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크코트>




소통하지 않는 확신이 직면하는 딜레마

<밍크코트>(신아가/이상철, 드라마, 15세, 2012)



 

가족의 갈등이 폭발하는 것은 대체로 일상이 위협받는 때지만 뜻밖의 경우일 때가 더 많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도 하고, 도저히 풀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복잡하고 또 심각한 문제들이 예상외로 쉽게 풀리기도 한다. 친밀함에서 그 누구보다 가깝지만, 또한 그만큼 쉽게 멀어지기도 한다. 가족의 이런 모순적인 모습은 무엇으로도 쉽게 끊을 수 없는 질긴 인연 때문이다. 성경은 가족의 이중적인 모습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제시해주고 있지만, 가르침의 형태는 아니다.

사실 불교에서 말하는 부부의 인연은 8000겁의 세월 끝에 맺어진다 하고, 가족의 연을 위해서는 9000겁의 세월을 헤아린다. 부부보다는 가족이 더 깊은 인연의 고리를 형성하는 셈이다. 불교용어 “겁”이란 세계가 성립하고 존속하여 파멸되고 사라지게 되는 시기를 말하는데,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의 긴 시간을 가리킨다. 예컨대, 1000년에 한 번 떨어지는 빗방울이 집채만한 바위를 뚫는 시간 혹은 백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하늘 여인(천녀, 선녀)이 지상에 내려왔을 때, 그 옷깃에 스친 사방 40리 크기의 돌산이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야 형성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가족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깨우침이다. 친밀하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간과하고 무시하는 대상이 가족임을 염두에 둔 불교의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경에서 가족은 관계의 매트릭스이며 또한 갈등과 비극이 분출하는 곳이다. 인류의 출발점에 아담과 하와의 만남과 사랑과 기쁨을 넘어 상호비난, 그리고 아들 가인의 형제살인으로 얼룩져 있는 가족사 때문이다. 예수님의 종말론적인 징후에서도 가족의 갈등은 비중 있게 언급되고 있다. 세상에서의 가족은 모든 인간관계가 지향해야 할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가족 관계는 하나님 안에서 지양된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두가 한 형제자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친밀해야 마땅한 가족 안에서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이용주 감독은 <불신지옥>(2009)에서 신앙의 확신 안에 담겨진 인간의 욕망을 잘 표현한 바 있다.(참고: 「기독공보」(2009. 9. 6.), 26면). 필자가 제대로 보았다면, 영화 <밍크코트>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이 신앙의 확신이라는 이름과 어떻게 화학적인 결합을 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밍크코트>는 서울독립영화제(2011) 대상, 부산국제영화제(2011) 2개 부문 수상작이다. 한 마디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말이다. 안락사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드러내는 가족 관계에서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는 이야기 전개가 대단히 돋보인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물론이지만, 사안과 관련해서 동요하는 인간의 내면을 근접 촬영과 핸드헬드 기법으로 잘 표현해내었다. 특히 교회가 이 영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 만한 이유가 있다면, <밀양>과 같이 영화가 기독교를 중심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서 기독교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영화는 아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에서 기독교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다시 말해 ‘영화 속 기독교 이미지’라는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왜 그런지 먼저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그 이유를 살펴보자. 그리고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색해보자.

영화 포스터를 가득 채우고 있는 주인공 현순(황정민 분)의 가족은 기독교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 언니는 돈을 잘 버는 남편과 살고 있고, 동생은 교회에서 집사로서 회계 일을 보면서 개인 사업을 한다. 1남 2녀 가운데 둘째인 현순은 남편 없이 우유배달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보여주는 일상의 편린은 그녀의 억척스러운 면모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문제가 있다면, 가족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족 간에 오가는 대화에는 가시로 가득하다.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불안하게 하는 이런 대화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서로 오가는 사이가 되었을까? 가족관계의 다양한 면모를 조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배경과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순은 자신을 무시하고 따돌리는 가족,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남겨진 유산이 불공평하게 상속된 데에 불만을 가득 품고 있다. 가족들은 그녀가 불신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가족사를 함께 공유하지 못하고, 또한 게다가 실체조차 알 수 없는 교회에 출석하는 현순을 못마땅해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의 병세는 악화되어 연명치료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그동안 지각 밑에서 끓고 있는 마그마와 같은 갈등 관계는 폭발하고 만다. 오랜 치료 기간으로 남동생은 물론이고, 언니 역시 몹시 지쳐 있는 상태다. 치료비 대기가 어려워 이제는 조카에게까지 분담을 요구할 정도다. 가족 모두가 한계상황에 와 있는 듯하다. 병원에서 조차 연명치료를 거부할 것을 제안하는 상황에서 유독 현순만은 엄마의 회생을 굳게 믿고 있다. 그녀가 만나는 여자 전도사에게서 전해들은 말씀을 엄마의 소생을 예언하는 말씀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녀가 들은 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전도사조차도 그녀의 거침없는 행동을 만류하는 상황이었지만, 현순은 자신의 확신에 따라 해석하고 또 자신의 믿음을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병원비 문제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려는 가족, 특히 형부 그리고 남동생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토해낸다.

안락사 문제를 두고 가족의 경제적인 상황과 현순의 종교적인 신념의 차이가 빚는 갈등은 극에 달한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윤리에 대한 종교적인 갈등은 아니다. 더 이상의 지출을 힘들어하는 남동생과 언니는 죽어가는 엄마가 반드시 살아날 것을 확신하며 기대하는 현순을 설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막무가내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생은 현순을 배제한 채 안락사를 감행하려 한다.

