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서치> 읽기: SNS에서 얻는 자아와 실종되는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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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로부터 깊은 울림을 받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 있다.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다음의 과제를 제시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을 어떻게 하면 스크린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염두에 둔 연출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디 앨런은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과 스크린 속 배우가 현실과 스크린을 오가며 서로 소통하도록 했다. 이로써 그는 영화적인 상상력의 단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비참한 현실에 놓여 있는 여성 관객이 영화적인 현실을 꿈꾸면서 실제의 삶을 회복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영화가 갖는 치유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느 정도 분별력을 지닌 관객이 영화 속 캐릭터를 보고 깊이 공감하여 일체감을 느끼고, 영화의 핍진성이 뛰어나 영화와 현실이 더는 구분되지 않을 정도가 된다면, 아마도 감독에게는 가장 성공적인 영화일 것이다. 비록 영화는 현실이 아니고 영화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디 앨런은 영화를 통해 현실감을 높이려고 노력했고, 이로써 영화에 치유력이 있음을 보여줄 수 있었다.

영화 <서치(Searching)>는 어려서 엄마를 잃고 지내면서 사춘기를 맞이한 딸이 갑자기 실종된 후에 아버지가 애타게 딸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내용적으로 볼 때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영화다. 앞서 언급한 관점에서 영화를 본다면 이 영화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끌어들여 배우의 관점에서 영화를 보도록 해 배우가 보는 것이 곧 관객이 보는 것이 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관객은 딸의 시각에서 혹은 아버지의 시각에서 영화를 보게 된다. 실종과 관련해서 특별히 기대되는 사건 연출이 없고 단지 실종되었다는 현실과 컴퓨터를 통한 검색 과정으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조금도 놓을 수 없게 만든 원인이다. 무엇보다 딸이 실종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의 상실감과 자책감과 간절함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영화서사에 몰입함으로 일어날 수 있는 관점의 일치가 영화 제작 방식을 통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한 감독의 연출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외에도 영화를 보고 필자는 두 번 더 놀랐다. 한 번은 주연 모두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한 번은 핸드폰과 노트북 그리고 PC화면으로 구성된 독특한 제작방식이다. 물론-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이곳에선 말할 수 없는-이야기의 반전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결말이다. 새로운 시도라는 측면이외에도 영화적인 맥락에서 이것들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해 하나씩 살펴보려 한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2018년도를 결산할 때 주목할 만한 영화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2.

영화 제작 방식이 독창적이고 획기적이라는 사실은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디지털 기기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영화이다. 저예산 영화로 대박을 쳤다. 특히 디지털 기술로 가능한 것은 스펙터클한 CG만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컴퓨터 캠과 스마트 폰 사진기 등을 사용해서 찍은 장면들을 스크린을 통해 보도록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사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를 프로젝트에 연결해서 큰 화면에 투사된 것을 보는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촬영기기와 연출의 변화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가장 큰 부분은 관객이 컴퓨터 캠이나 스마트 폰을 통해 보는 동안 영화 속 등장인물과 동일한 관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사실 촬영을 포함한 연출 방식에서 다른 영화에 비해 차이가 있다 해도 스크린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카메라로 찍은 것이나 컴퓨터 캠이나 스마트 폰으로 찍은 것 사이에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영상의 질과 앵글이 달라지고 화면에 투사된 것들이 주로 실내에 제한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컴퓨터 스크린을 보는 경우가 많아졌을 뿐이다. 영화관 안에서 스크린을 보는 관객 역시 영화 속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인데, 이로써 관객의 몰입은 최고 상태를 기록할 수 있었다. 감독이 애초에 영화를 통해 의도한 것은 바로 이 점이 아니었나 싶다. 



3.

영화를 보고 놀란 또 다른 점은 영화 속 주인공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컴퓨터를 활용하는 능력이나, 특히 검색 엔진을 사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딸의 전화를 받지 못한 하룻밤 사이에 딸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 김은 딸의 실종과 관련한 모든 정보들은 물론이고 결정적인 단서를 전화나 주변인 탐사나 현장 답사보다는 컴퓨터에 저장된 기록들과 온라인 검색을 통해 찾아낸다. 지인들을 방문하고 현장을 직접 찾는 일보다 더욱 빠르고 심지어 정확하다.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영화에서 간혹 주요인물로 등장하긴 해도 모두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혹시 영화 이야기와 배경이 한국과 관련되었다면 모를까 사실 한국과 전혀 무관한 설정이다. 그런데도 주연은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고 오히려 백인들은 조연으로 등장한다. 영화를 비평하는 몇몇 글 가운데는 영화시장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를 환기하는 글들이 있다. 충분히 공감할 만한 지적이다. 그러나 한국계 미국인으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영화라면 어찌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캐스팅했는지 의문이다. 제작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도 석연치 않다. 

오히려 필자는 IT 산업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점유하고 있는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싶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은 전 세계 IT 산업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전국적인 인터넷망과 빠른 서비스에 놀라곤 한다. 거리에서 길을 걷거나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안 혹은 카페에서 핸드폰과 노트북을 이용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카페에서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SNS로 소통하는 장면은 흔히 볼 수 있는 차마 웃지 못 할 진풍경이다. 

컴퓨터 활용 능력이 뛰어난 캐릭터 설정과 관련해서 한국계 미국인을 캐스팅한 목적은 분명 IT 산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 기기를 매개로 살면서 SNS에 의지하는 삶이 어떠한 지를 보여주기 위해 IT 분야에서 선두의 위치에 있는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 아닌지 싶다.


 

4.

위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영화는 IT 기술을 매개로 실재가 아닌 인터넷 공간에서 현실감을 느끼며 살 때 일어날 수 있는 자아 실종을 은유한다. 사람들은 현실보다 더 빠르고 또 더 정확한 정보들을 온라인 컴퓨터를 통해 얻는다. 사람들과의 소통 역시 인터넷 채팅 프로그램을 통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익명의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한다. 물론 이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왜곡되고 조작된 정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실에서와는 달리 모니터에 제한되어 있을 수밖에 없어서 모니터 밖에 있거나 그곳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조작된 채 유포되는 거짓 정보에 속아 피해를 입는다. 때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한다고는 하나 말의 정확한 전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 심각한 오해에 빠지기도 한다. 영화는 인터넷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또 SNS를 통해 얻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상실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종’이라는 설정으로 표현하였다. 가짜 정보는 현실을 왜곡할 뿐 아니라 가짜를 진짜로 믿는 사람의 정체성 실종을 유발할 수 있다. 영화는 딸의 실종을 계기로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SNS에서 잘못된 정보가 왜 그리고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확산되는지,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어떤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SNS를 사용하는 동안 왜곡되고 조작된 정보 때문에 발생하는 자아 실종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것이 영화가 관객에게 제시하는 화두이며, 이것과 관련해서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사람들이 SNS를 통한 소통하는 방식을 버리지는 않는다 해도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소통을 결코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이 필요하긴 해도 그곳에 갇혀 있으면 안 되듯이, 현대인에게 SNS는 필요하다 해도 그곳에 갇혀 있으면 참다운 소통이 이뤄지지 못할 뿐 아니라 건강한 자아 형성에 실패하기도 하고 심하면 자아가 실종될 수도 있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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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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