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3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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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웃는 세상을 위해

<괜찮아 3>(히로키 류이치, 드라마, 2013)

 

경쟁사회는 한 쪽을 누르면 반대편에서 튀어나오는 풍선효과를 나타낸다. 누군가가 성공하면 누군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쪽이 웃으면, 다른 한 쪽은 울게 되고, 누군가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내려와야 한다. 사회 한 쪽에서는 웃음이 넘쳐나지만 다른 한 쪽에선 고통으로 신음한다. 이런 현상은 금융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더욱 두드러졌고,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정말로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일까? 사실 사회 각 분야의 이론이 총동원해야 겨우 설명될 수 있는 복잡한 주제이지만, 놀랍게도 히로키 류이치 감독은 한 장애인 선생님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화두로 삼는다.

 

학년 초 5학년 3반 학생들은 특별한 몸 상태를 가진 선생님을 담임으로 맞게 된다. 팔다리가 없이 태어나 전동 힐체어에 몸을 의지하는 장애인 아카오 선생님이다. 그의 손과 발의 역할을 하는 보조교사를 동반하는 조건으로 특별 채용되었다. 아카오 선생님이 보조교사와 함께 교실에 들어섰을 때 아이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고, 일부는 선생님이 장애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자신과 주위 환경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시기의 아이들과 함께 보내면서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는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상황을 몇 차례 경험한다. 5학년 3반은 과연 일 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아카오 선생님은 자신이 장애인임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떳떳하게 말한다. 다른 교사가 생각할 때 교사답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보이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다르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보이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선생님을 아이들은 최고의 선생님으로 꼽는다.

학교에서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 중에는 조금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고, 일본 문화를 모르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점도 있다.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현실과는 비슷하면서도 우리 현실과 다른 부분이 보여 수긍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사회와 학교에서 흔히 나타나는 이지메(집단 따돌림) 현상이 나타날 만한 상황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아예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착한 영화이기 위한 의지가 명확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회에서 잘 드러나 있지 않은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킴으로써 이야기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또 좌충우돌의 상황 속에서 인간의 따듯한 면을 부각시키고 있는 히로키 류이치 감독의 능력을 실감케 하는 영화라는 점이다.

<괜찮아 3>은 여러 가지 점에서 돋보인다. 무엇보다 오체불만족의 저자인 오토타케 히로타다의 교사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장애인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장애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장애인은 당당하게 살아가는 상황에서 그와 더불어 사는 비장애인에게 문제가 일어나고 또 상처가 치유되며 삶의 용기를 얻는 힐링에 대한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서 영화가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은 반 정체성 찾기를 위한 학급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다. , 5학년 3반이 일 년 동안 모두가 웃는 반으로서 지내자는 것이다.

영화는 이 결정이 아이들의 학교와 가정에서, 학우들 간의 관계에서 그리고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서 하나 둘 씩 꺼내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모두가 함께 웃는 반을 위해 노력하면서 아이들이며 어른들 모두가 아름답게 성장하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상황을 설정하거나 대사를 통해 설교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사건을 통해 암시하되 주제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염두에 두고 감상하지 않으면 미처 발견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저 아이들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통해서 생각하도록 할 뿐이다. 따라서 관객은 모두가 웃는 세상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몇 가지 사건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찾을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보았던 점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 문제가 생겼을 때 성급하게 상대방의 행동 자체를 비난하기보다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이유와 동기를 먼저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 같은 목적을 위해 협력하되 결과보다는 노력함으로써 얻는 성장을 중시한다. , 인간은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남을 도우며 살되 또한 필요하다면 남이 도움을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한계가 있지만 자신만의 장점도 있고 또한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다섯, 연약한 자를 배려하되 때로는 그 일 때문에 정상에 오르는 일조차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영화를 직접 감상할 필요가 있다.

영화가 비단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사실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사회는 어른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이며, 또한 교회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사회를 위해서는 각자가 포기해야 할 것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것과 모두의 기쁨을 위해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일상화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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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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