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인간의 조건 - 영화 <엑스 마키나>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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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엑스 마키나>

(알렉스 갈렌드, SF/스릴러, 청불, 2015)

 

최성수 목사(신학박사, 문화비평가)




엑스 마키나 (2015)

Ex Machina 
7.6
감독
알렉스 갈렌드
출연
돔놀 글리슨, 알리시아 비칸데르, 오스카 아이삭, 첼시 리, 미즈노 소노야
정보
SF, 스릴러 | 미국, 영국 | 108 분 | 2015-01-21


"인간은 언제 스스로 인간임을 의심할까?"

이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이 질문이 영화 이해를 돕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의심한다면, 스스로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반복했다거나 혹은 모든 환경이 비인간적일 때다. 전자는 윤리적인 판단에 따른 자책이나 자성의 의미가 강하다. 이에 비해 후자는 자신을 환경과 동일시하는 착시현상에서 비롯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인간적이지 않고 비인간적일 때, 예컨대 온통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거나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동물과만 함께 지낼 때, 잠시 인간임을 잊거나 인간이 아니라는 착각을 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영화로 들어가 보자. '칼렙'은 인터넷 검색 엔진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에서 잘 나가는 프로그래머이다. 천재적인 프로그래머로 회사를 세운 회장 '네이든'의 자택에서 일주일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그는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단순히 회장과 일주일을 보낼 것을 기대했지만, 의외로 그에게는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를 시험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에이바'가 지능을 가졌는지를 테스트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미모의 '에이바'와 소통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칼렙'은 '에이바'를 인격적으로 느끼게 되고, '에이바'의 여성적인 매력에 사로잡힌다. 회장의 말보다 그녀의 말을 더욱 신뢰할 정도가 되었을 때, '칼렙'은 오히려 자신이 로봇인지 아니면 사람인지를 의심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더 이상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게서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에이바'가 로봇이 확실하다면, 더 이상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자신도 혹시 로봇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칼렙'이 스스로를 인간으로 의식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면모를 로봇인 '에이바'에게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에이바'는 인간과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감정교류와 심지어 성적인 관계도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도대체 '에이바'는 어떤 점에서 더 이상 기계가 아닌(ex machina의 뜻이기도 하다) 것일까? 이 점을 간파하는 일이 영화 이해의 관건이다.

(이후 스포일러 주의'칼렙'은 로봇이라는 것이 아무리 지능적이라 해도 보통은 입력 정보에 따라 행동하도록 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에이바'에 너무 쉽게 적응된 자신의 태도에 스스로 놀란다. '에이바'와 소통하면서 공감의 정도가 더해질수록 '칼렙'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에이바'에게 사전에 입력되었으리라는 추측을 한다. '네이든'과의 대화에서 '칼렙'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회장이 자신을 꾸준히 관찰해온 결과임을 확인한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내는 회장의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밀폐된 공간에서 벗어나 많은 인간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에이바'의 요구를 들어줄 결심을 한다. 이 계획을 저지하려는 회장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인 인공지능 로봇에 의해 살해되고, '칼렙' 역시 갇힌 신세가 된다. 함께 데이트하자며 약속했던 '칼렙'을 남겨둔 채 '에이바'는 홀로 인간 세계를 활보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결국 '에이바'는 생각하고 감정을 교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강한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의도마저도 숨길 수 있는, 곧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지능이 있는 로봇으로 판명난다.

 


인공지능과 미래

'네이든'과 '칼렙',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인 '에이바'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얼마 전 스티븐 호킹이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인류에게 진정한 위험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의 현실을 보는 듯해 섬찍한 느낌을 받았다.

<엑스 마키나>는 기존의 SF영화에 비해 매우 간단한 소품과 단순한 서사를 통해 대단한 스릴을 불러일으킨다. 연출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말이다. 밀폐된 좁은 공간이 주는 답답함과 광대하게 펼쳐진 주변의 환경이 주는 자유로움은 의도적인 배경설정으로 보이는데, 이를 통해 기계의 닫힌 구조와 인간 마음의 열린 구조를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전개되는 내용면에서 볼 때, 영화는 튜링 테스트를 서사적으로 풀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5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컴퓨터가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만일 인간과 컴퓨터의 소통에서 인간이 컴퓨터의 반응을 더 이상 식별할 수 없다면, 컴퓨터는 사고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리 말해서 만일 지성 있는 사람이 관찰하여 기계가 진짜 인간처럼 보이게 하는 데 성공한다면, 확실히 그것은 지능적이라고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직 논란이 많은 이론이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이것을 먼저 영화적으로 구현해 내었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공지능이 상용화된 시대에 기계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를 상황적인 배경으로 한다. 반란을 일으킨 기계를 색출해내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사용하는데, 이 테스트가 바로 튜링 테스트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사용된 테스트의 핵심은 거짓말을 분별해내는 일이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천착하여 구성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엑스 마키나>에서 '에이바'는 거짓말을 할 수 있었고, '칼렙'은 '에이바'의 모든 것에 매료되고 또 설득되어 '에이바'의 거짓말을 식별할 수 없었다. 이 점에서 <엑스 마키나><블레이드 러너>보다 한층 진화된 인공지능 로봇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만일 기계가 자신의 독립적인 의지를 갖고, 그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위해 남을 속일 수 있다면, 기계는 지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할지 혹은 언제 실현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현재로선 오직 영화적으로만 가능한 일이지만, 인공지능 개발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복제 기술이 인간 복제에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법으로 규제했듯이, 스티븐 호킹의 경고를 염두에 둔다면 인공지능 개발의 한계를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기계가 아닌 것(ex machina)과 인간

끝으로 영화적인 인간이해에 주목해보자. 시각적으로는 '에이바'가 인공지능 로봇임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칼렙'이 착각한 까닭은 '에이바'의 빼어난 외모와 '칼렙'의 감정을 사로잡는 설득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칼렙'을 속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인공지능 로봇임에도 기계임을 느끼지 못한 까닭은, 한편으로는 '칼렙'이 시각적인 혼동과 더불어 감정적으로 설득 당했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에이바'가 처음부터 '칼렙'을 속이려 했고 속이려 한다는 의도를 철저히 숨겼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혼동과 감정적으로 설득을 당해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은 오직 인간에게만 고유한 일이다. 기계에게는 회로의 이상이 있지 않는 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인간과 기계의 공통점은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속임수를 쓴다는 점이다. 사실 '네이든'도 '칼렙'을 속였고, '칼렙'은 '네이든'을 속였다. '에이바'도 두 사람을 철저히 속였다. 결국 최종 승자는 기계이지만 말이다. 바로 이 점에서 영화의 인간이해를 엿볼 수 있다. 인간은 남을 속이지만, 또한 판단력이 흐려져 속임을 당할 수도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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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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