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나님의 공동선>을 읽고 :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 공동선"



1. 공공성으로 충분한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코로나19가 일어나기 전, 교회 안팎에서는 기독교의 공공성(public)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전에도 이러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공성과 관련된 논의는 이 땅에 기독교가 전해진 초기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핵심 주제였다. 한국 교회의 초기 역사를 보면, 일본의 지배로부터 독립하고자 수고했던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로 대척점에 있지만, 그 대표적인 기독교인이 김구와 이승만이다. 또한 기독교인이자 민족 시인인 윤동주를 배출한 간도의 용정마을도 교회를 중심으로 항일 투쟁을 펼친 지역이었다. 한국 기독교는 초기부터 공공성에 대해 고민했던 공적 교회였다. 하지만 해방과 전쟁, 이후의 극심한 가난,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교회는 또 다른 형태의 공공성을 지지하는 신학과 사상을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민족주의라는 공공성을 지향하였다면, 이제는 경제 발전과 풍요라는 공공성을 격려하는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이 유행한 것이다. 많은 사람은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이 신앙의 공공성을 약하게 만들어, 기독교 신앙을 개인화, 사사화 하였다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역사와 상황에 따라서 사회가 요구하는 공공성의 변화에 교회가 반응한 것이었다. 교회는 언제나 공공성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문제는 서구 사회에서 논의하는 공공성에 대한 논의이다. 서구 사회는 공공의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여 공공의 영역에서 배제해야 할 사적인 요소들을 지정하였다. 혈연, 인종, 언어, , 종교 등은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이와 달리 국가, 교육, 정치, 경제, 군사 등의 영역은 공적인 영역이다. 그리고 이 두 영역은 서로 위계를 지닌다. 공적인 영역이 사적인 영역보다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공적인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적인 영역은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과거에는 민족을 위해서 전쟁을 했다면, 근대에는 국가를 위해 개인이 전쟁에 참여한다. 국가 안에는 여러 혈족과 인종,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다. 국가라는 공적인 영역을 지키기 위해, 사적인 영역의 희생이 당연시되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공공성은 국가주의라는 기반 아래 근대에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제 위에서 공공신학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결국 공공신학이란 교회가 국가나 사회가 정한 아젠다와 이익에 부합하는 역할을 하여서 교회를 공공의 영역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일종의 운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 인식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이는 유의미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세계 속에서 교회의 영역을 공공의 주체가 아닌 한 영역으로 축소하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일지는 의문이 있다.

2. 공동선의 재발견

필자는 공공신학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의식 속에서, 최근 출판된 송용원 박사의 하나님의 공동선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가 공동선을 통해 세계 속에 존재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였다. 송용원 박사는 공동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공동선(同善)은 공공성(公共性)이나 공익(公益)보다 큰 개념입니다. ()은 영어의 public에 가깝고 공()common에 가깝습니다. ()은 통합된 전체의 의미가 강조되어 위에서 아래를 조절하는 뉘앙스가 짙은 단어이지만, ()은 구성원 각각의 개별성이 강조되는 뉘앙스가 짙은 단어입니다. .... 공공성이나 공익은 전체를 강조하는 개념이지만 공동선은 전체와 개인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는 개념입니다(29).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공공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약자를 배려하고 돕는 것과 개인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논의의 핵심은 어떤 가치와 의제를 중요하게 여기느냐가 아니라 그 의제와 가치를 누가 정하느냐에 있다. 공적인 영역이 사적인 영역의 가치를 규정하는지, 아니면 사적인 영역이 공적인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는 열린 구조인지가 중요하다. 아쉽게도 현대의 공공성은 이러한 열린 태도를 수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송용원 박사가 정의한 공동선은 영역과 위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인간이 공유하는 공동선이 개인과 공동체가 공유하고, 이를 서로 증진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자칫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우리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경우를 고대로부터 학습하였기 때문이다. 문화 인류학자이자 철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이러한 희생양 현상이 고대에서부터 빈번하게 있었다는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송용원 박사는 공동선에는 개인과 공동체라는 수평적인 축만이 아닌,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수직적인 축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동선이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은총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은총은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창조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을 향한 ‘일반 은총’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만을 위한 ‘특별 은총’이다. 그러므로 공동선은 하나님께서 신자와 비신자를 포함한 모든 인류에게 주신 ‘일반 은총’을 의미한다.

3. 책의 나머지 내용

저자는 공동선에 대해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아퀴나스, 칼뱅에 이르는 신학적이며 철학적인 논의를 2장과 3장에서 펼치고 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른 누가 설명한다 하여도 선악의 문제,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의 관계를 이보다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탁월하다는 뜻이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칼뱅의 신학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칼뱅의 공동선에 대한 이해는 전무후무하다. 이러한 면에서 송용원 박사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를 출판한 칼뱅과 공동선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 이 책의 3장 내용으로도 충분하지만 관심 있는 독자들은 전작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 책은 또한 공동선(일반은총)을 창조와 타락의 관점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하나님 나라와의 연속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리처드 마우 등의 신칼빈주의자의 저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의 스승인 미로슬라브 볼프와 동일하게 몰트만의 종말론의 선취개념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한다. 몰트만의 선취란 종말 이후에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면서 이것이 이미 지금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종말에 방점이 있다. 그러나 신칼빈주의의 종말론적 문화관은 지금 이 땅에서 신자가 이룬 업적이 종말의 하나님 나라로 이어진다는 주장으로서, 창조와 현재에 강조점이 있다. 필자의 의견은 공동선이 일반 은총과 같다면 하나님 나라에서의 공동선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신칼빈주의의 종말론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피하고자 볼프는 그의 일과 성령에서 일을 소명론이 아닌 성령론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4. 공동선은 참 신앙의 표지

마지막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공동선이란 공적, 사적인 영역이 아닌 인류가 공유하는 선함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공동선이란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인종, 종교, 빈부, 성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동선의 나라를 세우는 데는 전제가 있는데, 바로 약자를 위한 정의입니다.”(151) 공동선의 시금석은 약자를 향한 태도라는 것이다. 그 사회의 최 약자에게 공동선이 실현되고 있다면, 그 사회는 공동체와 개인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수직적이며, 신적인 은총이 임한 사회이다. 물론 이는 교회와 신자들이 자랑치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사는 사회가 강자들의 세상이라면, 이는 누구의 책임일까? 하나님은 교회와 신자들에게 그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마25:42-43)

 

이춘성 목사
국제 라브리(L’Abri Fellowship) 선교회에서 간사와 국제 회원(International Member) 일했으며 합동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M.Div.)와 고신대학원에서 기독교 윤리학 석사(Th. M.)를 하였다. 현재 고신대학교 일반대학원 기독교 윤리학 박사(Ph. D.)과정을 수료하고 ‘환대(Hospitality)’를 주제로 연구 중이며, 광교산울교회 청년부 담당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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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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