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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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함과 아름다움의 변주

<워 호스>(스티븐 스필버그, 드라마, 2012, 12세)

1982년에 출간된 마이클 모퍼고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워 호스>는 ‘기적의 말’에 얽힌 이야기다. 이미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이 소설은 2007년 영국국립극단, 2011년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공연되어 큰 호응을 받았고 최우수 각본상을 비롯해 토니상 다섯 부분에 걸쳐 수상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어린 말 조이는 앨버트와의 만남으로 비로소 이름을 갖게 되는데, 기병대 출신의 술꾼인 아버지가 한 눈에 좋은 말임을 알아차렸고, 자존심 경쟁에서 결코 지기 싫어했던 탓에 취기에 이끌려 경매에서 고가로 사들인 말이다. 이렇게 해서 앨버트는 조이를 키우게 되지만, 조이는 생활고 때문에 군마로 팔리게 된다. 조이로 인해 입대를 자원하지만 나이가 어려 좌절한다. 그러나 앨버트는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 후 조이는 영국군과 독일군 그리고 민간인을 오가며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게 된다.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고 또 사살 당할 위기의 순간을 여러 번 겪었어도,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을 키웠던 앨버트에게 돌아가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포탄이 쏟아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을 뚫고 달리는 조이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소설을 영화화 하면서 스필버그 감독은 ‘조이’라는 이름의 말을 중심으로 당시 전쟁의 잔혹한 모습과 인간의 욕망을 조명하였다. 소설에서 서술된 많은 내용들을 오직 이미지로만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을 스필버그는 잘 극복했다. 영화적인 재현만으로도 충분히 말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장소 물색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을 영화 곳곳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장소를 그렇게 멋지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풍경화를 감상하고 나온 듯 했다. 게다가 각색을 위해 유능한 작가들을 물색하고, 각종 상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스탭들과 함께 작업한 것에서 큰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위해 아낌없이 열정을 쏟아 부으면서 모든 일을 책임있게 수행한 스필버그 감독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영화 속에 출현한 말들은 말의 ‘연기’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사육되었다.

한편으로는 실화가 아니라서 작가의 어떤 경험이 소설로 옮겨지게 되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작가는 어떤 이유에서 동물인 말의 시선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와 그 와중에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탐색할 것을 생각했는지, 그 까닭이 궁금해진 것이다. 이런 의문은 영화에 대한 몰입을 다소 방해할 정도였는데, 왜냐하면 실제로 말이 그러한 행동과 반응을 보일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연이어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현실일까? 만일 말의 현실적인 모습이 아니라면, 작가는 무엇을 염두에 두고 그런 모습을 그린 것일까, 작품의 비유적인 의미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조이’를 비유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그리 큰 것 같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를 떠올릴 수 있었는데, 만일 <마이 웨이>를 본 관객이라면, 영화의 내용 중에 일부가 다소 유사하다는 사실을 직감했을 것이다. 수많은 전쟁터로 끌려 다니면서도 마라토너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하고, 전쟁의 위험 속에서 자신보다 타인의 안전을 배려하는 모습, 그리고 마침내 쏟아지는 포탄 세례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은 고향을 향해 무작정 달리는 군마 조이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전쟁의 참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전쟁의 무의미함을 일깨워주려고 했던 <마이 웨이> 처럼 <워호스> 역시 말의 시선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재현하면서 전쟁의 무의미함을 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조이와 더불어 고향으로 돌아간 앨버트가 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부모님과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은 밀레의 ‘만종’을 연상케 하는 평화스런 모습 그 자체였는데, 결국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여하튼 <워 호스>에서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교감과 소통을 볼 수 있다. 앨버트는 조이를 단순히 동물로만 취급하지 않고, 자신의 친구 혹은 더 나아가서 가족처럼 여기며 돌보았다. 조이가 군마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했을 때, 무작정 달리는 모습에서 필자는 마치 앨버트에 대한 그리움을 보는 듯 했다.

<워호스>를 보고 필자가 느낀 것을 철학자 칸트의 말을 빌어 표현한다면, “숭고함과 아름다움”이다. 칸트는 “우리를 위해서나, 조국을 위해서, 혹은 친구의 권리를 위해서 대담하게 위험을 감내하는 일은 숭고하다.”고 말했다. 말을 통해서 전쟁의 단면을 보고 또 그와 얽힌 이야기를 통해 평화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볼 수 있었던 것에서 숭고함을 느낀 이유는, 카메라를 통해 옮겨진 스크린에서 산과 들, 그리고 동물과 사람 모두가 어우러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며, 아름답다고 본 것은 말과 인간의 교감을 다루는 영화의 이야기가 영혼의 울림을 가져왔을 정도로 매료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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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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