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5명의 기독교인 : 정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



세상을 바꾼 5명의 기독교인 : 정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


주님은 주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음의 다섯 사람, 윌리엄 윌버포스, 도로시 데이, 윌리엄 부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가이사랴의 성 바실의 삶을 살피며 무엇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인지를 알고, 그들과 같이 우리도 한줌의 용기를 내어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고 우리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relevant magazine에 실린 재커리 퍼킨스의 글을 번역했습니다. - 편집자 주


천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각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았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도록 고취시켰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신앙의 본보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음은 다섯 사람이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던 삶의 궤적들이다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윌리엄 윌버포스는 21세에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18세기 후반 영국 의회 중 가장 똑똑한 지성인 중 한 명이었다. 20대 중반에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되었고, 몇 년 후에 영국 노예폐지 운동에 참가했다.

20년 동안, 윌버포스는 1807노예무역법(Slave Trade Act)’이 통과될 때까지 의회에서 노예 매매 반대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건강이 안 좋아질 때까지 계속해서 노예제 완전 폐지를 위해 일했다. 그는 영국에서 1833년 노예제도 철폐법 통과 바로 직전에 사망했다.

 



도로시 데이(Dorothy Day)

1897년 뉴욕에서 태어난 도로시 데이는 Catholic Worker Movement’을 시작하면서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평생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 싸웠다. 언론인으로 시작하여, 다소 자유분방한 인생을 살며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도로시 데이는 이웃집 한 수녀의 가르침을 받아 가톨릭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성인이 되어 개종했다. 집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근로 환경을 본 후, 그녀는 <가톨릭 노동자 신문(Catholic Worker newspaper)>을 발간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부당함에 대해서 자주 글을 썼고, 평생 정치적 급진주의자로 살았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198083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믿음은 더 커져갔다.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산업 혁명의 절정에 이르렀을 당시, 윌리엄 부스는 감리교 목사였다. 그는 복음 전도에 열정적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런던 동부 변두리를 자주 방문하곤 했다. 그는 가난하고 빈곤한 사람들 사이에서 소명을 발견했다.

1865년 부스는 Christian Mission Society’를 만들었고, 이것이 구세군이 되었다. 곧 이 구세군은 런던 각지의 빈민 주택, 무주택자들을 위한 주택, 직업 교육 기관 등을 설립하며 여러 전도활동들을 해 나갔다. 부스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복음이 증거 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이 땅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했다. 구세군은 금새 유럽 전역과 세계 전체로 뻗어 나갔다. 여러 봉사활동을 통하여 윌리엄 부스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메시지는 계속 퍼져 나가고 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St. Francis of Assisi)

1206지오반니 베르나도네(Giovanni Bernadone)’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는 로마 성 베드로 바실리카로 순례를 떠났다. 그는 교회의 엄청난 호화로움에 압도되었지만, 바실리카의 풍요와 바실리카 문밖 걸인들의 빈곤 사이의 대비를 무시할 수 없었다.

베르나도네는 그 걸인 중 한 명과 옷을 바꿔 입고 직접 구호 물품을 구걸했다. 그는 곧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모든 세상 소유물을 포기하는 데 헌신하는 수도회를 설립했다. 20133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266대 교황으로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받으며,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성 프란치스코의 유산 때문에 이 이름을 받은 것이다.

 


가이사랴의 성 바실(St. Basil of Caesarea)

가이사랴의 주교였던 바실은 오늘날까지 고대 기독교 믿음에서 가장 저명한 대변인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370년에 주교로 임명 받아 오랫동안 사회적 정의에 대하여 설교했다. 주교가 되고 얼마 안 있어, 그 권위를 실행에 옮겨 지역 곳곳에 급식 시설, 병원, 호스피스, 빈민 주택을 설립했다. 그는 또한 사회 정의를 구현하지 못한 당국을 비판했다.

성 바실은 헌신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기독교 믿음의 진리를 옹호했다. 그가 한 설교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여러분들이 먹지 않은 빵은 배고픈 자들의 것이요, 옷장에 걸려 있는 의복은 벗은 자의 것이요, 신지 않는 신발은 맨발인 자들의 것이요, 감쳐 둔 돈은 가난한 자들의 것이요, 행하지 않는 자선 행위는 여러분들이 저지르는 너무나 많은 부정행위이다.”

 

재커리 퍼킨스(Zachary K. Perkins) 

퍼킨스는 자유 기고가이자 블로거, 전업 남편이고 또한 세 아이의 아버지이다. 또한 Theologues.com 창시자이다. 이 사이트는 기독교인들의 믿음에 대한 배움이 더 커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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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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