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영화의 고전들 <다윗과 밧세바>(1951): 20세기 할리우드가 선택한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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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TV 시리즈 드라마의 첫 회처럼, 구약성서 사무엘하 11장은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를 목욕 신으로 시작한다. 왕이 늦은 오후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중인 한 여인을 발견하고 불러다 동침했다. 그는 자신의 신하인 여인의 남편을 전장에서 죽게 만들고 여인을 아내로 취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간통사건인 이 이야기에는 에로티시즘과 치정 살해, 권력의 횡포, 음모와 계략이 있고 영웅의 실수가 있으며, 그에 합당한 처벌과 용서까지,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1950년대 할리우드는 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두터운 성경책에서 잘도 골라내었다.

혈통과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선택받은 왕, 천하의 다윗도 실수를 하고 죄를 범한다. 하지만 선지자 나단이 잘못을 지적했을 때 그는 곧바로 참회했고, 바로 이 점이 다윗을 더욱 위대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정의로운 하나님은 죄의 대가로 아기를 데려가셨지만, 다윗과 밧세바에게 곧 새로운 아들로 솔로몬을 주셔서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기도 하심을 스스로 증명하셨다. 다윗과 밧세바 사건의 메시지는 대략 이와 같은 내러티브를 따라 우리에게 익숙한 패턴으로 전달되어 왔다.

 

20세기 폭스사가 제작한 헨리 킹의 영화 <다윗과 밧세바>는 조금 다르다. 1951년에 출몰한 이 다윗(그레고리 펙 분)은 무심한 남편을 둔 가련한 여성의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고 과감히 주장하며, 나단이 책망할 때 곧바로 회개하지도 않고, 신의 성품에 의문을 제기하며 하나님을 스스로 만나기 위해 선지자 대신 골방, 즉 금지된 공간인 지성소를 찾는다.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몬 것도 영화에서는 자신을 가장 큰 전투에 앞세워달라고, 우리아가 다윗에게 먼저 요청해서였다. 그의 죽음에서 다윗의 책임을 경감하고, 밧세바(수잔 헤이워드 분)에게도 목소리를 부여하여 그와 함께 참회하게 하는 설정이었다. 밧세바는 말한다.저 또한 우리아가 죽기를 원했어요. 당신 혼자 감당하게 했으니 내 죄가 더 커요.”

왜 그랬을까? 크고 작은 일련의 변형을 통해 영화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한 남자이고 싶었던 대왕 다윗

 

영화 <다윗과 밧세바>는 전장에서 병사들과 함께 순찰을 도는 다윗의 소탈한 모습으로 시작한다. 총사령관과 병사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다윗은 여기서 남편 우리아를 밧세바보다 먼저 만난다. 그는 우리아의 충심과 용맹을 격려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한편 다윗이 목욕하는 밧세바를 발견한 것은 아내 미갈과 심각하게 다툰 직후였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떠난 것을 알고 질투에 빠져 있을 뿐 아니라, 천한 양치기 출신이라며 다윗의 혈통을 경멸한다.

이처럼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각자의 배우자를 언급하면서 영화는 이 이야기가 욕정에 휩쓸린 다윗의 실수요부밧세바의 유혹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전제한다. 오히려 이들의 일탈은 노골적인 무시와 위협 속에서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정치적으로 유지해야했던 권력자와 매사에 대의명분이 앞서는 남편 때문에 불안하고 외로운 한 여인의 운명적인 만남처럼 보인다. 다윗은 밧세바에게 한 남자로서 이해받기를 원한다고 말했고, 밧세바는 미갈과 달리 양치기 시절 다윗의 노래에 관해 물으며 그에 호응한다. 밧세바와 만날 때 다윗은 왕의 옷을 벗고 양떼와 목자들 틈에서 물맷돌을 던지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평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밧세바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다윗이 꼼수를 부려 우리아를 불러들였으나 우리아가 밧세바와의 동침은커녕 집에 들어가기조차 거부하면서 우리아가 결국 전장으로 돌아가 죽임을 당한다. 그들은 곧 결혼했지만 아들이 병으로 죽고 백성들의 민심은 다윗에게서 돌아서서 다윗은 궁지에 몰린 신세가 된다.

