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대중문화 읽기] 수다 꽃이 피었습니다: 교회 사역자들과 함께 본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1. 자기소개

임주은: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선교연구원 기획간사 임주은 전도사입니다. 오늘은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가지고 [기독교인의 대중문화 읽기: 수다꽃이 피었습니다]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함께 자리해주신 분들은 현재 각자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계신 전도사님들인데요. 사역자들이 본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어떨지, 또 드라마 내용을 통해 기독교적 관점 혹은 교회에서 더 깊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아서 초대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하기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채인: 제 이름은 이채인입니다. '주님의교회' 발달장애부서에서 4년째 섬기고 있습니다.
장해림: 제 이름은 장해림이고요. 제가 섬기는 교회는 예설교회이고, 주로 일터목회에 대해 고민하는 사역자나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저도 주말에는 사역을 하고, 주중에는 교회 카페의 매니저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로지: 저는 로지라는 가명을 사용할게요. 저는 지금 작은 개척교회에서 청소년부와 청년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2.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임주은: <사이코지만 괜찮아>라는 드라마가 굉장히 화제성이 있었어요. 주로 여자 주인공의 미모에 대한 기사가 유난히 많았던 드라마인데요..(웃음) , 사이다 같은 대사도 화제성에 한 몫 했었죠. 여러분들은 왜 이 드라마를 애청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지 함께 나눠주세요.

로지: 요즘, 저도 그렇고 제가 만나는 청년들도 그렇고 마음의 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실제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구요. 그래서 그런지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정신질환을 다루는 드라마는 어떨지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어요. 사실 대중문화에서 보편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아니잖아요.

이채인: 원래 드라마는 좀 재밌고 편하려고 보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이코지만 괜찮아>처럼 아픔과 관련된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를 보면, 저도 덩달아 심각해지고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즐겨보는 장르는 아니에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대로 화제성이 짙기 때문에 궁금해서 드문드문 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장해림: 사실 처음에는 배우 김수현의 복귀작이기도 해서, 그저 가볍고 재미있는 드라마 정도라고 예상하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드라마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게 좋았어요. , 각 화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동화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풀어내주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제목에 괜찮아라는 말이 들어가는 드라마는 다 좋았어요(웃음)

#3. 안 괜찮아도, 괜찮아.

임주은: 해림님이 말해주신것처럼, 제목에 있는 "괜찮아"라는 말에 대해 더 이야기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보통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 문화는 안 괜찮다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기보단, 웬만하면 괜찮다라고 말해야 하는 곳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만나서,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괜찮아진사람들이 모임이잖아요. 그러다보니 교회 안에서 괜찮지 않다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거나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닌 거죠

로지: 저희 교회에 나오는 청년 중에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어느 날 그 청년이 공황발작이 와서 제가 그 청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어요. 그런데 내가 해줄 수 있는게 무엇인지 물어보니, “괜찮다고 말해주세요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은 괜찮아이겠구나.. 많은 사람들이 안 괜찮은 마음으로, 안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옆에서 누군가 안 괜찮아도 괜찮아라고 해주면 그게 가장 큰 위로가 아닐까..

장해림: 저도 유년시절 여러 어려움과 아픔이 있었는데, 교회에서는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고, 그렇게 보이고 싶어 했었어요. 사람들도 그런 나의 모습을 사랑해주니까 그게 좋았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그게 진짜 저의 자존감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실 나는 안 괜찮은데, 교회 안에서만 괜찮다고만 말하고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어느 날 큰 맘 먹고 교회 친구들에게 나를 솔직하게 오픈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누구도 나를 가치평가 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위로해주었었어요. 예상했던 반응이랑 달라서 놀랐었죠. 그게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복음의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보니까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거나 혹은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때부터 그들에게 안 괜찮아도 괜찮아라고 말해 줄 수 있었어요.

