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강요된 청빈>을 읽고



1. 정말로 찐가난?

목회자는 정말로 찐가난('찐'은 '진짜'의 의미를 강조하는 신조어 - 편집자 주)할까? 목회자는 아무래도 매달 사례비는 좀 적은 게 일반이다. 나도 제일 친한 친구 몇 명과 비교했을 때, 내 월급이 제일 적었다.

하지만, 명절 때 나 혼자 엄청 선물 받았다. 스승의 날이라고 누군가 내 양복 가슴에 카네이션도 달아줬다. 김장철이면 늘 김장 김치를 받았다. 내 친구들 중에 아무리 잘 나가는 과장이라도 누가 김장 김치 안 챙겨준다. 휴가 갈 때면, 유력한 장로님께서 휴가비도 따로 챙겨주셨고, 성도가 운영하는 병원에 갈 때면 줄도 서지 않고 논스톱으로 진료받고, 돈도 안 냈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는 돈은 없지만 '권력'이 있다. 앞에 나가서 말(설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그 말을 들어준다. 누구는 그 말(설교)을 듣고 운다. 나중에 손 붙잡고 울면서 고맙다고 한다. 이런 건 사회에서 나보다 연봉 높은 30대 과장이 절대로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목회자가 성도들로부터 받는 무조건적으로 사랑과 섬김과 기도, 그리고 직무상 누리는 권력까지 소득에 포함시킨다면 부목회자는 그렇게 가난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문제 제기,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

2. 어쨌든 가난하다

목회자가 사례나 처우 때문에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들로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강요된 청빈>을 보면 150만 원 이하 사례를 받는 목회자들은 전체의 절반 가까이(46.5%).(26) 그중에서도 남자 교역자는 44.6%, 여자 교역자는 75.4%였다. 월평균 사례비는 남성의 경우 163만 원, 여성의 경우 104만 원이다. 물론 파트 교역자가 포함된 조사이겠지만, 파트와 전임 모두를 포함해 교회에서 받는 사례금으로만 생활한다는 경우가 85%가량이니 교회에서 어떻게 섬기든 생활고에 시달릴 것은 자명하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담임목사나 교구 부목사는 사례비며 사택 등 각종 처우, 성도들의 십시일반 돕는 손길 등을 포함하면 괜찮겠지만, 대부분의 전도사, 그리고 형편이 어려운 작은 교회일수록 상황이 어렵다

이런 열악한 사례비나 처우 문제는 그 자체로도 문제이기도 하지만, 교역자를 대하는 교회의 태도가 드러나는 것이라서 실제로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얼마나 교회 사역이 고되고 힘든지 우울증에 걸리거나 과로사를 하는 등의 사례는 비단 책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듣는 이야기다. 최근에는 신학생들이 교회 사역이 너무 고되고 사례비는 적기 때문에 차라리 공부에 전념하고 전도사 사역은 기피하는 추세라고 한다”(37)는 이야기가 결코 과장이 아닌 시절을 산다.

 

3.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사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축귀 방법, 설교 방법, 전도 방법 뭐 이런 사역 스킬skil이나 툴tool은 전혀 안 가르쳐 주셨다. 다만, 고기 잡는 법은 가르쳐 주셨다(눅 5:4). 부활하셔서는 제자들을 만나자마자 생선부터 구워 주셨고.

하나님은 우리의 먹고사는 일을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신다. ‘일용할 양식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그 길지도 않은 주기도문에 넣어서 만날 기도하게 했을까. 우리만 (아빠 하나님 맘도 모르고) 먹고사는 일을 하등 하게 여기고, 죄악시 여기기까지 했다. 교회와 신학교와 목회자 모두가 반성부터 해야 한다. 이 책은 그 반성을 정확하게 하도록 해주는 길라잡이쯤 된다.

교회는 목회자의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 교회의 사례로 생활이 불가능하면, 사례를 더 주는 교회로 옮겨도 된다. 교회를 옮기기 싫으면 나가서 일해도 된다. 그 어느 선택도 죄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을 목회자 개인의 돈 욕심이라며 손가락질하는 것.

