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빈의 문화칼럼] 정체성의 정치와 교회, 신앙인




오늘날 우리 사회는 평안하지 않다.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졌고, 정치적으로 자유화됐으며, 문화적으로는 다양화됐다. 그러나 불안은 커지고 갈등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가히 불안과 갈등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우리 시대는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러한 갈등과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를 분석할 때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통찰은 도움이 된다. 후쿠야마는 ‘정체성: 존엄성의 요구와 분노의 정치학’을 통하여 오늘날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사회문화와 정치현상을 정체성과 정체성 정치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정체성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도덕적 이념’이라는 사회철학자 찰스 테일러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국경이나 특정 문화권을 뛰어넘어 작동하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문화와 정치현실에 주목한다. 정체성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심리적 본능에 기초하고 있다. 정체성이 일종의 도덕적 이념이 된다는 것은 외부적 조건들로 인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내적 자아들이 있음을 인식하게 됨을 의미한다. 존중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들은 외부 세계와 사회에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데, 후쿠야마에 따르면 이러한 자기 존중에 대한 요구는 사라질 수도, 사라지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도 평등한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과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시민이라도 출신 지역과 배경, 나이, 성별, 인종과 피부색, 직업, 경제 상태 등에 따라 정부나 다른 시민들에게 차별받고 있다는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한 개인, 집단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이 확산되고 있다. 사실 정체성을 둘러싼 혼란과 갈등은 가속화하는 근대화와 세계화로 확산되며 심화되고 있다. 가속화하는 세계화는 전통과 과거로부터 지속적 변화와 단절을 의미하며, 따라서 기존의 사회정치적 환경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사회문화 적응에 도움 역할을 하였던 종교와 민족주의도 이제는 의혹과 불안의 대상이 되며, 정체성 정치의 도구가 돼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과거를 이상적으로 그리워하도록 만들고 있다. 특별히 선진 강대국에 사는 이들은 예전의 사회가 안정된 공동체와 질서 있는 생활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그들이 직면하는 불안한 상황은 자신들의 유익이 기존 권력 구조들에 의하여 무시되고 배반당했기 때문에 온 것이라는 선동에 동조하게 됐다. 따라서 이제 다시 자신들이 존중받던 공동체 시절로 돌아가야 함을 강조하는 정치지도자에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 미국 정치현실에 대한 후쿠야마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에게는 돌아가야 할 과거에서 정체성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이루어가야 할 정체성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존중해 주는 기본적 사회비전에 합의하며, 그러한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법적 내용을 만들고 실천하도록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 통일한국은 어떤 사회인가. 그 통합적 비전을 찾는 것이 조금 더 치열하게 꿈꾸고 노력해야 할 우선적 주제일 것이다. 

신앙인들이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다양한 정체성을 품으면서 통일된 나라를 꿈꾸고 실천하도록 더욱 분발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종교가 정체성 정치를 위한 도구로서 이용되는 현실, 분노의 정치, 분열의 정치 속에서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화해와 통합의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더욱 간절한 오늘이다. 기독신앙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엄청난 정체성의 비밀을 증거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출처] - 국민일보 

문화선교연구원 CVO 임성빈(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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