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대중문화읽기 영화<나의 특별한 형제>: 약함이 강함이 되고, 부족함이 온전함이 되는 기적



때로 일상적으로 무심하게 내뱉는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차별로 작용할 때가 있다. 사회적 약자에게 차별과 배제가 심한 사회일수록 이러한 태도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게 마련이다. 개역개정 성경이 소경을 맹인으로, 앉은뱅이를 못 걷는 사람으로, 문둥이를 나병환자로, 귀머거리를 못 듣는 자로 바꾸어 표기한 것도 그러한 부분과 연관이 있다. 이런 점에서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는 상당히 배려가 깊은 영화다. 장애인을 희화화거나 일방적인 수혜, 동정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으면서도 웃음과 눈물을 정직하고 적절하게 섞었다. 더욱이 지체장애인 최승규 씨와 지적장애인 박종렬 씨의 실화를 토대로 한 이 영화에 나타나는 생명과 관계의 메시지는 신앙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여기에 불완전한 두 사람이 있다. 5세 정도의 지능을 가졌지만 뛰어난 수영실력을 가진 동구(이광수), 그리고 뛰어난 지능을 가졌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세하(신하균). 두 사람은 사회복지법인 ‘책임의 집’에서 만났다. ‘책임의 집’은 홀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친척 집을 전전하던 세하가 마지막으로 맡겨진 곳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어느 무엇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기에 그는 아마 더 이상 살아갈 의미도, 존재 의미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세하에게 박 신부(권해효)는 ‘책임의 집’의 의미를 들려준다. “누구나 태어난 사람은 그 삶을 끝까지 살아낼 책임을 가진다.” ‘살아라!’ 엄중한 생명의 명령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하에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절망에 빠진 세하가 일순간 삶의 경계를 넘어 죽음을 선택했을 때, 구원으로 다가온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동구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세하에게 동구는 손과 발이 되어주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동구에게 세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언제 어디서나 둘은 함께 ‘살았다.’ 박 신부의 말대로 “약한 사람들은 약하기 때문에 약한 사람들끼리 함께 살아가야 한다.” 생명을 향한 명령은 비단 세하와 동구와 같은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 우리 모두를 향하는 것이다.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

박 신부가 세상을 떠나고 ‘책임의 집’이 철거 위기에 놓여있을 때, 상호의존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세하와 동구는 헤어지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부족한 게 많은 두 사람은 함께할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고 여기지만, 어떤 사람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진짜 가족’과 함께 살아야 온전한 가족이 된다며 둘을 흩으려 한다. 그런 이들에게 세하가 부르짖는다. “당신들은 부족한 게 없잖아!” 세하와 동구가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의 확장이다. 그저 나를 원하는 누군가 있고, 책임질 누군가 있다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을 선택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세하처럼 말이다. 혈육이 가족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돈, 건강 등 그 어떤 것도 함께함이나 갈라놓음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비단 동구와 세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온전함에 이르는 길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미현(이솜)은 생계와 취업 준비를 위해 하루에도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시원에서 햇반과 깻잎 통조림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비장애인 청년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굴하지 않고 항상 강인해보였던 미현은 두 사람과 함께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부족함과 연약함을 감추지 않고 “약함을 내보여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입시와 취업, 진급과 사업 등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작은 실수만 해도 낙오될까 두려운 사람들에게 그 어떤 말보다 절실한 메시지이다. 홉스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자연의 법칙이라 했지만, 기독교는 약함과 부족함이 열등한 것이라고 말하는 세상에 대하여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약함이 강함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술로, 삶으로 증거해야 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장 바니에가 설립한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라는 곳이 있다. 헨리 나우웬은 하버드대를 떠난 후 생을 마치기 전까지 그곳에 머무르면서 중증 지체장애인 아담과 만났는데, 그 이야기가 책 『아담』에 적혀있다. 그는 아담을 통해 연약함의 길이야말로 예수님의 길이며 자신은 아담과 같이 자랑할 것도, 가진 것도 없으며 철저히 의존적이고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사랑으로 둘러쌀 때에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세하와 동구가 사랑으로 함께할 때, 그 곁에 미현이 있을 때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기적을 보며, 우리 역시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약함이 강함이 되고 부족함이 온전함이 되는 신앙의 원리는 이 사실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세상의 수많은 ‘세하’와 ‘동구’, ‘미현’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세하’와 ‘동구’, ‘미현’들이 필요하다. 내가 바로 이 ‘약함의 공동체’의 일원이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 가족’이 되어간다. 그것이 예수님을 따라 온전함에 이르는 길이다.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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