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세대를 위한 변호? -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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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세대를 위한 변호?
<국제시장>

(윤제균, 드라마, 12세, 2014)


최성수 목사(신학박사, 영화평론가)





...

영화는 한국전쟁에서부터 현재까지 반세기의 시간을 담고 있다. 기억의 단편들을 매개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전쟁을 겪은 세대뿐만 아니라 그 후의 세대들에게도 좋은 추억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특히 영화 중간 중간에 젊은 시절의 앙드레 김, 정주영, 남진 같은 시대의 아이콘이 카메오처럼 등장한 것은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게도 적지 않은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요인으로 생각한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서 여동생을 잃어버리고 또 그 때문에 아버지마저 잃어야 했던 한 소년 윤덕수(황정민 분)의 삶이 중심을 이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하며 살아야 했던 그는 평생을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본인을 위한 모든 것을 희생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아버지의 위치를 지키며 살아야 했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하며 흐느끼는 덕수의 모습을 통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한 가장의 삶의 무게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영화에서 윤제균 감독이 의도한 것은 오늘의 삶을 가능하게 한 아버지 세대의 노고를 기리려는 것이다. 이 땅에서 가장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아버지 세대를 통해 듣는 이야기의 공통점은 고생하며 살았다는 점이다. 적어도 반듯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오늘보다 못한 생활환경에서 오늘의 가족을 일궈 냈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세대는 그렇다. 그들은 험만한 시간을 오늘 세대가 아닌 그들 세대가 겪은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할 정도다. 윤제균 감독은 바로 이점에 착안했던 것 같다. 경제부흥에 크게 기여했지만 IMF 이후에 급속도로 무너진 아버지 세대들의 삶을 다시금 조명하면서 적어도 현재 모습이야 어찌되었든 그들을 기억하고 공로를 기릴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역설한다. 적어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면 아버지 세대들의 노고를 기리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고를 간과하거나 잊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이 영화의 특징이라면, 여러 평론가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듯이, 한국 전쟁 이후의 역사를 다룬 영화에서 흔히 다뤄지는 정치적인 측면이 철저하게 배제된 것이다. 이승만 정권의 부패도 없고, 유신 정권의 끔찍함도 없으며, 5공의 비극도 없다. 한 사람의 일생을 회상하는 영화에서 정치적인 면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로 살아가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을 냉혹하게 살펴보자. 윤제균 감독이 역설하고 또 대변하고 있는 이야기는 오늘날 누구의 입에서 회자하고 있는 논리인지 살펴보자는 말이다. 잘 살아보자고 외치며, 경제적인 부흥을 정치적으로 인정받으려 노력했던 세력이 바로 유신과 5공 그리고 MB정권이 아니었던가. 현 정권이 40-50대 이상 세대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논리였다. 간단하게 말해서 정치적인 부도덕함을 경제 회복으로 만회하려던 세력들이 제시하는 전형적인 논리였다.


이런 까닭에 필자는 아버지 세대의 노고를 대변하는 영화를 감상하면서 한편으로는 매우 감동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아버지 세대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한 희생까지는 좋지만, 과연 그것이 후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의 부패와 사회적인 혼란은 배제한 채, 오직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고 해서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정치인의 부패와 부도덕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불 보듯이 보면서도,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것이 아닐까?


아버지 세대의 노고를 기리자는 의도에는 이의가 없고 다른 시기에 개봉했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정치적인 파경을 경험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회자하는 것은 문제라고 여겨진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아버지 세대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어려웠던 시대에서나 통용될 수 있었던 경제논리로 오늘날의 정치적인 파국을 덮으려는 논리를 영화가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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