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레나>를 보고: '자본주의와 욕망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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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욕망의 상관관계

<세레나>


최 성 수



세레나 (2015)

Serena 
5.9
감독
수잔 비에르
출연
브래들리 쿠퍼, 제니퍼 로렌스, 다비드 덴시크, 리스 이반스, 토비 존스
정보
드라마 | 미국, 프랑스, 체코 | 109 분 | 2015-04-23


(글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의 경우, 관객은 원작의 느낌과는 다른 것을 볼 각오를 해야 한다. 소설의 내용을 제한된 상영시간 안에 모두 담으려는 것 자체가 무리지만, 읽는 것과 보는 것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소설의 내용을 크게 해지치 않으면서도 영화 매체의 특징을 어떻게 살려내느냐에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수잔 비에르 감독의 <세레나>는 원작과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제작되었다. 충실하게 재현된 영화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덴마크 출신의 수잔 비에르는 2011년에 제작된 상처에 대한 뛰어난 성찰 과정을 보여준 <인 어 베러 월드>를 통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여성 감독이다. <세레나>에선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담아냈다. 사랑에 대한 욕망을 비롯하여, , 자식, 그리고 종교적 신념에 대한 욕망은 상호작용하거나 혹은 상충하여 파열음을 내고 결국 파멸에 이른다. 한 영화에서 이렇게 많은 욕망을 보게 했다는 점에서 감독의 뛰어난 기량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감독은 특히 욕망과 종교의 밀착관계에 천착한다.


무엇보다 먼저 밝혀야 할 점이 있다. 영화 포스터 카피 문구가 말하는 대로, 영화를 미친 사랑에 포인트를 두고 감상하면 의미를 놓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비록 팜므 파탈적인 치명적인 사랑 혹은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사랑을 중심 모티브로 전개되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세레나는 영화 속 캐릭터이면서 또한 비유로도 작용한다. 이것을 배제하고 만일 사랑 이야기나 세레나(제니퍼 로렌스 분) 개인에 집중해서 영화를 보려 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 때문에 정제되지 못한 스토리로 여겨질 수 있다. 사실 소설은 세레나에 집중하고 있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특히 유산 후 그녀가 보인 병적인 집착에 가까운 모습은 그전에 보여준 여장부다운 모습을 생각할 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많은 비평가들에게 오해되어, <세레나>가 평균 수준에 머무는 평점을 받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레나를 자본주의의 욕망을 형상화한 것으로 본다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왜 이렇게 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영화의 배경은 1929년이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시기가 영화 이해에 중요하다는 암시다. 1920년대는 1차세계대전 후 전 세계적으로 불황의 전조가 보이던 시기다. 1929년은 미국에서 대공황이 시작되었고 자본주의의 자정능력이 더 이상 발휘되지 못하던 때이다. 유럽에서 일어난 세계대전으로 엄청난 부를 획득했던 미국 자본주의는 미래에 대한 밝은 청사진을 갖고 있었지만, 대공황으로 그것을 전망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바로 이때에 원시림에 가까운 상태를 보존하고 있는 동부산림지대에서 목재업을 하는 조지 펨버튼(브래들리 쿠퍼 분) 역시 재정적인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재정적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려 고향을 방문했을 때, 펨버튼은 첫눈에 반한 세레나와 결혼을 한다. 세레나는 과거 캘리포니아에서 목재업으로 유명했던 재력가의 딸이다. 어려서 화재로 가족 모두를 잃은 상처를 극복하고 꿋꿋하게 살아갈 정도로 보통의 여성과 달랐다. 펨버튼에게 세레나와의 결혼은 남녀의 결합을 넘어 사업 파트너를 얻는 일이었다. 결혼 전 펨버튼이 사귀던 여자가 아이를 가진 것을 알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로 세레나는 대담함을 보였다. 세레나에게 중요한 일은 오직 사업에서 성공하고 가족을 일구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잃은 것이 많았던 만큼 그녀에게 과거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미래의 성공에만 관심을 두었다. 벌목장에서 노동자들이 독사에 물리는 일이 많아지자, 이 일을 막기 위해 독수리를 수입해서 스스로 길들일 정도로 여장부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세레나의 사업 능력은 인정을 받았다. 노동 효과를 높이고, 생산량을 늘리면서 높은 수익을 올렸다. 정치적으로 방해될 만한 일이 생긴다면, 뇌물을 써서라도 사업의 의지를 관철시켜 나갔다. 사업은 점점 번창했다.