임주은: 드라마 1화의 제목이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이었어요. 이 동화를 통해 드라마가 어떤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처음부터 명확히 드러내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어요. 이 이야기는 아무런 고통의 기억이나 아픔이 없는 사람들, 혹은 과거의 상처를 잊어버린 척 괜찮은 척 산다면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메시지였죠. 우리는 흔히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과거 고통의 기억이나 아픔 혹은 현재의 결핍들이 깨끗하고 완벽하게 씻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도 해요. 그러다보니 내가 겪는 혹은 이웃이 겪는 아픔과 결핍에 대해서도 옳지 못하다라고 쉽게 판단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되어서라기보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 인정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게 교회 공동체의 모습, 또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4. 대중문화가 담는 정신질환·발달장애에 대한 이야기

임주은: 예전엔 드라마에 정신질환 혹은 발달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이 없었어요. 등장한다고 해도 부정적이거나 혹은 비중이 별로 없는 주변인물 정도였죠.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킬미힐미>, <굿닥터>, <괜찮아 사랑이야>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 다양한 정신질환 혹은 발달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은 이러한 대중문화의 변화를 어떻게 보시나요?

왼쪽부터 드라마 <킬미힐미>, <굿닥터>, <괜찮아 사랑이야> 포스터

이채인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해요. 아직 대다수 사람에게 장애는 낯설거든요. 낯설면 경계하게 되요. 사람들이 꼭 나빠서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잘 모르고 포용할 좋은 기회가 없어서 그런다고 생각해요. 일단 자꾸 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기초적인 지식도 생기고 호감도 생기면 경계가 풀어져서,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생겨요. 사실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이 연기를 해주고, 묘사도 대체로 긍정적이니까 이 만큼 좋은 기회도 잘 없죠. 실제로 제가 아는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말아톤> 같은 영화를 긍정적으로 보시더라구요. 

장해림: 그런데 저는 약간 걱정되기도 해요. 어찌됐건 대중문화 콘텐츠는 상업성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가 인기를 끌어야 하잖아요. 멋진 배우들이 최대한 매력적인 모습으로 정신질환 혹은 발달장애인을 연기할 때, 시청자들의 인식 속에서 은연 중에 낭만화 될 위험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임주은: 두 분 말씀처럼,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정신질환 혹은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다루는 것은 편견이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좋은 의도도 있겠지만, 동시에 현실이 왜곡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도 하겠네요.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해서 잘 모를 때에, 혹은 어느 정도만 알게 될 때에도, 쉽게 상대방을 대상화하고 판단 내리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사회 전체적인 인식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 중요한 일 인거 같네요. 

#5. “다르면 무서운 거야?, 다르면 성에 혼자 사는 거야?”

임주은: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다고 느꼈던 지점은 작가가 미친 사람/비정상인’과 정상인’에 대한 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질문을 던진다는 거예요.

드라마 2화의 한 장면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 8화의 한 장면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앓고 있던 문상태가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자, 당황한 사람들이 함부로 미친놈이라고 명명해요. 또 가정폭력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전 아내에게 남편이 폭력을 사용하며 미친년이라고 말하죠. 그들에게 고문영의 대사는 마치, 당신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폭력적인 당신들이야 말로 미친 사람들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실태조사에 대해 찾아봤어요. 그런데 편견에 영향을 준 큰 요인 중 하나는 미친놈이라는 용어 사용을 남발한 데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채인: 드라마 제목이 <사이코지만 괜찮아>인데, 저는 '사이코'의 범주가 꽤 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를 가진 분들과 교제하는 동안 제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모든' 사람들 내면에 있는 약함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우울증을 진단할 때 점수로 진단을 하잖아요. 가령 80점 이상이면 우울증이고 90점 이상부터는 우울증이 심하다,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점수가 79점 이하, 그러니까 60점이나 50점, 아니 10점이라고 해도 전혀 우울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분노 조절이든 피해 망상이든 그런 성향을 전혀 갖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빈도나 강도가 다를 뿐이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사회인 것 같아요. 그러니 딱 기준선을 두고 구분해서 대상화 시키거나,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 같습니다. 

