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대중문화 읽기] 영화 <소년 아메드>: 신의 이름으로, 한 극단주의 무슬림 소년의 믿음



영화 <소년 아메드>는 한국에서 그리 익숙지 않은 무슬림을 다룬다. 지난 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황금종려상을 두고 경쟁하고 감독상을 받은 이 영화의 감독은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이다. 이제껏 두 차례의 황금종려상 수상(<로제타, 1999>, <더 차일드, 2005>)과 각본상(<로나의 침묵, 2008>), 심사위원대상(<자전거 탄 소년, 2011)을 받으면서 명실상부 “칸이 사랑한 거장이라 불리곤 한다.

칸 영화제 중 다르덴 형제 모습

두 사람은 마치 한몸처럼 지금껏 벨기에의 실업, 불법이민, 빈민문제 등 사회적 문제들을 통해 윤리적 이슈를 다뤘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일을 다큐처럼 따라가며 보편을 드러내는 데 탁월하다. 이번에는 최근 유럽의 심각한 사회문제인 이슬람 테러를 택했다. 벨기에는 2015년 이래 유럽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사건의 중심지가 되었다. 무슬림의 수는 급증하는데, 사회에 성공적으로 통합되지도 못하고 날로 심해지는 빈부격차 등 젊은 무슬림들의 좌절과 불만이 커지면서 강력범죄, 나아가 극단주의에 빠져드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 대부분의 견해다.

영화의 저변에는 이러한 다종교, 다문화권 유럽 시민사회에서의 무슬림의 사회통합(사회적응을 위한 세속주의적 입장과 전통주의적 입장 간의 갈등과 같은)을 둘러싼 복합적인 면면들이 깔려있다. 다르덴 형제는 그 가운데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앳된 소년 아메드(이디르 벤 아디)를 통해 극단주의에 빠져 있지만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따뜻하고도 열린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 속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이슬람 극우주의를 맹신하는 아메드를 따라간다. 급진적 이슬람 지도자 이맘(오스만 모먼)은 아메드에게 왜곡된 교리를 가르치고, 어린 시절부터 아메드를 가르친 이네스 선생님(메리엄 아카디우)를 배교자로 몰면서 비난한다. 합리적 이성을 잃어버리자 싹튼 것은 신앙이 아니라 맹목이다. 아메드는 이네스를 해치려다 소년원에 수감되지만, 배교자를 처단하려는 시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아메드는 종교적인 것 외에 큰 관심이 없다. 안경에 가려진 무표정한 얼굴이 달라질 때가 있다면 반이슬람적 인물들에게 적대감을 보이고, 알라를 대하듯 이맘을 대할 때뿐이다.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고 코란을 읽으며 부정한 것과의 접촉을 피해 종교적 정결함을 지키려 애썼다. 하지만 또래 루이즈(빅토리아 블록)와의 만남은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표정이 살아나는 듯하지만 이내 자신을 오염시킨 소녀를 밀쳐내고 만다. 그리고 성전(聖戰)’만이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는 듯, 자신의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혼란과 불안, 죄책으로부터 도망치듯 달려간다.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광기 어린 종교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종교는 왕왕 선과 악, 성과 속의 이분법 속에서 타자에게 혐오와 배제, 폭력을 자행하며 신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곤 한다.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이 그러했고, 아메드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진정한 신자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는 과거 중세시대 혹은 이슬람 극단주의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신앙이나 특정 신념에 매몰되어 자기만의 신을 좇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다. 때로 이익이나 탐욕, 권력과 세력 확장, 심지어 종교나 국가가 신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여기에 이웃 사랑, 고통당하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연민, 책임의 공간은 없다.

영화에서 아메드가 맹목적 신앙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심판자의 자리에서 추락해 타자의 자리에 놓이는 순간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마침내 그는 죽임이 아니라 생명을, 혐오했던 여성의 손을 뿌리치는 것이 아니라 잡기를 택한다. 안경이 벗겨진 채 그녀의 아픔에 공감하며 흐느낀다. 역설적이게도 아메드가 가장 ‘종교적’일 때가 아니라 가장 ‘인간적’일 때, ‘구원이 찾아온다. 영생을 묻는 율법 교사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질문 내가 나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더 깊고 넓은 성찰의 차원으로 이끈다.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그분의 피조물인 타자/세상에 대한 사랑과 분리될 수 없음을 전제한 말이다.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세 속에서, 국민의 다수가 그 원인을 종교모임 및 활동이라고 인식한다는 통계가 있다. (경기연구원,  2020) 한국교회 전체가 사회적으로 문제시되고, 예배를 비대면으로 전환해야 하는 가슴 아픈 현실을 마주하는 가운데 교회는 극단주의 종교와 다른 거룩한 배타성을 세상에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저마다 답변이 다를 수 있지만 그에 앞서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 교회는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 무엇을 사랑하는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글쓴이_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이 글은 <한국기독공보>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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