그러나 자신들을 도울 것으로 믿었던 현순의 딸 수진이 예상외로 엄마 편으로 돌아서면서 상황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환된다. 심리적인 충격으로 출산을 앞둔 그녀가 위험에 빠진 것이다. 급히 수혈을 받지 못하면 산모와 태아가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병원에서는 교통사고 환자를 위해 모두 사용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단다. 바로 이런 급박한 순간에 가족들에게 갑작스런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 그것은 현순의 말이 사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형부는 암이고, 남동생은 병원비 때문에 교회의 돈을 빼돌린 사실을 고백한다.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결국 현순의 확신에 마음이 흔들린 언니와 동생은 하루를 더 지켜본 후에 연명치료 중단여부를 결정하기로 맘을 먹는다.

문제는 급히 수혈을 받아야 하는 수진과 동일한 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가족 가운데 오직 병상에 누워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할머니뿐이라는 사실이다. 과연 이런 딜레마를 가족은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수혈을 못해 죽어가는 수진을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회생의 가능성이 희박한 할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수진을 살려야 할 것인가? 사실 이것은 가족 전체의 고민과 갈등이 아니었다. 오직 현순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불과한 일이고, 그래서 병원 옥상에서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뀐 것이다.

절규하는 순간에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는 장면은 그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가 해결될 것을 암시한다. 뿐만 아니라 언니에게서 선물로 받은 할머니의 밍크코트가 현순의 손을 거쳐 수진의 약값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지만, 결국 수진이 수술에서 깨어나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현순의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믿음의 확신도 딸의 생명에 대한 욕망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깨달음과 돌아섬, 그리고 화해였다.

영화는 기독교 소재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영화라고는 볼 수 없다. 회개, 교회, 신앙 등과 같은 주제가 영화에서 다뤄지고 있으나, 기독교 신학의 주제를 성찰하거나 혹은 기독교적인 가치와 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또한 기독교 신앙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성찰할 목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다. 크리스천 가족에서, 특히 안락사라는 의료윤리 문제를 계기로 일어나는 가족의 갈등을 보여주면서, 감독이 집중하는 부분은 가족의 갈등과 화해다. 그리고 이것조차도 현순 안에서 일어난 딜레마, 곧 그녀의 확신과 상황이 충돌하는 부분으로 수렴하고 있다. 기독교 소재는 이를 위해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용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인간의 고통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밀양>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기독교가 전면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배역들과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교회에 다니면서도 가족과 화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개인적인 일 때문에 교회 재산을 유용하는 일, 그리고 비제도권 신앙이 미치는 광신적인 모습 등은 현대 기독교인에게 매우 민감한 사안이며 또한 깊이 있는 반성과 성찰을 필요로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의 돈을 유용한 회계집사의 비행을 숙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계집사의 가족을 심방하며 슬픔을 위로하는 목사의 관용적인 태도도 볼 수 있다.

사실 영화가 기독교 영화인가라는 질문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영화적으로나 스토리 전개상에서 그리고 연기에 있어서 잘 만들어진 영화로 평가받고 있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의미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좋은 영화에는 진리적인 측면이 담겨져 있고,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영화에 주목한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드러내려는 부분은 현순의 확신 속에 담겨 있는, 혹은 그녀의 확신이 만들어내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현순은 자신의 믿음 때문에 엄마의 소생을 확신하면서도 딸의 생명을 위해 엄마의 피를 뽑아야만 하는 딜레마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로써 감독은 개인의 확신(믿음?)은 인간의 욕망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욕망이 결국 인간관계, 특히 가족 관계에서 어떤 딜레마에 빠지게 됨을 폭로하는 것은 아닐까? 바로 이런 점에서 주변상황을 보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확신으로만 일관하는, 소위 말해서 소통하지 않는 확신을 비판한 것은 아닐까?

혹자 가운데는 할머니의 수혈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이해하면서 기독교 영화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타자를 위한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비교해볼 수 있지만, 그러나 이런 유비는 신학적으로 오류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은 죄의 용서와 구원을 말하지만, 수혈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혈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은 서로 유비적 관계에 있지 않다.

한편, 영화의 내용에서 다소 도전적인 부분은 여자 전도사이다. 그녀의 말은 모두가 사실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제도권 교회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방식이 결과적으로 옳게 나타난 것이다. 꼭 병상에 있는 엄마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 해도 현순으로 그런 확신을 갖도록 유발했고, 또 마지막에는 예언의 형태로 형제우애를 말하면서 가족의 화해가 더욱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또한 그렇지 않으면 딸과 뱃속의 아이가 위험에 빠진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제도권 밖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무작정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영화에서 비중 있게 재현됨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제도권 교회에 대한 비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성도들이 교회 밖에서 성행하는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이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하는 일이기 때문에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일로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결코 주관적인 사안이 아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머리 둘 곳을 찾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또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그리고 기독교는 원래부터 예언자들을 통해서 고독한 목소리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부르신 자들을 끊임없이 세상 밖으로 보내셨고, 그들로 하여금 소통케 하심으로 비록 당대에는 인정받거나 수용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중에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셨다.

영화 <밍크코트>는 기독교를 소재로 인간의 확신과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결합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귀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런 점에서 <불신지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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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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