그러나 동업자가 배신을 하면서부터 세레나의 욕망은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펨버튼과 사업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뇌물 장부를 가지고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폭로하겠다며 펨버튼을 위협했는데, 그는 국립공원 조성을 위한 토지를 은밀히 헐값에 매매하려고 한 것이다. 이 일에 대한 세레나의 입장은 분명했다.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배신자라는 말에서 잘 표현되었는데, 세레나의 이 말은 펨버튼의 양심을 무력화시켰고, 펨버튼은 사고사를 위장하여 그를 제거하였다.

그녀를 급격하게 변하게 만든 사건은 유산이다. 유산으로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유산을 보통 이상의 충격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그녀가 더 이상 자녀를 낳지 못하는 상태를 마치 미래에 대한 절망인양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편, 유산의 충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을 때, 세레나는 펨버튼이 결혼 전 관계를 통해 얻은 아이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남편이 아이에게 관심을 두는 한 자신과 가족에게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세레나는 사업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아이마저 제거하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갤러웨이이다. 그는 펨버튼의 사냥을 돕는 사람으로서 예지력이 있고, 토속 신앙을 가졌다. 그는 사고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 세레나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게 되는데, 이 사건을 두고 어릴 때 엄마로부터 들은 예언의 성취로 인지한 그는 앞으로 자신이 그녀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믿고 세레나에 충실한 사람이 된다. 세레나를 거역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제거하였고, 그녀의 뜻이면 무엇이든지 실행에 옮긴 것이다. 종교적인 신념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의 전형이다.


앞서 말한 대로 여러 욕망들이 서로 충돌하여 결국 파멸에 이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욕망을 촉발시킨 존재는 바로 세레나이다. 펨버튼이 세레나를 아내와 사업 파트너로 받아들이면서 욕망은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었고, 미래가 불확실해지자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게 되었으며, 결국 파멸에 이른 것이다. 세레나는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선다. 더 많은 생산을 통해 더욱 성장하기를 원하는 자본주의의 욕망을 형상화한 인물이다. 여기에 덧붙여 갤러웨이는 종교가 자본주의 욕망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준다.


막스 베버는 1904-05년 두 차례에 걸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미국식 자본주의 정신이 형성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은 칼뱅의 예정론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은 1920년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고, 영역판 출판은 1930년에 미국 사회학자 탈콧 퍼슨에 의해 이뤄졌다. 이 책은 종교와 자본주의의 상관관계를 밝힌 것으로 매우 의미 있는 주장을 담고 있다. 베버가 종교와 자본주의 정신의 선한 면에 초점을 맞췄다면, <세레나>는 자본주의의 욕망과 종교의 결탁관계를 말하면서, 종교가 오히려 욕망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뿐임을 보여준다. 이와 유사한 현상은 <리바이어던>(안드레이 즈비아진세프, 2014)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 종교는 부정한 권력 행위를 뒷받침해주는 도구로 작용해, 결국 국가가 국민들에게 하나의 괴물로 비쳐지게 하는 데 한 몫을 한다.

결론적으로 <세레나>는 자본주의가 욕망으로 작용할 때, 그리고 이 욕망에 종교가 더해질 때,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욕망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말씀의 구체적인 모습을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성수

하늘땅사람교회 담임목사. 영화 및 문화 평론가, 시인. 서강대 철학을, 독일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 호신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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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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