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이나타운>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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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자만 살아남는 세상

<차이나타운>


최 성 수



차이나타운 (2015)

Coin Locker Girl 
6.9
감독
한준희
출연
김혜수, 김고은, 엄태구, 박보검, 고경표
정보
| 한국 | 110 분 | 2015-04-29


※ 글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은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구조화된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이런 세상에서 살면서 삶의 모습이 어떠할 것인지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외부에서 삶을 조망할 눈을 인간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적인 잠재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근시안적인 현대인은 그저 사회에 혹은 조직에 혹은 그 무엇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또한 쓸모를 입증하려 스펙을 쌓는다. 그리고 마침내는 쓸모를 위해 소비된다. 대학입학과 회사입사를 위한 입시 경쟁에서 볼 수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현대 사회는 성과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쓸모 있음은 다른 말로 한다면 유능함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능력이 있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능력은 발휘되어야 하고, 또 요구받은 일을 완수함으로써 인정받아야 한다.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필수적이다.

<차이나타운>은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엄마로 불리는 보스(김혜수 분) 밑에서 쓸모 있는 자임을 입증하며 살아가는 일영(김고은 분)의 성장이야기다. 그녀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영화는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다만 필요한 일에 쓸모가 있음을 입증하며 살아가는 두 여자로만 소개될 뿐이다. 장르가 느와르로 선택된 것은 그런 사회에 드리워진 어두운 내면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둡고 칙칙해서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제정신으로는 도무지 살 수 없어 술에 취하고 마약을 한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선 동물적인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야하기 때문이다. 정신지체 장애자라도 예외는 아니다. 상태를 완화하는 약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밥값을 제대로 해야 한다.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면 엄마도 식구도 예외 없이 제거되는 잔혹한 사회다.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아이들을 더 이상 쓸모없다고 해서 냉혹하게 버리는 모습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영화에서 가장 큰 관심은 여성 느와르라는 사실에 집중되어 있다. 감독은 바로 장르 선택에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팜므 파탈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느와르 세계에서 여성은 흔히 부수적인 의미만을 갖거나 혹은 사건 전개에서 파국적인 사건의 원인 제공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데에서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쓸모 있는 자가 되기 위해 처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현대 여성을 연상케 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남성들이 독점하는 사회에서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성들은 격렬한 투쟁을 벌여야 했고, 그 투쟁을 통해 사회에 쓸모 있음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했다. 가족해체를 감수해야 했고, 아이들에겐 따뜻하게 안아주는 엄마가 아닌 유능한 사람으로 각인되어야 했다. 비록 여성이라도 마초의 삶을 살아야 한다면 순응해야 했다. 쓸모 있는 존재임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이야기를 하면서 여성 느와르로 만들어진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을 수 없다.

한편, 영화에 대한 평가에서 호오가 분명히 갈라지는 내용이 있다. , 많은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는 시퀀스는 다소 생뚱맞은 분위기의 멜로다. 영화 속 멜로톤은 이런 세계에서 사는 일영에게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보고 또 다르게 경험할 가능성이 힘들다는 것을 말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존경쟁에 쫓기고, 쓸모 있음을 입증해야만 하는 야생의 삶을 살면서, 남에게 관심을 받고, 남에게 배려를 받고, 또 남의 앞일을 돌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다소 생뚱맞게 표현함으로써 일영의 현실에서 비현실적인 면을 부각하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충분히 이유가 있는 설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엄마는 또 다른 엄마(김혜수)로 이어지고 또다시 엄마의 빈자리에서 엄마(김고은)의 삶을 살아가는 반복된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비록 동일한 모습은 아닐지라도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들린다.


쓸모만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고 또 기여할 수 있는 현실이 아무리 느와르적이라 해도, 드라마 <미생>이 그린 현실과 비교하면, 그나마 다소 희망적(?)이긴 하다. 왜냐하면 <미생>은 회사에 쓸모 있음을 충분히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학벌과 스펙에 밀려 좌절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미생들의 절망감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생>의 배경이 무역회사라서 밝은 분위기에서 전개되었지만, 사실 내용적으로 볼 때 분위기는 결코 느와르 못지않다. 실적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샐러리맨들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모습은 <회사원>(임상윤, 2012)에서 엿볼 수 있다고 보는데, 회사는 전쟁터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에선 쓸모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선 능력과 각종 백이 받쳐주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해도 인맥과 학벌로 무장하지 않은 사람은 경쟁에 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부정과 부패 그리고 온갖 불법을 자행하며 살아도 권력의 기능에서 쓸모 있음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또한 그것이 국민들과 서민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지도자들로 가득한 사회다. 참담하다 못해 이젠 절망적이다.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성과사회가 자기긍정과잉을 강요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신경병리적인 증세가 많이 나타나는 것이 성과사회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현대 사회를 정신 병리학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분석한 것은 뛰어났지만, 그가 다만 일과 휴식의 관계에서만 성과사회를 본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왜냐하면 사회의 또 다른 면을 보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과 사회의 한 면에는 일중독을 유발하는 긍정과잉이 있지만, 다른 한 면에는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병리적인 현상만을 산출하지 않고, 존재와 비존재를 갈라놓는 결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앞에서 끊임없이 쓸모 있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차이나타운의 현실은 얼마나 끔찍한가.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을 말하면서, 교회는 여기서 얼마나 자유로울까를 생각해본다. 사회에 쓸모 있는 자로 만들기 위한 부모의 지나친 사교육 열풍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성수

하늘땅사람교회 담임목사. 영화 및 문화 평론가, 시인. 서강대 철학을, 독일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 호신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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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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