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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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피해자의 고통

<가시꽃>(이돈구, 드라마, 청소년관람불가, 2012)

 

우리 사회에 자주 회자하는 성폭행 사건은 주로 가해자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어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처벌에 대한 수위와 예방을 위한 조치 등. 그러나 사실 가장 크게 주목받아야 할 부분은 피해자의 고통이다. 민감한 사안이라 공개적으로 다룰 수 없는 일이긴 하나 피해자들이 평생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마저도 실종한다면 적지 않은 문제다. 피해자의 고통이 어떠한지를 가시화시켜, 그 깊이와 참담함을 엿볼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한다.

이돈구 감독의 장편 데뷔작 <가시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와 속죄 그리고 심판의 모티브를 사용해서 인간의 욕망과 피해자와 가해자의 심리를 파헤친다. 뛰어난 연출력에서도 돋보이지만 300만원이라는 지극히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져 2012년 부산영화제에서 적지 않은 화젯거리가 된 영화다. 독득한 연출은 영화 이야기 자체에 녹아들어 있어서 내용을 기술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재봉공장에 다니는 성공은 10년 전 고등학교 시절 선배와 친구들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성폭력에 가담했다. 상대는 엄마와 단둘이 살다 엄마가 죽고 혼자가 된 여학생 장미였다. 장미에게 아무런 보호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저지른 성폭력은 남학생들의 담력테스트의 일종이었고, 사건 이후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이 되어 묻히는 듯 했다. 그런데 10년 전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갑자기 성공의 눈앞에서 현실이 되는 일이 발생했다. 마음의 위로나 받기 위해 찾아간 교회에서 장미를 만난 것이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미는 성공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성공은 극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게다가 장미가 여전히 교복 입은 남학생들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살고 있음을 알고, 속죄하는 심정으로 평생 그녀를 지켜주기로 결심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녀가 일하는 카페에서 함께 일하고, 집은 다른 방향에 있지만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예배 중에 경험한 속죄 경험은 친구들을 전도할 마음으로 이어지지만 친구들은 지난 일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싫어하고 또한 지금 와서 어쩌겠냐며 현재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로 치부해버린다. 성공과 장미는 어느새 마음으로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성공은 장미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장미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줄 알았고, 또 어느 정도 속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기회만 되면 장미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그녀의 용서를 받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상황이 급반전되는 일은 청년부 엠티를 계기로 벌어졌다.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털어놓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반강제적이긴 했지만 가해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성공은 10년 전 사건에 대해 고백하며 말했는데, 나쁜 친구와 어울려 다니면서 저질렀던 도둑질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장미는 피해자로서 10년 전의 사건에 대해 말하면서 당시에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아직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가해자들을 향해 분노하고 또 그들이 버젓이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고 또 지난 일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런 자신이 싫다며 울부짖었다. 피해자인 장미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자신과 전혀 다른 마음을 갖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 성공은 충격을 받는다. 그리곤 갑자기 엠티 도중에 혼자 돌아온 성공은 선배와 친구들을 일일이 찾아가 잔혹하게 살해한 후에 자살을 한다. 살해하기 전에 성공이 던진 질문은 피해자에 대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었고, 성공이 들은 그들의 대답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일이고, 지금에 와서 어쩌겠냐는 것이었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비약된 장면을 보면서 몇 가지 질문을 갖게 된다. 장미가 울부짖으며 했던 말을 듣고 있던 성공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는 갑자기 왜 자신을 포함한 가해자들을 죽일 생각을 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만한 단서를 영화는 제공해주고 있지 않다. 누가 보더라도 가질 수 있었던 질문을 감독은 왜 회피한 것일까? 어떤 의도에서 이런 비약적인 내용전개를 감행한 것일까?

표면적으로 볼 때, 장미의 말을 들으면서 강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성공이 죄를 깨닫지 못하는 선배와 친구들을 심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공에겐 결코 그럴만한 자격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을 기대할 만큼의 성격의 소유자도 못된다. 만일 그렇다면 이야기 자체가 좀 이상하게 흘러간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피해자를 대신해서 보복한다는 것도 가해자 가운데 하나인 성공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잊고 용서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장미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피해자인 장미가 겪는 고통을 현실화시키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문제는 해결된다. 다시 말해서 감독은 잘못에 대한 죄책감도 없고 속죄도 없는 사람들이 버젓이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괴로워하는 장미의 고통과 성공을 동일시한다. 성공 자신을 포함해서 가해자들을 살해한 것은 피해를 당하면서도 죽고 싶을 심정이었고, 10년이 지난 일로 지금까지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장미의 고통에 대한 해방을 표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성공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성공에게 전화를 걸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 사실, 그리고 장미의 웃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그녀가 고통에서 벗어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가시화시키는 일에 있어서 대단히 뛰어나다.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행 피해자의 고통을 표현해낸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돋보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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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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