교회와 성도와 목회자가 현실(경기불황, 교세 감소 등)을 정확하게 보고, 자기의 욕망에 솔직하면, 이 문제는 어렵지 않다. 아니 덜 어렵다.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는 개인이, 그 개교회가 몸부림쳐야 한다. 말이 좋아 공교회지 총회도 목사 개개인의 조합인데, 그분들은 보통 가난하지 않거든. 이 문제로 고통당하는 이들만큼 깊이 공감하고 치열하게 이 문제를 가지고 싸울 수 없다. 이 책에서 '강요된 청빈'의 문제를 공교회적으로 풀자고 제안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실효성은 떨어질 게 분명하다.

 

4. 잘 정리된 책, but

저자 정재영 교수는 목회자들에게 강요된 청빈이란 현상을 증명하기 위해 객관적인 자료를 잘 정리해서 보여준다. 목회자의 글이 아니라 종교사회학을 전공한 사회과학자의 글이라서 그럴까. 자기주장의 근거를 성경구절로 들먹이지 않는 건 특히 고마웠다.

하지만 객관적인 자료(숫자들) 덕분에 이 책을 소논문처럼 딱딱하게 느끼신 독자들도 있을 터. 편집 디자이너가 본문에 첨부된 표나 그래프 대신 인포그래픽(information graphic, 정보를 시각적으로 전달)이나 삽화를 넣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부록으로 실린 부교역자 인터뷰(건조한 표와 그래프엔 없는) 스토리가 있어서 독자들이 동감, 동의하게 하는 적당한 연구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대상자였던 목회자 네 분 중 한 분이라도 모범적인 대우를 해주는 교회의 사역자였다거나 다양한 구성원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사실, 목회자의(특히 부목회자의) 가난은 새로 포착된 문제가 아니다. 저자가 원인 분석 및 대안 제시를 다각도로 정리해주었지만 새로울 것은 없었다. 목회자의 이중직이나, 노후 준비, 사회 안전망 활용 등은 왜 아직도 이 당연한 얘기를 반복해서 하고 있지?’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 느낌은 아직도 한편에서는 이 당연한 얘기가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린, 목회자가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고, 스스로 노후를 준비해야 하고, 사회의 특별하지 않은 일원으로서 세금을 내고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목회자들이 있다. 마을 도서관, 카페 교회, 사회적 기업 같은 다양한 교회 개척 케이스 얘기도 10년 전부터 해왔다. 요즘 내 동기 목사들은 이중직이 아닌 이직을 이야기하고, 사회적 선교가 아닌 노동 그 자체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 문제의 당사자들은 쿨하게 이런 현상들을 관조함으로써 새로운 생존의 길을 찾고, 그걸 새로운 신학으로 포장까지 마쳤는지도 모른다.

 

5. 불치병보다 무서운 지병持病

신대원 학보사 시절(2012), 신대원 동기, 선후배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100개 교회의 사례비, 출근 일수, 전임 사역자 성비, 담임 목사님의 정치 성향, 출근 복장 등을 조사해서 공개한 적이 있다. 열악한 사역 환경을 공론화하기 위함은 아니고, 옆 교회는 얼마 사례 주는지 신경 좀 쓰시라고, 전도사는 자기 상황과 욕구에 맞는 교회를 찾아가시라는 의도였다. 교단을 넘어서 교회 천 개를 조사해서 책으로 출판했더라면, 하며 아쉬워했었는데... <강요된 청빈>은 그때 우리가 출판하지 못한 그 책의 고급 버전 같다. 저자도, 조사방법론도 나보다 훨씬 공신력 있다.

불치병보다 무서운 게 지병이다. 지병과 함께 사는데 익숙해져서 병원에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강요된 청빈은 불치병이 아니고 지병이다. 이 책을 통해서 지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에 가는 교회들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글쓴이 김정열 목사(수박교회, 수박빈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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