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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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를 감시한다면....

<감시자들>(조의석/김병서, 범죄, 액션, 15, 2013)

 

<감시자들>은 홍콩 영화 2007년 작 <천공의 눈>(유내해)의 리메이킹 작이다. 두 개의 작품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한국 감독의 독창성이 더욱 돋보인다는 평이 많다.

영화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범죄를 저지르는 청부업자를 찾아내고 검거하는 경찰의 이야기다. 수사물이지만 제목만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범죄자를 색출하고 검거하는 방식이 기존의 범죄영화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영화의 특색이다. 과학 수사나 형사의 직감의 차원이 아니라 CCTV와 핸드폰을 도청하는 최첨단 기기를 동원하고, 미행하고 사람을 식별해 내는 일에 고도로 훈련을 받은 경찰들의 활약상이 이야기의 내용이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지만 상황실에서는 종합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다. 필요에 따라 전국의 CCTV를 사용할 수 있다. 누군가를 감시하는 그 사람들을 또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목표물을 뒤쫓는 중에는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심지어 다른 범죄 현장을 목격해도 동료가 위기에 빠져도 목표물을 감시하는 일을 놓쳐서는 안 된다. 목표물이 설정되면 그들의 모든 감각은 오직 목표물에 대해서만 반응해야 한다. 영어 제목 Cold eyes은 영화 속 형사들이 겪어야 하는 실존 상황을 잘 표현해준다.

영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매우 단순한 플롯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틱한 역할을 해내는 복선은 있어도 반전은 없다. 범인은 처음부터 노출되어 있다. 그러니 영화는 범인을 찾아내고 쫓으며 접근하기 위해 작동하는 경찰들의 동선과 첨단 기기들의 기능에 집중한다. 다양한 흐름을 하나의 주류로 모으는 방식이 아니라 시종일관 하나의 흐름에만 전념한다. 복잡하지 않아 비교적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영화 처음 부분에 등장하는 감시의 한 사례를 보면, 성공적인 감시를 위해서는 얼마나 뛰어난 관찰력과 기억력 그리고 순발력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상황에서는 얼마나 달라질 수 있고 또 힘든 일인지도 실감할 수 있다. 영화는 일련의 범죄 사건들을 매개로 조직적인 감시망과 함께 일하는 경찰들의 애환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경찰의 실정에 비추어볼 때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 점이 없진 않다. 그러나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특히 감시 시스템에 있어서 그렇다.

 

영화가 제기하는 화두는 아니지만 영화를 보면서 드는 불편한 느낌이 있다. 만일 범죄자를 쫓는 데에 사용하는 감시 기술이 민간인 사찰에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감시자들이 사용한 기기는 주로 CCTV와 전화 및 핸드폰 도청이고, 위치 추적을 위한 GPS. 실제로 범죄 예방을 위해 설치된 CCTV는 거리와 동네마다 넘쳐나고 그야말로 사각지대가 없을 정도로 많이 설치되어 있다. GPS는 누구나 손쉽게 구입하고 또 설치할 수 있으며, 도청 장치 역시 마찬가지다. 유선이 아니라 핸드폰마저도 도청이 가능할 정도라면 사실상 모든 말과 행위를 감시할 수 있다고 보면 되겠다. 이론적으로는 집 밖을 나서는 모든 사람들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을 정도고 또한 어떤 장소와 시간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도를 넘어선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역대 정부에서 민간인 사찰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유신정부, 5, 그리고 MB시절에 특히 그랬다. 이미 동독에서 무수한 민간인 사찰이 보고된 바 있고 <타인의 삶>은 그것을 영화로 표현한 작품이다. 최근에 미국의 전 CIA 스노든 요원의 폭로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전 세계 국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필요에 의해 감시를 하겠지만, 우리의 말과 행위가 누군가에 의해 감시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이런 행태가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단지 개인의 사생활 침해, 더 나아가서 인권 침해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것에 있다. 그것은 불신 사회를 조장하는 것이며 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기본적인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인데,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말과 행위를 감시할 수 있고 또 그런 염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이웃을 신뢰하겠으며, 건강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스노든은 미국 정부기관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후에 망명을 원하면서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고 싶은 것은 윤동주 시인만이 아니라 모두의 소원이지만, 인간은 결코 그럴 수 없는 법이다. 사생활은 인간의 내밀한 부분을 표현하는 영역으로서 인간이 사회 속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다. 사생활은 일종의 갯벌에 해당되는 곳으로 불필요한 것을 정화하며 상처를 치유한다. 때로는 새로운 힘을 공급받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심지어 가족 사이에도 사생활을 존중할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생활 보호는 기본권 보장에 해당되며 헌법을 통해 보호받는다. 그만큼 사생활이 갖는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의미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인 사찰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며, 이 일을 자행한 정부기관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편, 우리 사회에 연예인 혹은 기타 공인의 사생활 폭로와 관련해서 종종 화두로 제기되고 있는데, 도대체 사생활은 무엇인가? 인간의 사생활은 오직 개인의 영역이다. 가족 사이에도 사생활 보호 원칙이 적용될 정도로 그것은 매우 비밀스런 영역이다. 만일 누군가가 개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의 머리카락도 다 셀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숨어서 하는 일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피해 음부에 내려간다 해도 결코 숨을 수 없다. 우리를 추궁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실 목적으로 감찰하신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오히려 우리는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 신앙이다.

미셀 푸코에 따르면 감시는 권력 행사의 한 방식이다. 감시를 통해서 권력행사의 가능성을 높이고 또한 권력의 확대를 꾀한다. 전능한 감시자가 되려는 것은 인간 위에 인간이 군림하게 되는 욕망의 표현이다. 따라서 만일 어떤 이유에서든 남을 감시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능력에 손을 뻗었던 아담과 하와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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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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