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셀마>를 보고








영화 <셀마>를 보고


누구나 위대한 일을 꿈꾼다두 번의 기회란 없는 인생에서 우리는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하여 노력하며 행복을 꿈꾸는 인생을 쉽사리 이기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반면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쏟아 붓는 인생이 여기 있다. 사랑스런 아내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도리어 가족들을 위협과 위험에 노출시키면서도 어쩔 수 없음을 호소한다. 안타깝고 마음이 쓰리지만 다만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의 이름은 바로 마틴 루터 킹 목사.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자신의 행복과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1965년에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미국 흑인들의 투표권 확보를 위한 나흘에 걸친 행진이 있었다. 이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끈 비폭력 인권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남부의 여러 주()에서는 유권자 등록 단계에서 여러 가지 방해와 공포 분위기 조성 등으로 흑인들을 배제하기에 이른다. 이에 기본적인 인권과 시민권을 보장받으려는 흑인들에게 시대를 역행하는 전쟁과 같은 상황들이 이어지게 된다.


영화는 지극히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성경 말씀의 한 구절로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통한 테러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동역자의 죽음을 지속적으로 경험한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두려움 그리고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함이 항상 그를 괴롭힌다. 하지만 그가 붙잡았던 것은 소망이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본질이자 그분께서도 붙잡으신, ‘고난 후 영광과 같은 그것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영광 할렐루야를 외치며 활짝 웃는 장면이 제일 인상 깊게 남았다.





러시아의 영화감독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영화 예술의 본질은 시간을 빚어내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128분 동안 영화를 보면서 50년 전으로 돌아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EDMUND PETTUS BRIDGE를 건너보았다. 시위대와 보안관에게 쫓겨 매를 맞는 경험도 했고, 마틴 루터 킹 목사께서 알 수 없는 침묵으로 다리를 끝내 건너지 않고 돌아서는 경험도 해 보았다. 그리고 결국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모든 역경이 극복되어지는 과정을 함께 누렸다. 마틴 루터 킹 목사뿐 아니라 함께 한 모든 사람들 한명 한명이 소중하고 귀하게, 위대하게 보였다. 그 감동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나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지금의 나에게 묻고 싶다. 과연 위대한 일은 무엇인가, 위대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다만 앞으로의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이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작은영화관 필름포럼 서포터즈 강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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