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개같은 내인생>읽기-사춘기 청소년의 성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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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내 인생? 제목만 들어선 아마도 양익준 감독의 2008년도 작품 <똥파리>에 나오는 인물을 떠올릴 것이다. 그는 폭력적인 채권추심원으로 지내면서 가정에선 아버지에게 폭력을 서슴지 않는 패륜아다. 사실 ‘개 같다’는 말은 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거나 혹은 행실이 형편없는 사람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일상어에서 ‘개 같다’는 표현은 대체로 대상을 비하할 때나 욕으로 쓰인다. 

그러나 사실 반려동물로서 개는 주인에게 무척이나 충실하다. 주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여론을 통해 가끔 접하는 소식이지만, 이미 사망한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이나, 쓰러진 주인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킨 모습을 생각해보라. 또 주인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는 동물인가. 영화 제목 속의 “개”는 바로 주인에게 충실한 반려동물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영화는 스웨덴 작가 라이다 옌슨(Reidar Jönsson)의 동명의 자전적인 3부작 소설 중에서 두 번째 부분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다. 시대적인 배경은 1950년 후반이고, 12살 소년 잉에마르의 성장이야기다. 잉에마르의 아버지는 아프리카로 일하러 갔고, 잉에마르는 형과 함께 병든 엄마와 살고 있다. 아버지의 부재는 사춘기 소년들을 홀로 키우는 엄마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데, 두 형제의 좌충우돌의 일상은 엄마의 병 치료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정도가 된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두 형제는 각각 친척집으로 보내진다. 여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는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두 형제는 다시금 친척집으로 가는데, 잉에마르는 지난여름에 보냈던 남 스웨덴 지역의 작은 마을에 머물게 된다. 집에서와 같이 말썽을 피우지는 않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며 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잉에마르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곧 적응하며 살게 된다. 

피트 닥터의 <인사이드 아웃>(2015)에서 볼 수 있듯이, 사춘기 시기의 청소년에게 심리적으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는 호르몬 조절의 불균형 때문이다. 특히 이성적인 통제보다는 감성적인 반응에 더욱 민감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사춘기는 노도와 질풍의 시기일 수밖에 없다. 잉에마르는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고, 엄마와 함께 머물면서 엄마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언제나 엄마를 화내게 하는 일 뿐이었다. 게다가 엄마가 중병을 앓게 되면서부터는 엄마 곁에 다가가는 일도 쉽지 않게 되었다. 엄마 곁에서 늘 엄마의 기쁨이 되길 원했던 잉에마르는 깊은 외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모리스 피알라의 <벌거벗은 유년시절>(1964)에 등장하는 악동처럼, 사춘기 소년의 천사적인 면과 악동적인 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영화 이해의 관건은 한편으로는 잉에마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춘기 소년의 현실을 공감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감을 바탕으로 그들을 심리적으로 돌볼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잉에마르가 반복해서 언급하는 두 마리의 개다. 하나는 실험을 위해 우주선에 태워 우주공간으로 보내진 레이카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키웠지만, 집을 떠나면서 더 이상 키울 사람이 없어 사육장에 보냈던, 그러나 나중에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던 시칸이다. 전자는 인간의 탐구를 위해 지구 밖으로 보내졌고, 후자는 사람과 더 이상 함께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세상 밖으로(죽음의 세계로) 보내진 것이다. 

잉에마르는 스스로를 두 마리의 개와 비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노도와 질풍의 시기를 힘겹게 보내는 잉에마르에게 아버지와 엄마의 부재는 마치 잉에마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지켜보기 위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레이카로 여겨질 뿐이다. 그리고 엄마에게 충실한 아들이 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엄마와 함께 살 수 없는 외로운 존재가 된 시칸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엄마가 죽은 후로는 더 이상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어 영원히 엄마 곁을 떠나 사는 존재로 스스로를 생각한 것이다. 영화 끝 무렵에 개 짖는 소리를 내며 스스로 개가 된 것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은, 기꺼이 엄마의 기쁨이 되길 바라는 잉에마르가 엄마 곁에 충실하게 남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개로 소외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외로움을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잉에마르에게도 변화가 일어나는데, 자신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여자 친구가 생긴 것이고, 그녀와 다정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1987년 뉴욕비평가와 1988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어른이 아닌 아이의 시각으로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보고, 또 어른들과의 관계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사춘기 청소년을 이해하고 또 어떻게 돌볼 수 있는지와 관련해서 많은 도움을 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청소년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이 보면 좋을 영화라 생각한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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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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