장해림: 최근에 제가 읽은 책에 고대시대에서부터 현대에 걸쳐 사회가 정신질환자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고대 시대에는 정신질환자들을 마을에서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함께 살았대요. 오히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남다르다 보니까 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구요. 그런데 근대 시대에 오면서는 정신질환자들을 분리·배제시킴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며 살았대요. 그리고 현대시대에 와서는 그들을 노동인력으로 배치시키기 위해서 경증부터 중증까지 계급화 하는 작업을 했다고 해요. 중증 정신질환자들을 마주칠 일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그들을 향한 사람들의 배제는 심화될 수밖에 없었겠죠. 이렇듯 현대에는 더 많은 경계와 차별들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임주은: 드라마 6화에서 <푸른 수염의 비밀> 동화 이야기가 나와요. 사실 문영이 상태에게 들려준 이 이야기의 주된 메시지는 경고를 무시하고 함부로 남의 비밀을 알려고 하지 말아라정도였잖아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상태는 자기 전에 동생 강태에게 이렇게 질문해요.

상태: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왜 푸른 수염을 무서워했지?”
강태: 자기들이랑 다르니까... 수염이 푸른색이잖아.”
상태: 다르면 무서운 거야?”
강태: 그런가 봐
상태: 다르면 성에 혼자 사는 거야?”
강태: 아니, 푸른색 수염이어도 상관없다고, 괜찮다고,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진짜 신부가 언젠간 나타나겠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나와 다른 모습, 혹은 괜찮지 않아 보이는 사람에 대해 무조건 배제하고 격리하는 혹은 대상화시키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다르면 무섭고, 다르면 혼자 살아야 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에요. 오히려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 장면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로지: 맞아요. 그리고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있는 모습 그대로 괜찮다라는 메시지가 바로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6.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교회

임주은: 그게 바로 우리가 오늘 나누고 싶은 궁극적인 이야기이기도 해요. 극 중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혹은 미처 받지 못한 사랑으로 생긴 결핍때문에 힘들어하잖아요. 그런데 자신을 상처와 결핍 안에 가둔 족쇄를 끊어내고 뛰어넘는 방식으로 그 갈등을 해결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그 족쇄를 끊을 수 있는 촉발점이 되어주죠. 문영과 강태의 사랑의 힘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고 말하잖아요. 이 부분을 보면서 저는, 물론 이상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랑의 힘의 역할을 교회가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해림: 맞아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결핍의 영역에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로지: 얼마 전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함께 모여서 1박을 하면서, 이런 저런 속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서로의 아픔을 나누다보니, 지금까지는 교회 안에서 괜찮은 척 하며 숨겨왔던, 교회 안에서는 나눌 수 없던 이야기들을 공유했었죠. 그런데 한 청년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 이게 교회지..”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적어도 교회에서 만큼은 괜찮은 척을 그만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인정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여길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7<봄날의 개>에서, 형에게 악몽인형(망태)을 문영에게 양보해주자고 이야기 할 때, 상태의 대사를 보며 교회에서 일하는 사역자들이 생각났어요

드라마 7화의 한 장면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저 대사는 상태의 이야기라기보다, 강태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형을 위해 희생하며 살고, 또 문영의 아픔을 보듬어주지만 정작 강태는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며 살아가요. 강태가 5화에서 이런 대사를 한 적도 있어요.

강태: “우리 형은 내 얼굴을 항상 보고 있어. 내 눈빛, 눈썹 모양, 입꼬리, 주름 하나하나 표정을 관찰해서 내 기분을 파악해. 온몸이 찢어질 만큼 아프고 마음이 죽도록 괴로워도 내가 억지로 웃어만 주면 형은 그걸 보고 내가 행복하다고 믿어. 형은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야. 가짜여도 상관없어. 웃어주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사역자들도 자신이 힘들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힘든 티를 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힘들고 아픈 이야기를 늘 들어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중에 몇 몇 이들은, 다른 이들의 필요를 예민하게 파악하기 위해 정작 자신의 상처와 결핍의 상태는 어떤지, 또 자신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기도 해요. 사역자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모두 하나님께 가지고 가기 때문에 힘들거나 지치지 않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 같아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게 사역자든 아니든 간에, 누구나 언제든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7.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인식의 변화

