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대중문화 읽기 영화<말모이>: 말과 마음과 뜻이 모여



2019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이를 기리며 정부부처, 문화계, 학계, 교계 등이 다양한 행사 및 영화, 미술, 문학 등 문화 작품들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영화계는 그 흐름이 더욱 분명하다. <명량>(감독 김한민, 2014),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2014), <암살>(감독 최동훈, 2015), <동주>(감독 이준익, 2016), <택시운전사>(감독 장훈, 2017) 등 몇 년 전부터 역사를 오늘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영화가 흥행하거나 조명을 받는 가운데, 이미 개봉한 <스윙키즈>, 3·1운동을 직접적으로 다룬 <항거>(감독 조민호), <꺼지지 않는 불꽃>(감독 문홍식), 독립군의 항일운동을 다룬 <전투>(감독 원신연) 등 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가 2019년 일제강점기 영화의 시작을 열었다. 

영화 <말모이>는 1940년대 우리말의 사용이 금지된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생경한 단어 ‘말모이’란, 주시경 선생을 중심으로 1910년부터 준비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을 의미한다. 주시경 선생의 죽음으로 미발행된 이 원고를 기초로 조선어학회는 1929년부터 재작업을 시작했다. 사전 발간 중에 일어난 1942년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관련자들이 옥고를 치르고 원고를 분실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마침내 해방 이후 총 6권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전 『조선 말 큰 사전』(1947~1957)을 편찬할 수 있었다. 영화는 이 내용을 각색해 다루고 있다. 평면적인 캐릭터와 전형적인 기승전결 구도가 아쉽지만, 오늘 당연시하는 말과 글을 선조들이 지켜냈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 깊숙한 곳부터 감사의 마음이 차오른다. 우리말과 글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든다.


말은 곧 정신

“말은 곧 정신입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 등 영화 속 명대사들은 영화의 메시지를 잘 전해준다. 그저 하루 밥 벌어 먹고 살기, 두 자녀 잘 기르기가 전부였던 전과자 까막눈 김판수(유해진)는 아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의 가방을 훔치다가 들킨다. 급전이 필요했던 김판수는 조선어학회 조선생(김홍파)의 소개로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읽고 쓰기를 배우면서 점차 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류정환은 김판수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알게 되고, 전국각지에서 학생부터 노인까지, 평범한 사람들부터 지식인까지 함께 말과 마음과 뜻을 모아 사전을 만들게 된다. 

알다시피 그 당시 일제는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하여 창씨개명과 조선말 금지 정책을 펼쳤다. 일제는 말이 민족의 정신이요, 정체성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활자를 넘어서 우리나라를 지키고 민족의 정신을 지키는 민족운동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생명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우리말을 지키던 것이리라.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자국어 사전을 보유한 나라가 전 세계에서 20여 개국에 불과하다니,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우리 말과 글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이야 문맹률이 2% 정도이지만, 해방 직후인 1945년 78%에 달했던 문맹률이 문맹퇴치 교육 시행으로 3년 뒤 거의 절반 수준(41.3%)으로 떨어지고 1958년 4.1%까지 떨어진 데에는 주시경 선생과 조선어학회 등 이러한 우리말과 글을 다듬고 지키려는 노력이 기저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경도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과 신앙인들뿐 아니라, 일제로부터 우리말과 글을 지켜낸 선조들의 수고와 희생,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선조들의 희생과 노고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일어나 한문으로 된 성경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말을 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조들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자국의 정신을 담지한 언어를 통해 전 세계 그리스도인이 공유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정신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인가. 


모아야 할 언어, 따라야 할 정신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모이고, 뜻이 모이면 그 뜻이 모이는 곳이 독립의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영화는 사람들이 모여 뜻을 모으게 될 때, 독립의 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독립의 길’ 대신 어떤 길을 바라고 있는가?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즈는 교회의 교회됨으로서 세상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해 우리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현장을 목도하고 이제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비록 순탄치 않은 과정이 남아있지만,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모색되고 있는 중이다. 70여 년 간 나누어져 산 남과 북의 갈등, 차별과 혐오, 물질만능주의 등 죽음의 언어들로 가득한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위하여, 한국교회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한국사회의 대안이 되기 위하여 모아야 할 신앙의 언어들은 무엇일까? 좇아야 할 예수의 정신은 무엇일까? 100여 년 전,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 민족이 함께 독립을 외쳤던 것처럼, 갈라진 말과 마음과 뜻을 다시 모으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길’과 ‘통일의 길’이 되기 위하여, 섬김(마 20:28)과 화평(엡 2:14), 사랑(요일 4:8)의 언어들을 모으고, 마음과 뜻을 모아 ‘예수의 길(요 14:6)’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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