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집의 의미 -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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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의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김성호, 드라마, 전체, 2014)


최성수 목사(신학박사, 영화평론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2014)

How to Steal a Dog 
9.2
감독
김성호
출연
이레, 이지원, 홍은택, 김혜자, 최민수
정보
드라마 | 한국 | 110 분 | 20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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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사랑하는 남녀의 애틋한 사연을 담고 있다. 대단원이라 할 만한 특별한 사건도 없으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까닭은 뛰어난 심리 묘사에 있다. 소설은 가난의 현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서로의 사랑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관계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여자가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가난에 대한 서로 어긋나는 견해 때문에 사랑하면서도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현대인의 상당수는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가난과 사랑, 아닌 조금 더 현실적으로 접근한다면 가난과 가족, 이 양자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지낸다. 어려울수록 서로 협력하여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가족도 있지만, 가족 해체라는 고통스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릴 때도 있다. 솔직히 이제는 오 헨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볼 수 있는 가난한 부부의 모습을 기대하기란 무리라고 여겨진다. 그만큼 가난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가난 때문에 나타난 가족해체(이혼) 현상은 특히 IMF 시기 이후에 두드러졌는데, 이것은 상황적으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그동안 가족 혹은 가족의 사랑보다 풍요로움만을 추구하며 살았던 한국 사회의 진면목을 폭로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욕망이 가난과 가족이 양립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가난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는 현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안타까운 일이지만 잘못된 욕망이 빚어낸 피할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가족을 유지하는 힘은 무엇일까? 가장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도 누구의 시각으로 조명되느냐에 따라 느낌은 달라질 수 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저자 바버라 오코너는 11살 어린 소녀의 시각을 통해 이 문제를 보았다. 소설을 그대로 옮겨놓기에 쉽지 않았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너무 식상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호 감독은 원작을 각색하면서 과감하게 손질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개를 훔친다는 설정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새로운 것임을 알고 놀랄 것이다.


영화에서 포인트는 집에 있다. 배경도 강남이다. 집과 강남, 대한민국에서 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강남 지역에서 집을 소재로 삼았다는 사실에서 눈치 빠른 관객은 한국 사회의 왜곡된 현실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짐작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집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곱게만 볼 수 없는 사회 현실을 아이의 시각으로 다루다 보니 비판적인 태도보다는 매우 따뜻한 느낌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내용은 아빠의 사업 실패로 집에서 쫓겨나 미니 밴을 거처로 삼으며 사는 한 부모 가족의 이야기다. 생일 파티를 해야 할 집에 대한 고민에 빠진 11살 지소는 우연히 본 전단지에서 평당 500만원평당에 있는 500만원 집으로 독해하고, 이 집을 얻기 위해 부잣집 개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비록 보상금을 받으려는 계획은 실패하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집을 장만하는 데에 성공한다.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얻는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영화의 감동은 당연히 가족의 사랑에서 점화되지만, 영화의 의미를 성찰하다 보면 집과 관련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 집은 무엇을 의미할까?

부유한 자에게 집은 재산 가치로 여겨져 자신의 신분과 능력을 나타내는 수단이고, 더 많은 재산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투자가치로서 탐욕의 대상이다. 노숙자처럼 그저 잠자는 곳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는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다. 집은 누구에게는 떠나야 할 곳이고, 누구에게는 돌아갈 곳이며, 누구에게는 기다리는 곳이고, 누구에게는 삶의 왜곡을 초래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정상적인 삶의 회복을 의미한다. 심지어 개마저도 거처할 집이 있고 또 개를 위해서도 집을 마련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에서 사람이 집 없이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서러움의 극치다.


바로 이런 극한 상황에 처한 지소 가족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주목할 만한 부분은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하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면서 지소가 납치 계획을 포기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시작했지만, 개도 함께 있어야 할 가족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포기한다. 다시 말해 집을 나가 살다가 죽은 아들의 분신으로 여기며 키우는 개를 기다리는 노부인을 생각하면서 지소는 결국 개를 주인인 노부인에게 돌려주는데, 이를 통해 오히려 집을 얻는 행운을 누린다. 지소에게 집은 크든 작든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공간이며 또한 정상적인 가족의 회복을 의미했다.


현대인과 집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교회를 떠올릴 것이다. 영화 쿼바디스가 지적하고 있지만, 한국 기독교 현실에서 교회(건물)는 탐욕의 대상이 되었다. 크기와 고가의 시설로 능력을 나타내는 곳이 되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며, 공동체의 안식과 회복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과시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영화를 보며 현대인에게 집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생각해보면서, 건물로서 교회의 의미를 보다 깊이 성찰할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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