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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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족의 일상

<에브리데이>(마이클 윈터버텀, 드라마, 청소년관람불가, 2012)

 

 

 

남녀 두 생명체가 인격적으로 만나 이루는 가족은 하나의 문화생산 단위다. 가족마다 달리 가지고 있는 특징이 문화의 차이를 낳고 새로운 문화 생산에 기여한다는 말이다. 가족은 사회와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류라는 큰 틀에서 볼 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가족과 구별되는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다. 존 그레이 박사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말하면서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표현을 썼듯이, 새로운 가족 문화 형성은 서로 다른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성인 남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남녀가 한 가족 공동체로 만나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나간다. 문화와 문화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차이를 지나치게 부각하는 가운데 차별로 이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오히려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특별하게 보며 차별하는 것은 문화 갈등의 뇌관이기 때문이다.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고안해내는 일은 또 다른 문화 생산을 위해 중요하다. 문화적인 차이와 갈등 그리고 충격을 잘 극복해나가면 바람직한 만남으로 여겨지고 또 새로운 문화를 생산할 수 있는 힘을 얻지만, 그렇지 못하면 상호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헤어지고 만다. 현대 사회의 높은 이혼율은 개인 간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거나 혹은 서로 다른 문화 안에 내재해 있는 갈등 요소들을 새로운 문화 생산을 위한 계기로 삼지 못한 결과이다.

영화 <고령화 가족>은 가족을 어떤 정해진 모델에 따라 이해하기보다는 서로를 가족으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람직함을 강조한다.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가족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가족에 대해 아무런 정의를 내리지 않는 태도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내세우는 메시지를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가족은 하나의 문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편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가족과 비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또 공통되는 점이 없지 않지만, 가족에게 고유한 점도 있다는 점을 환기할 뿐이다. 모든 사람은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격이라는 개체성을 갖고 있듯이, 가족역시 그렇다고 보면 되겠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이 <에브리데이>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국의 한 가정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메시지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특정 사건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그로부터 메시지를 생산해내려고 하지 않는다. 굳이 언급한다면 가족을 위한 아내의 헌신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헌신을 말하기에는 그녀의 삶에서 발견되는 일탈이 석연치 않다.

한편, 영화를 곱씹는 가운데 필자의 마음에 강한 울림을 일으키는 점이 있다. 다른 여타의 가족과는 다르다 해도 어느 한 가족에게 독특할 수밖에 없는 일상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가족이다. 그러나 감독은 가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사의 음악과 평범한 앵글과 샷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을 특별하게 보려고 하지 않는 듯하다. 아마도 이 가족을 특별하게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놓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을 특별하게 보려고 하는 것부터 이미 한 가족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특별하게 보이는 그것은 우리와 다른 모습인 것이고 바로 그 가족에게 고유한 삶의 한 단면일 뿐이다. 자세한 이해를 위해 영화 속의 가족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자.

 

아빠 이안은 마약 밀매로 범죄자가 되어 5년간 수감 중이다. 그의 아내 카렌은 홀로 네 아이를 양육하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형편이다. 카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상황에도 주말만 되면 아이들과 함께 버스와 전철과 기차를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수백 킬로미터 거리의 교도소까지 가서 남편을 면회한다. 교도소에 있다고 해서 아빠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아이들에게 상기시켜주려는 것같이 보인다. 때로는 아빠가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가기 싫은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가기도 한다. 교도소에서 그들은 한 가족으로서 만난다. 아빠는 자녀들의 일상을 궁금해 하고, 때로는 아이들에게 훈계도 하며, 아이들은 아빠의 교도소 생활을 궁금해 한다. 아내와 남편으로서 서로가 함께 나누었던 사랑을 에로틱하게 추억하기도 한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면서도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그들은 떨어져 있으면서 오히려 더 깊은 관심을 서로 나눈다. 그리고 출소 이후에 함께 지낼 시간들을 꿈꾸며 계획한다.

아버지 없이 혹은 범죄자 아빠를 둔 네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섞여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나 탈선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를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더 깊어가는 외로움과 싸우고 또 지쳐가는 카렌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와 가족에게 엄습해올 지도 모르는 위기를 염려하며 마지막까지 안타까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을 엿볼 수 있는 점이다. 실제로 카렌은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어 다른 남자를 만나는 일탈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출소한 남편에게 이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데, 남편은 배신감에 분노하지만 이내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야말로 남들이 보기에는 특별한 가족일 수밖에 없다. 평범한 시민의 가족과는 분명 다르다. 사회의 밑바닥을 사는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윈터바텀 감독은 그들의 삶이 영국의 한 가족의 일상임을 강조한다. 보편적인 모습은 아니라도 이안 가족에게 고유한 가족의 모습이다. 차별적으로 보아야 할 이유도 없고, 사회의 주변인으로 보아야 할 이유도 없는 가족으로서 우리의 이웃인 것이다.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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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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