교에서 메시아(마시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드라마의 제목 <메시아>가 구원자를 의미하지만, 드라마 안팎의 사람들, 특히 종교인들은 자신을 ‘신의 메신저’라고 밝히는 이란 출신의 남자를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 포스터에 적힌 “Will he convert you?”란 문구는 그가 개종케 하느냐(convert)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vert’를 뿌옇게 처리하면서 속였냐는 뜻(con)도 의도한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에서 그는 진짜 메시아일까, 아니면 사기꾼일까?
마치 예수처럼 긴 머리에 황색 예복을 입은 ‘알마시히’가 때로 나이키 운동복이나 현대식 죄수복을 입고 등장하는 것이나, 성경에서 읽던 것과 같은 기적(처럼 보이는 사건)을 펼치면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SNS에 인증하거나 실시간 중계를 하고, 언론을 통해 하루 만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2천 년 간의 이질적인 시공간이 한 순간으로 압축된 것처럼 매우 낯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따라가다 보면, ‘알마시히’의 진위여부나 드라마가 다루는 특정종교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오늘날 예수가 오신다면?”
<메시아>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
폴 틸리히는 종교의 형식이 문화이며, 문화의 심층이 종교라고 하였다. 드라마 <메시아>는 논쟁적인 지점들을 통해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는데, 논란에 대한 판단을 한걸음 유보하고 드라마를 따라가다 보면, 신앙과 종교에 대한 본질적이고 심층적인 질문을 일으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신앙인들에게는 더욱이 자기성찰의 계기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적인 메시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을 넘어서, 각자마다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여 주인공을 대하는 주변인물과 대중의 태도들을 보고 있자면 나를 비롯해, 예수를 따르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똑같이 기적(같은 사건)을 행하더라도 누군가는 믿고, 누군가는 의심하며, 누군가는 부정하고, 누군가는 추척한다. ‘알마시히’가 가장 아끼는 추종자 ‘지브릴’만이 기적보다 메시지에 집중하며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분”을 따라 연민과 사랑을 주변에 베푼다.(아랍어 ‘지브릴’은 천사 가브리엘을 의미한다.) 반면, 미국 CIA와 이스라엘 정보부는 그의 정체를 알기 위해 추적하고, 이슬람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이단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진짜 메시아이기를 바라며 의학기술보다 그를 더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의 유명세나 능력을 이용하려는 이 역시 너무도 많다. 각자의 목적과 바람에 따라 주인공을 바라보는 주변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2천 년 전, 예수 곁에 있던 이들을 증언하는 성경의 말씀이 떠오른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 ‘믿었기에’ 예수의 가르침을 부정했으며, 로마 황제 아구스도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라 ‘믿고’ 숱한 어린 생명을 죽였다. 물론 예수가 진정한 그리스도임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제자 몇몇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정치적 해방을 이뤄낼 구원자로 ‘믿고’ 따랐다. 그리고 그분을 추종했던 수많은 군중들은 굶주림과 고통을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진정한 메시아는 무엇으로 알아볼 수 있는가? 지금 그분이 오신다면, 나는 어떤 모양으로 그분을 따를 것인가? 나의 신앙의 기저에 무엇이 있을까? 최근 넷플릭스는 <메시아> 시즌2 제작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이제 해석은 오롯이 시청자의 몫으로 남았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갈망과 나를 위한 왜곡된 욕망 사이에서 21세기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믿음과 제자도에 대해 돌아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게 시 글 공 유 하 기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밴드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