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페미니즘 코드, 그리고...



최근 브라운관을 사로잡은 코드가 있다. 바로 페미니즘이다.  


키즈와 키덜트들로부터 모두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 <토이스토리4>는 전형적인 남성주인공의 남성적인 애니메이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라딘>의 여성 캐릭터 쟈스민 공주, <토이스토리4>의 보핍의 스토리와 그 역할의 목소리에 집중하여 스토리를 재구성했다. 그리고 그러한 코드는 성공하여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알라딘에서 자스민은 더 이상 지니에게 소원을 비는 이들의 전유물이기를 거부한다. (이미지는 나오미 스콧이 부르는 영화 속 OST <Speachless>의 한 장면)

나오미 스콧 <Speachless>


토이스토리4에서 보핍은 전형적인 여성 장난감의 역할을 탈피하고자 했다. 

토이스토리4에서 보핍은 전형적인 여성 장난감의 역할을 탈피하고자 했다.

사실 필자는 아이를 키우면서 유아 콘텐츠들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 참 많다. 여전히 파란색, 핑크색으로 분류된 고정된 성 정체성의 색깔들과 특히 우리나라 장르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등장하는 고정된 성역할들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확실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적인 상업영화에서 이러한 페미니즘 코드가 엄청나게 이용(?)되고 있다. 이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러한 스토리들이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의 재구성, 재해석과 같은 여성캐릭터의 반전들은 다양한 장르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마블의 여성 슈퍼 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는 의미의 신조어) 신급 캐릭터를 여성으로 설정하고, 마블의 시초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적잖은 붐을 일으켰다. 사실 캡틴 마블은 전형적인 여성적 이상형을 탈피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은 히어로 캐릭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캡틴마블 관련 캐릭터 굿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주목해볼만한 일이다.)  


한국 드라마계도 마찬가지다. 조금 평범한 여자가 부잣집 남자를 만나서 잘되는 신데렐라 스토리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여성의 삶을 묘사하는 드라마들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도 여성 세 명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연애사를 진지하게 그려냈다. 


왜곡 오류에 대한 염려 

그러나 페미니즘 문화 콘텐츠들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예전부터 어디에서나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재미없고 진지했을 뿐이다. 그러나 재미없고 진지한 속에 무게있는 목소리들을 담아왔다. 최근, 이러한 대중적인 페미니즘 코드의 등장에 대하여 너무 ‘시시한 페미니즘’이 되버리진 않을까 하고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 긴즈버그 논란 

영화<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라는 실제 인물을 다룬 상업영화다. 긴즈버그는 1950년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여성으로 법대 교수와 변호인까지 했던 엄청난 사람이다. 사실 긴즈버그를 주제로 한 다큐 형식의 예술영화도 있지만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대중, 상업 영화로서 특색있고, 드라마틱하게 그녀의 삶을 조명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마케팅팀이 영화 광고문구를 지나치게 왜곡시키면서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대중들의 시선을 끌고자 하는 상업영화, 대중성은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들로부터 왜곡되기 십상이다. 특히 이번 논란은 완전히 성별의 차별성을 극도로 보여준 점에서 영화의 정신을 가려버렸다. 긴즈버그가 가진 가치와 역사적 스토리를 단순히 그녀의 외모에 치우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상업적인 대중문화는 페미니즘 코드를 이용할 뿐, ‘예쁜’여성 주인공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흔하고, 뻔한 대중적 스토리에 우리를 가둬버린다. 

대중문화 속 페미니즘 유행은 페미니즘이라는 여성캐릭터의 반전 이야기를 심각한 사회문제로만 풀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감동이 있는,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전략을 사용한 것 같다. 더 이상 재미없고 진지하고 무서운 페미니즘 콘텐츠가 아니라 정말 재밌고 유쾌하면서도 감동이 있는 페미니즘 코드가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반면 위에서 다룬 논란처럼 때론 상업적인 캐치프레이즈에 의해 페미니즘의 정신이 흐려지기도 하고, 언제나 대중들의 입맛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본래 의도했던 스토리를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는 어떤 점이 맞다고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단지 이러한 콘텐츠의 반전, 페미니즘 코드가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끌면서 대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한편, 이렇게 페미니즘 향기를 풍기는 대중문화의 흐름 가운데 기독교는 어떠할까? 기독교에게도 페미니즘의 코드는 유효한가? 

기독교의 콘텐츠이자 주된 이야기라고 한다면 단연코 성경의 이야기 복음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여성신학자들은 성서에 등장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시 보고, 재해석 하는 작업들을 진행해왔다. 그것은 단지 내러티브 신학에 그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중심으로 내러티브에 대한 비판적인 의심의 해석학을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만 아직 이러한 흐름이 유행(?)을 타지는 못한 것 같다. 얼마 전 필자는 유치부 설교를 하면서 드보라 사사 이야기를 전했다. 그림자료를 예쁘게 잘라갔는데, 머리가 긴 장군 그림이 나오자 아이들은 ‘엥?’ 하는 얼굴로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하나님께서 드보라 선지자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사사로 선택하셨어요.” 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없이 아이들이 얼마나 집중해서 듣던지 말하는 나조차 감동이었던 시간이었다. 자라나는 여자 아이들에게 “너희도 드보라 사사처럼 담대하고 멋진 리더가 되라”고 전할 수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귀했는지...  

변화하는 디즈니의 스토리를 보면서 심지어 원래의 이야기들도 다시 만들어서 나오는 시점에,우리는 버젓이 있는 여성 선지자, 여성 그리스도인들을 언제쯤 적극적으로 스토리화 시킬 수 있을까? 여전히 목마르지만 한참 ‘다니엘’이 유행했던 것처럼 다양한 성경 속 여성 선지자, 여성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가 히트치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교단의 한계를 넘어서 우리 가운데 좀 더 풍성한 이야기들이, 그리고 그 이야기에 환호할 수 있는 교회 안의 문화가 적극적으로 양성되고, 또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글쓴이 심수빈

문화선교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섬기다가 현재는 미국에서 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거대한 문화의 구조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또 그 문화를 만들어가는 개인들의 선택에 관심이 있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관계성은 항상 고민하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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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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