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을 보고 - 소명과 저항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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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과 저항정신

<베테랑>


최성수

감독 류승완 | 장르 드라마/액션 |15세 | 2015

 

시놉시스

한 번 꽂힌 것은 무조건 끝을 보는 행동파 서도철’(황정민), 20년 경력의 승부사 오팀장’(오달수), 위장 전문 홍일점 미스봉’(장윤주), 육체파 왕형사’(오대환), 막내 윤형사’(김시후)까지 겁 없고, 못 잡는 것 없고, 봐 주는 것 없는 특수 강력사건 담당 광역수사대.

오랫동안 쫓던 대형 범죄를 해결한 후 숨을 돌리려는 찰나, 서도철은 재벌 3조태오’(유아인)를 만나게 된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안하무인의 조태오와 언제나 그의 곁을 지키는 오른팔 최상무’(유해진). 서도철은 의문의 사건을 쫓던 중 그들이 사건의 배후에 있음을 직감한다.

건들면 다친다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서도철의 집념에 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조태오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포위망을 빠져 나가는데


<베테랑>은 분풀이를 넘어 거의 한풀이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영화로 여겨질 만큼 정의의 상실과 관련해서 대한민국 사회에 맺힌 것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영화다. 자본주의 먹이 사슬에서 최상위에 있는 재벌들의 갑질 횡포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폭로하고, 우리와 비슷한 처치에 있는 한 형사가 부패한 재벌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먹이는 내용이니, 여타의 공포스릴러 영화보다 더 시원함을 안겨준다. 비록 영화에서처럼 재벌에 대한 응징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지, 응징이 법적으로 얼마만큼 뒷받침해줄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속이 확 풀어지는 느낌은 숨길 수 없다. 추측컨대, 이 영화는 광복 70주년 기념에 즈음하여 독립군들의 희생을 다시 한 번 기리고 또한 아직 채 청산되지 못한 친일세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영화 <암살>과 더불어 그간 재벌들의 갑질 폭력에 여러 모양으로 시달린 서민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천 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소식이 아니겠는가.

영화에 등장하는 갑질 횡포의 사례들은 허구가 아니라 여론에서 오르내렸던 것이다[매일신문, "영화 베테랑과 한국의 재벌"] 회사 앞에서 부당해고에 대해 일인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를 회사 안으로 불러들여 골프채로 폭력을 행사하고 이천만 원을 맷값으로 제시한 것이나, 재벌 아들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며 상무에게 매질하는 회장의 모습, 그리고 재벌 2세들의 마약 행각 등은 결코 과장이 아니니, 영화를 보면서 자본주의 구조에서 자본의 폭력이 어떠하고 또 인간이 그 폭력에 의해 어떻게 유린당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폭력배 이상 가는 폭력 행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천되고 있는 현실을 못 믿는 사람이 있으면 꼭 이 영화를 볼 것을 권한다.

이 영화에서 조연들의 연기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의 영화를 한결 가볍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중영화에서 해학은 관객 동원에 필수라는 인식 때문에 억지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을 자주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베테랑>에서는 결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조연들의 연기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보는 자들에게 웃음을 자아내는 명품연기였다.

사실 영화 <베테랑>은 보는 자들도 긴가민가할 정도로 쉽게 상상하기 힘든 경쟁구도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말단 경찰과 재벌의 경쟁은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양상이다. 한편의 희극으로 비쳐진다. 그렇다, 이것을 희극으로 여길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공권력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 수준이다. 권력에 휘둘리고, 자본에 휘둘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공권력이다. <치외법권> 역시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자본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들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작태에 시민들이 사라지고 또 죽어나가도 이미 검은 돈으로 물든 영향력 있는 고위인사들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만 할 뿐이다. 그래서 말단 경찰들의 최선의 노력이 실제로 어느 정도 먹힐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비록 실패한다 해도 재벌들의 돈에 매수되어 움직이는 권력기관들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봄으로써 우리는 만족한다. 조폭처럼 주먹으로 죽이지 못하고 돈으로도 죽이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조서로 죽이면 된다. 설령 조서에 최종 사인을 받는 과정에서 다시금 자본 권력이 방해한다 해도 괜찮다. 조서로도 못 죽이면 불매운동도 있고, 투표의 기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불의에 저항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풀뿌리들의 저항 정신은 결코 쓰러지지 않고 또 포기하지 않을 때 무한한 힘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영화 스틸컷


이 영화에서 귀에 쏙 들어오는 대사가 있다. ‘돈은 없어도 가오 없게 살지는 말자는 말이다. 가오는 허세 혹은 체면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좋은 의미로 이해한다면 명예와 맥을 같이 한다.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는 서도철 형사(황정민 분)가 재벌들에게 매수되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찰에게 했던 말이다. 이 말을 통해 관객은 서 형사가 그토록 종횡무진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나 돌직구를 거침없이 날릴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형사로서 본분을 잃지 않았기 때문임을 감지할 것이다.

굳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영화를 보는 동안 통쾌함을 경험했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설령 어느 정도는 현실과 거리가 있게 느껴진다 해도, 영화는 불가능을 생각하기보다 일단 경험할 수 있도록 전개되었다. 생각하는 영화라기보다는 보고 느끼고 아파하고 분노하고 마침내 시원한 느낌을 받는 영화다. 그러니 일단 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도철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를 놓쳐서는 안 될 성 싶다. 곧 베테랑이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며, 정의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거대 권력이라도 무너질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변혁은 언제나 본분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되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본분을 기독교는 소명이라고 한다. 소명에 충실한 삶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왜냐하면 부르심을 받고 그에 합당한 사람에게 성령께서 능력으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이 능력의 모습으로 곧 스스로 비인격적인 것으로 전락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의 뜻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통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명을 받은 자 곧 부르심을 받은 자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되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할 때, 세상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일을 행하시는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영화가 단순히 환각 효과를 일으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불의에 저항하라는 부르심을 듣고 하나님의 정의를 현실로 옮기는 소명에 충실한 거룩한 무리들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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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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