 


왕가의 정통성을 증명해야 하는 양치기의 아들다윗

 

성경 본문으로부터 흐름이나 초점이 어긋난 지점들이 있지만, 영화 <다윗과 밧세바>는 우리에게 이 사건을 당대의 역사적인 상황과 구약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영화 제작자들은 물론 이스라엘 역사가들이나 성경의 저자들에게도 다윗의 일탈은 결코 다루기 쉽지 않은 문제였을 텐데, 무엇보다 그 일탈의 결과가 솔로몬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죄의 결과로 왕가의 혈통을 삼은 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왜 큰아들 암논도, 다윗 자신이 보기에도 빼어난 압살롬도 아닌 하필 밧세바의 소생이었을까? ‘모자란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주권이라는 최종 결론에 이르기 전에 뭔가 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구약성경 사무엘하에서 다윗과 밧세바 사건(11-12)은 법궤 운반과 사울의 후손의 등장(6-9), 암논과 압살롬의 갈등과 압살롬의 반란(13-15) 사이에 기록되어 있다. 본문을 따라 영화 <다윗과 밧세바>는 왕이 된 이후에도 다윗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다고 증언한다. 요컨대 아내이자 왕비이면서도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을 멸시했고, 백성들은 수시로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왕이 되었어야 했다고 수군거린다. 더욱이 소년 압살롬은 주요한 사건의 현장마다 다윗이 손수 쥐어준 칼을 손에 들고 나타나 장차 다윗의 왕권에 큰 위협이 될 것을 암시한다.

법궤 사건과 다윗의 불륜이 개별적 사건이나 개인의 일탈이 아닌 다윗 왕조의 정통성의 문제가 되어 서로 엮이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사무엘하 6장이 전하는 대로, 헤브론에서 왕노릇하다가 이스라엘의 전체의 왕이 된 다윗이 가장 먼저 한 일은 20년 동안 아비나답의 집에 방치되어 있던 법궤를 옮겨오는 것이었다. 법궤는 곧 하나님의 임재이자 그분의 권위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이는 다윗의 왕좌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불안한 정치적 상황을 타계할 묘책이기도 했다. 미갈이 비웃거나 말거나(삼하6:20-23), 대왕 다윗이 춤을 춰도 마땅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법궤에 손을 댄 웃사가 즉사하면서 이 계획은 일차적으로 위기를 맞는다. 하나님은 그렇게 만만한 분이 아니었다.

영화는 웃사의 죽음을 밧세바와의 만남 이후에 배치하고 곧바로 백성들이 간통한 여인을 처벌하는 장면을 추가함으로써 이 사건을 다윗이 왕의 법 위에 있는 하나님의 법과 엄정한 그분의 성품에 직면하는 계기로 만들었다.

 


20세기 다윗은 용서의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는가?

 

사무엘하의 본문과 달리, 영화에서 선지자 나단은 아이가 죽은 후에야 다시 나타나 가난한 자의 암양을 빼앗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다윗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책망한다. 백성들은 다윗의 간통을 문제삼아 밧세바의 처벌을 요구하고 다윗의 왕권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윗은 곧바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뿐 아니라, 웃사처럼 죽을 각오를 하고 하나님을 대면하러 법궤 앞으로 간다. 길을 막는 나단에게 다윗이 한 말이다. “하나님이 정의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다른 사람이 저지른 죄 때문에 하나님이 힘없는 여인을 죽이시는 분이시라는 것은 믿지 못하겠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정말 그런 분이라면, 만약 이게 정말 그분이 바라시는 정의라면, 그분께 직접 듣겠습니다.”

지성소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방식은 가장 순수했던 시절, 몽상가이자 노래하는 양치기 소년에 불과했던 자신을 택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웃사와 달리, 법궤에 손을 대고도 살아남은 다윗은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 , 선지자의 권위에 순종하는 방식 대신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실존적인 경험을 통해서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다윗의 별을 국기에 새긴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1948)을 목격한 20세기의 여우같은할리우드(20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는 이처럼 다윗의 범죄와 회개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절대적 권위에 대한 순종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여기서 신적인 만남에 대한 개인의 의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못지않게 중요한 신앙의 동인이 된다. 이 시기는 마침 유대인의 자본과 영향력이 전방위적으로 꿈틀거리던 때이기도 했다(‘20세기 폭스사의 대표 조셉 M. 솅크와 20세기사와 합병하기 전 폭스사의 윌리엄 폭스는 모두 할리우드의 이름난 유대인 사업가들이었다). 헨리 킹이 재현한 다윗은 한때 나치 박해의 상징이었던 다윗의 별이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진 옷을 입고 있다.

한편, 성경이 꿋꿋하게 헷사람(가나안 사람) 우리아의 아내라고 기록하는 밧세바에게 이스라엘 부족의 이름을 되찾아준 것도 영화의 흥미로운 선택이었다. 사무엘하는 밧세바를 엘리암의 딸이자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삼하 11:3)라고 소개했고, 드물게 언급된 다른 여성들(라합이나 룻 등)과도 구별되게 예수님의 족보에서는 이름 없이 우리아의 아내’(마태복음 1:6)인 반면, 영화는 그를 정확히 벤야민 부족의 히브리인 밧세바로 호명한다. 왕국의 정통성에 관한 한, 20세기 할리우드에서도 혈통은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최은 | 영화를 매개로 한 크고 작은 만남들과 글쓰기의 기회들에 감사한다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하고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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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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