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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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적 눈감기

<블루 재스민>(우디 앨런, 드라마, 15, 2013)

 

<블루 재스민>은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이름이다. 블루는 그녀가 겪는 외롭고 고독한 상황을 표현한다. 헛헛한 인생의 단면을 드러내는 영화 이야기와 그것의 의미를 곱씹는 재미는 물론이고 재스민으로 분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보기 위해서라도 감상할 가치가 있는 영화다.

재스민의 본명은 재닛이다. 입양아 출신인 그녀는 돈 많은 사업가 할을 만나면서 상위 1%만인 누릴 수 있는 삶을 살게 된다. 하루아침에 변하게 된 자신의 현실을 경험하면서 그녀는 의도적으로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을 재스민으로 개명한 것은 물론이고 같은 입양아로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까지도 멀리한다. 이런 그녀에게 시련이 닥쳐왔으니 할이 사기죄로 구속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재스민은 화려한 뉴욕의 삶을 정리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 찾아와 기거하는 신세가 된다.

흥미를 끄는 부분은 사기 행각이 밝혀지기 전까지 재스민은 남편의 직업과 그의 개인 생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고 또 묻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할이 하는 일이 불법적인 일이라는 것을 대략 짐작하고 있었지만, 재스민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화려한 삶을 즐겼고, 이런 삶이 무엇에 의해서도 깨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할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각종 단체에 기부하고 후원회를 조직하며 또 친구들과 만나 담소를 즐기면서 종종 열리는 파티에서 삶의 기쁨을 누릴 뿐이었다, 괜히 물어서 할을 불편하게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를 갑자기 변하게 만든 사건은 할의 외도였다. 주변 친구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그녀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그녀가 평소에 얼마나 그에 대해 무관심 했는지, 또 다른 것들에 신경을 쓰며 살았는지를 말해준다. 친구들이 할의 외도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말해주지 않았던 까닭은 두려움이었다. 그녀의 환상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환상이 깨지면서 그녀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재스민이나 친구들 모두 진실 앞에서 의도적으로 눈을 감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할의 외도를 스스로 확인하게 되면서 재스민은 격한 분노에 사로잡혔고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할의 사기 행각을 경찰에 고발하였다. 결과적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아들에게도 피해가 미치는 일이라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영화가 제시하는 다양한 화두를 떠올리면서도 유독 궁금하게 여겨진 부분이 있었다. 할의 불법적인 일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며 살았던 재스민의 태도가 할의 외도를 알게 되면서 돌변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재스민의 의도적 눈감기에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망이 작용하고 있었다. 어렵게 살았던 기억은 그녀로 하여금 과거와는 다른 삶을 꿈꾸도록 했고, 할을 만나면서 그 꿈이 기대 이상으로 충족되자 과감하게 이름도 바꾸었다. 필요하다면 가족 관계도 끊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재스민은 적어도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꿈과 환상은 결과적으로 재스민으로 하여금 할의 불법 행위에 대해 의도적으로 눈을 감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정체성이라도 인격적인 관계에서 가장 핵심인 부부의 신뢰 관계가 외도로 인해 위태로워졌을 때, 그녀의 정체성은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자신을 화려한 포장 속에서 싸두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남편의 외도조차도 외면할 수 있는 정도는 못되었기 때문이다. 재스민의 허영적인 면모를 잘 알고 있었던 할은 지금까지 누렸던 삶을 보장해주겠다고 말하지만, 재스민은 할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한, 자기 정체성의 뿌리가 잘리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의 근거가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스민은 화려한 인생을 좇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이 보장받는 한 온갖 불법적이고 불의한 행위 앞에서 의도적으로 눈을 감기를 마다하지 않는 현대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폭로하는 캐릭터다.

의도적 눈감기는 우리 사회에 크고 굵직한 정치 사건들에서 분명하게 작용하고 있다. 진실을 알면서도 밝히지 않고, 애써 무시하거나 일부러 왜곡하기도 한다. 우리가 불법과 불의를 보고도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 이유와 배경은 다양하다. 무엇보다 자신이나 조직을 보호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또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지만, 이렇게 되는 배경에는 갈등과 변화를 두려워하고 또 관계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패턴을 유지하면서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얻으려는 욕망이 작동한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의도적 눈감기는 소위 은혜로혹은 사랑으로라는 미명하에 강요되기도 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해 의도적 눈감기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교회를 타락하게 하고 개인을 망칠 뿐이다. 개혁 교회의 원리, 곧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은 교회 안에서 불의와 불법에 대한 의도적 눈감기가 결코 자리를 붙일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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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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