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중심적 사고가 가질 수 있는 영적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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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중심적 사고가 가질 수 있는 영적 위험


Kyle Strobel




많은 교회가 요즘 “복음중심적”인 사고를 표방하고자 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이다. 복음이 아닌 이외의 것들을 중요시할 가능성이 충분한 오늘날, 이런 변화는 분명 좋은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오늘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복음중심적인 운동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이런 문화적 흐름에서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에 있다. 긍정적이든 아니든, 성경적이든 아니든, 모든 생각에는 우리가 빠질 수 있는 유혹과 함정이 있기 마련인데 복음 중심적인 사고 또한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 뭔지 함께 짚고 가야 할 필요가 있다.

 

복음중심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왜 예수님 중심이 아니지?”였다. 어찌 보면 가벼운 말 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도로 던진 비판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중요하다. 특히, 우리가 특정하게 구별하여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들은 때론 우리로 하여금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핵심이나 본질을 놓치게 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단어 선택은 생각보다 심오하고 중요하다. 조나단 에드워드 역시 이러한 염려를 했다. 복음에 대한 가장 중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본문에서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은 신앙(믿음)은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도구라고 주장했다. 얼핏 보면 이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이 대목을 두고 “NO!”라고 외쳤다. 신앙(믿음)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도구이고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곧, “예수님”이라는 단어를 우리의 고백 안에서 삭제시키면서 복음이 하나의 만능열쇠인양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복음 중심이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는 짊어졌던 죄의 사함을 느끼게 된다. 복음 중심은 우리가 바른 사고를 했다는 덫에 빠지게 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의 약점으로 인해 느꼈던 부담감을 덜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예수님 앞에 적나라하게 서서 우리의 삶을 토로하기 보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안락함 뒤에 숨게 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두 개의 메시지를 담고 싶다. 복음은 우리가 예수님 앞에 더 다가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우리가 더 솔직하게 예수님의 빛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쟈민 고긴 (Jamin Goggin)과 최근에 함께 쓴 책에서 우리는 “먼지/티끌”라는 개념을 통해 이 진리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복음을 온전하게 듣는다는 건 우리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티끌로서 존재할 때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티끌이란, 그저 티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티끌이다.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부서진 모습, 죄인 된 모습, 육적인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지 예수님의 진정한 존재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내가 복음 중심적인 삶을 꺼려하는 이유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이 아닌 복음’을 중시할 경우 우리는 나의 신학적 관점과 가치관에 매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드는 함정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메시지는 복음 중심적인 삶은 우리가 육체적으로 조금 더 쉬운 멍에를 짊어지게 한다는 점이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의 말씀처럼 갈라디아서는 크리스천들이 성령이 아닌 육체를 위하여 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육의 모습으로 사역할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이 아닌 육으로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육적인 복음중심의 인간이 될 수 있다. 이런 우리에게 가장 큰 유혹은 “옳음”을 갈망하는 신앙생활이고 이것은 때론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을 간과하게끔 만든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복음을 통해 우리는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복음중심적인 삶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요즘 복음중심을 외치는 많은 이들이 육신의 권세를 종용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독선적인 자기 의(義)를 통해 타인을 깎아 내리고 때론 분노를 당당하게 표출하는 모습들을 왕왕 본다. 복음중심을 주창하지만 예수님이 아닌 육신에 속해 있을 때가 많다. 나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묵상할 때보다 그런 교리나 원칙을 쥐고 있을 때 내 스스로가 더 높아지고 강해진다는 걸 느꼈다.

 

결론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쟁점은 복음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예수님의 소유라는 점이다.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의 메시지고 예수님 그 자체이다. 복음이 마치 우리의 것인양 우리 마음대로 복음을 휘두를 수 없다. 조나단 에드워드, 디트리히 본회퍼와 같은 신학자들의 말처럼 예수님 이외의 다른 생각들을 중심에 두기 시작하면, 우리가 아무리 복음에 충실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유리한 방향으로 우리는 복음을 변질시키게 될 것이다. 조직신학을 공부한 나에게 이것은 더 큰 문제로 인식된다. 내가 있는 신학교의 많은 신학생들 중에는 자신 스스로를 복음중심적으로 일컬으며 복음을 순서에 맞게 “잘” 설명하면 된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누군가가 복음주의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건 아주 간단한 질문 하나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복음의 요소는 무엇인가? 이것에 동의하는가? 아무리 이 간단한 질문에 바른 답을 내려도 바른 크리스천의 모습 중 절반만 채워진 것과 같다. 성령님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없다면 말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가복음 8:29)”라는 질문을 하셨을 때 제자들 또한 우리와 같은 현실을 직면했다. 베드로는 시험에서는 A학점을 받았지만, 성령님에 대한 질문에는 F학점을 받았다 (마가복음 8:33). 우리 또한 복음에 대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할까? 아니다. 단지 조금만 조심하면 된다. 특히, 예수님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 해야 되는 상황에서 복음이라는 단어를 대체해서 쓰고 있진 않은지 주의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친 아들을 주셨던 그분의 인격적인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와 하나되는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웃과 함께 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이용하는 유혹과 실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쟈민(Jamin)과 나는 Beloved Dust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과 우리 크리스천의 삶을 조명했다. 특히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숨었던 모습이 우리에게는 어떤 은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윽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적나라한 모습을 직면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러할 때 예수님 중심이 아닌 복음 중심적인 모습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Kyle Strobel Biola University-Talbot School of Theology (바이올라 대학교의 탈봇 신학대학) 영성신학 조교수이고 Metamorpha 목회 공동 창립자이다. "Formed for the Glory of God: Learning from the Spiritual Practices of Johnathan Edwards" (IVP) 저자이고 올해 10월에 출판된 "Beloved Dust: Drawing Close to God in the Truth about Yourself" (Thomas Nelson) 공동저자이다. 그의 홈페이지(Metamorpha.com) 나 트위터 계정(/KyleStrobel)에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본 기사를 이용할 경우 원작자는 'Kyle Strobel', 번역자는 '문화선교연구원'으로 표기할 수 있다. 본 글은 비상업적 목적으로 번역되었으며, 저작권은 Church Leaders에 있다. 원본은 링크를 클릭(Click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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