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영화의 고전들 <쿼바디스> -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왜 '고전(古典)'인가?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을 말하는 시대에 '고전'을 말합니다. 어제가 없이는 오늘, 그리고 내일이 있을 수 없듯이 [성경 영화의 고전들]을 통해 내일을 위해 어제의 영화가 오늘의 기독교에 주는 메시지를 들어봅니다. - 편집자 주 


폭군 네로와 기독교 박해

 

서기 64년 여름, 로마에 대화재가 있었다. 대경기장 관중석 밑의 가게에서 시작되어 로마의 14개 행정구 중 10개 구역을 불태운 이 화재는 나흘간이나 지속되었다. 사람들은 당시 도심에 황금궁전 건설을 계획하고 있던 네로를 의심했고, 그가 불타는 로마를 내려다보며 리라에 맞춰 일리아드의 트로이 함락장면을 읊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황제의 옷을 벗어두고 가수로 자주 무대에 설 만큼 노래와 시를 좋아했으며 어머니와 아내를 살해한 전력이 있는 이 젊은 황제는 이제 방화범에 미치광이로 역사에 기록될 위기에 처했다. 네로는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기독교도들을 희생양으로 삼았지만,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최악의 기독교 박해자라는 오명을 하나 더 얻었을 뿐이다.

스튜디오 MGM에서 머빈 르로이가 연출한 1951년 영화 <쿼바디스>는 위의 두 사건, 로마의 대화재와 기독교 박해를 다룬 두 장면으로 영화사에 족적을 남겼다. 새빨갛게 불타는 도시 로마와 그리스도인들이 사자들에게 희생당하는 원형경기장 장면은 <벤허>(1959)의 전차경주와 <십계>(1956)의 홍해만큼이나 유명하다. 역사가들은 당시 네로가 화재진압을 앞장서서 지휘했고 사후처리나 예방정책에도 기여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헨리크 셴키에비치의 노벨상 수상작 쿠오바디스(1895)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 <쿼바디스>미치광이 예술가 네로쪽을 내러티브의 조연으로 채택했다.



 

로마 개선장군의 회심

 

네로 황실의 실력자 페트로니우스(레오 겐 분)의 조카이자 로마군 사령관인 마커스 비니키우스(로버트 테일러 분)는 개선행진을 위해 로마로 돌아와 잠시 머문 플라티우스 장군의 집에서 아름다운 리지아(데보라 커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리지아는 장군이 과거 정복전쟁에서 인질로 얻어 수양딸로 삼은 리지아국의 공주였다. 네로(피터 유스타노프 분)에게 개선선물로 요청하여 리지아를 획득하려던 단순한 시도가 실패한 뒤 그녀를 찾아나섰다가, 비니키우스는 리지아와 플라티우스 부부가 그리스도인임을 알게 된다. 리지아 덕에 바울과 베드로를 차례로 만나게 된 비니키우스는 폭력을 거부하고 용서를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궁금해하다가 결국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그에 따르는 박해도.

한편 핍박을 피해 로마를 떠나던 베드로(핀레이 커리 분)는 도중에 그리스도를 만난다. 갑자기 나타난 강한 빛을 향해 그가 어디로 가십니까, 주님?”이라고 묻자, 주님은 나의 어린 양들이 로마에서 날 찾고 있다. 네가 내 양들을 버린다면 나는 다시 십자가에 매달리러 로마로 갈 것이다.”라고 답했다. 영화의 제목 쿼바디스는 베드로가 길에서 던진 이 질문(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에서 비롯되었다.


 

두 개의 노래, 두 개의 죽음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은 곧 내가 어디로 가야할까요?”라는 물음이기도 했다. 그분의 제자인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답은 명료했다. 그것은 박해받는 내 어린 양들이 있는 곳이며 죽음의 현장, 그가(우리가) 막 도망쳐 나온 그곳이다. 원형경기장의 관중석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자신도 붙잡혀 십자가에 못박힐 운명을 자처한다.

비니키우스는 물론 폭군 네로조차도 놀라게 했던 그리스도인들의 찬송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경기장에서 사자밥이 되어 죽어가면서도 멈추지 않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평온한 노래는 불안과 광기에 흔들리는 황제 네로의 노래와 대조를 이룬다. 어쩌면 둘은 모두 죽음을 하찮은것으로 여겼기에 그 앞에서 노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보호해야 할 수많은 생명을 하찮게 여긴 네로의 노래는 스스로의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인들의 노래 앞에서 끝내 우스꽝스러워지고 말았다.



 

풍자의 종말: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영화 <쿼바디스>에는 네로 이외에도 흥미로운 조연들이 여럿 등장한다. 처음부터 눈여겨보게 되는 인물은 네로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불렀던 페트로니우스다. 네로가 시를 지을 때마다 교묘하게 비꼬는 말로 네로를 쥐락펴락하는 페트로니우스는 네로 시절 실존했던 풍자가였다. 페트로니우스 캐릭터는 폭군에 미치광이에 가까운 네로를 차마 완벽히 미워할 수 없는 엉뚱한 인물로 그려내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네로에게 무조건 굴복하지 않을만큼은 지혜롭지만 충분히 정의롭지는 못했고, 그리스도인들이 옳을지 모른다고 인정했으나 조카 마커스와 달리 그 공동체에 선뜻 들어가지는 못한 인물로 소개한다.

어리석은 네로를 마음껏 비꼬는 것으로 최소한의 자존심을 유지해오던 페트로니우스를 결정적으로 좌절에 빠뜨린 것은 도시에 불을 지르고 새 도시 건설(바꾸어 말하자면, ‘재개발이다!)을 노래하더니, 급기야 가장 약하고 죄없는 그리스도인들로 희생양을 삼은 네로의 사악함이었다. 이미 자신의 선을 떠난 네로의 광기를 막을 길이 없음을 깨닫자, 페트로니우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풍자로 유지해 온 삶을 끝내기로 한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는 직언으로 쓴 편지를 네로에게 보냈다.

도처에 위험과 악이 도사리고 있고 무차별 폭력과 억울한 죽음이 일상화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켜보며 조롱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혹은 어느 순간은 더 이상 풍자 같은 최소한의 유희조차도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쿼바디스>는 페트로니우스의 자결을 통해 알려온다. 풍자의 끝은 죽음이고 비극이다. 그에게 사랑을 알려준 유일한 여성이었던 노예 유니스에게 페트로니우스가 건넨 말은 그래서 더 큰 여운으로 남는다. “폭도들에게 네로가 방화범이라고 밝히고 새 황제를 추대할 수도 있었는데! 역사에 자취를 남길 수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  



최은 | 영화를 매개로 한 크고 작은 만남들과 글쓰기의 기회들에 감사한다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하고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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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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