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노예 12년> - 노예제는 현재진행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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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는 현재 진행형인가

<노예 12>(스티브 맥퀸, 라마, 15, 2014)

 

최성수 박사




염전 노예에 대한 보도를 자주 듣는다. 부끄러운 역사로만 알았던 일이 21세기에 대한민국 영토에서 버젓이 횡행하고 있었다니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물론 섬이라는 특수한 지리적인 상황이 그런 현실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분명하다. 자발적으로 갔든, 아니면 인신매매 조직에 의해 납치되어 팔려갔든, 한 번 들어가면 섬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도망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섬 마을 사람들 모두를 공범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장철수, 2010)에서도 다루고 있는 문제이지만, 노예와 다르지 않게 지내야 했던 그들의 현실을 묵과했다는 사실만으로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섬 마을엔 교회가 있었다. 하얀 소금 무더기 위에 놓인 십자가 사진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불행한 현실에서 살아야 했는지, 교회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그 실상은 아마도 머지않아 누군가에 의해 밝혀지겠고, 그 때에 더욱 분명한 현실을 볼 수 있겠지만, 인간을 짐승 부리듯이 부렸고 또 그것에 대해 침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이 필자에게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가 있다. <노예 12> 때문이다. 이미 작품성이 인정되어 2014년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과 각색상 그리고 작품상을 수상했는데, 인신매매에 의해 노예로 살아야 했던 솔로몬 노섭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알려진 현대 미국의 치부를 다시 한 번 들추어낸 데에는 단지 과거에 대한 관심 이상의 것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측하게 한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감상의 관건이 될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1840년 미국이 노예 수입을 금지하자 특히 남부 지역 목화 농장주들의 반발은 심했고,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돈을 벌기 위해 흑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신매매가 성행하게 되었다. 공업의 발달로 일찌감치 노예를 불필요하게 생각했던 북부와 달리 남부는 노동집약적인 목화 농장이 경제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예제와 관련한 생각에서 미국의 북부와 남부의 차이와 갈등은 심했는데, 링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노예제를 전면 금지하자 마침내 남북전쟁으로까지 이어졌을 정도였다.



"살아남고 싶은 게 아니야, 살고 싶은 거지."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영화는 아직 노예제가 완전히 금지 되지 않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뉴욕 주 사라토가에 살면서 바이올린 연주가로 명성을 날리며 살아가던 솔로몬 노섭이 인신매매 조직에 속아 남부 지역에서 12년간을 노예로 살아야 했던 비참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지인의 도움으로 해방된 후 1년 뒤인 1854년에 출판된 동명 제목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인데, 당시 노예제 반대와 폐지를 위한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영화는 소설의 이야기와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단지 영화적인 재현 자체에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예 아니 인간에 대한 폭력적인 역사의 한 단면을 묘사하는 데에 더 큰 심혈을 기울인 것 같다. 다시 말해서 단지 과거의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유사한 인권 유린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스티브 맥퀸 감독은 인간이 아니라 백인의 소유물로 그리고 일하는 동물로 여기는 흑인의 인권 유린의 상황에서 그리고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무기력함과 또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담아내었다.

이것은 단지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염전 노예만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노예제는 인간 혹은 인간의 노동력을 오직 생산을 위한 도구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제도화된 것이다. 제도화만 되지 않았을 뿐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인간이 생산도구로 전락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삼성의 기업윤리를 폭로하는 <또 하나의 약속>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이 힘이 되는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적인 현실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기독교인으로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농장주들이 노예들을 모아놓고 성경을 읽고 설교하는 장면이다. 두 번에 걸쳐 보여주었는데, 서로 대조적이다. 북부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달리 남부는 기독교적인 측면에서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성향이 짙은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일요일에 가족과 노예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은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 가운데 한 농장주는 노예들에게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성경을 읽어주고, 다른 한 장면에서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폭력적인 노예제를 정당화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단지 이데올로기와 인생의 교훈으로만 읽히고 또 사용된다면, 노예제 못지않은 인권유린은 오늘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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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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