임주은: 사실 정신질환이나 발달장애와 관련된 복지단체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거나, 또는 직접 시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의 교회가 많이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볼 때는 사회에서 교회가 약자를 위해 존재하는 곳으로 보이죠. 하지만 왜곡된 인식은 사회나 교회나 여전한 것 같아요. 어쩌면 괜찮아 보여야 하는강박은 사회보다 교회에 더 만연해있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이라고 무조건 만사형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누구나 남모를 정신적 갈등이나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차마 교회 안에서는 드러내지 못하고, ‘은혜로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가 더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가 변화시켜야 할 신앙적 혹은 신학적 관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 함께 나눠주세요. 

로지: 그리스도인들 중에 여러 문제로 우울증을 앓거나, 발달장애 당사자 혹은 가족들인 경우,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왜 나에게 이런 아픔을 주실까?”라며 원망하게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혹은 일종의 개인의 죄 때문에 생긴 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요. 실제로 그런 신관이나 신앙으로 조언해주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저는 교회 안에서 그러한 아픔이 꼭 하나님의 계획하신 것 혹은 우리의 죄 때문에 생긴 벌과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이 말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다만 그 아픔에 함께 계시며 우리를 위로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려운 일이잖아요.

이채인: 예수님은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 아닐까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하나님에 대한 우리 신앙이 감사함보다 죄책감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아요. 죄인 된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에만 집중하며 죄송한 마음을 원동력 삼아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거죠. 그런 신앙도 당연히 우리가 가져야 할 하나의 자세이겠지만, 교회가 그런 점만 너무 극대화 시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내 모습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말해주시는 하나님을 느끼기 어려워하는 것 같기도 해요.

장해림: 제 생각에도, 기독교 전통에서는 인간을 볼 때 속죄 구원론이 너무 강하게 작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인간의 결핍을 단순히 죄의 결과, 부끄러운 수치로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기독교 전통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가진 아름다운 복을 이야기하는 영성 전통도 있어요.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만이 아니라 복음의 본래 이야기를 해주는 목회자가 필요해요. 인간의 존엄을 가르치는 교회가 필요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유는 자신의 존엄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또 타인을 진정으로 환대하고 안아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임주은: 인간이 원죄로 인해 타락한 존재라고 하지만, 사실은 원초적 축복을 먼저 부여 받은 귀한 존재인 게 먼저잖아요. 인간에게서 나온 상처와 아픔, 그 어느 것 하나도 숨겨야 하거나 추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것은 없는 것 같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인데, 그것은 지금 당장 괜찮은 상태로 판가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편견을 갖고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이 사회에서 공생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교회 안에서 왜곡된 신론과 인간론이 아닌 더욱 건강한 신앙적·신학적 관점들이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오늘은 <사이코지만 괜찮아>라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기독교적 관점으로 함께 보며 수다를 떨어봤는데요. 특별히 교회 사역자들과 함께 보고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해서 더욱 유익하고 재미있는 수다 꽃이 피워진 것 같아서 기쁩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각주
1 드라마 속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동화 내용
매일 밤 악몽을 꾸는 소년이 마녀에게 자신의 모든 나쁜 기억과 상처들을 다 지워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지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이 밤마다 꾸는 악몽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소년이 마녀에게 질문해요. “나에게 있는 나쁜 기억을 모두 지웠는데, 왜 나는 전혀 행복해지지 않는 거죠?” 그러자 마녀가 소년에게 대답해요.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 처절하게 후회했던 기억, 남을 상처 주고 또 상처받았던 기억, 버림받고 돌아섰던 기억. 그런 기억들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아가는 자만이 더 강해지고, 뜨거워지고, 더 유연해질 수가 있지. 행복은, 바로 그런 자만이 쟁취하는 거야. 그러니 잊지 마. 잊지 말고 이겨내. 이겨내지 못하면 너는 영혼이 자라지 않는 어린애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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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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