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연봉이 낮은 직업은?’이라는 이상한 설문조사에 늘 빠지지 않고 1,2위를 차지하는 직업은 바로 ‘시인’이다. 30만 원. 2007년 한국일보가 신춘문예 등단 작가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나온 시인의 연평균 수입액. 이래 가지고 직업(자아실현의 장이자 생계유지의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마는, 시인은 인류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해온 사람들이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시인들은 거의 대부분 별도의 생업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참고로 문단에 정식 등단하고 수상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언급하려 한다.)
2019년 ‘액자 속의 바다’라는 시집을 발표한 김미정 시인은 치과기공사라는 생업을 갖고 있다. 2018년 계간 ‘스토리문학’ 시 부문 등단에 등단하였고, 월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은 현재 불광동 NC백화점 15층 팜스 치과에서 치과기공사로 30여 년째 근무하고 있다(2019.5 기준)
요즘은 방송인으로 자주 접할 수 있는 전원책 변호사는 1977년 <한국문학> 100만원고료신인상으로 등단,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재 등단한 시인이다. 그는 스스로 변호사라는 ‘생업’을 갖고 있으면서, ‘시인’이 직업이라고 말한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문학세계사 발행)는 시획 기사로 ‘시인이 따로 가진 특별한 직업들’ 몇몇을 소개하고 그들의 기고문을 게재한 적이 있다. 용접공인 최종천 시인, 젖소농장 주인인 최창균 시인, 산부인과 전문의인 강경주 시인, 건축가인 함성호 시인, 양봉업자인 이종만 시인, 포도농장 주인인 류기봉 시인, 록가수인 성기완 시인, 과일 노점상인 김유만 시인, 백혈병 전문의인 김춘추 시인….
강철의 독재자 스탈린도 젊은 날에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의 시는 정계에 진출하기 전에 이미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시를 쓰기 위해 생업을 이어나가는 걸까, 생활인으로 살아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시라는 결과물이 태어나는 걸까.
한국문학의 대표적 시인인 김수영 시인(1921∼1968)은 생계를 위해 양계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후 마땅한 직업이 없던 그는 사랑하는 여인 김현경과 서울살이를 시작하기 위해 취직을 결심한다.
“차를 시키고, 둘이 말 한마디 없었죠. 한참 있다가 ‘나가자’ 하더군요. 대뜸 ‘약수동(당시 김수영의 집) 가자’ 하더군요.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은 용기가 안 나서 ‘내가 성북동에 방 한 칸 얻어놨어요’라고 말했죠. 그 길로 성북동으로 들어가 다시 부부가 됐고, 15년을 함께 살았죠. 다시 만난 날 밤 ‘나 평화신문 가서 취직하고 올게’라고 말하더군요. ‘아이 러브 유’라는 말보다 더 좋았죠. 돈 벌어온다는 얘기였으니까요. 이튿날 정말 취직해서 오더군요.” ( 출처 : 동아일보 인터뷰 ‘산문집 ‘김수영의 연인’ 펴내는 시인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 씨‘)
하지만 도시생활은 시인에게 만만치 않았던 듯하다. 평화 신문사에 재직하는 동안 생계유지를 위해 명동 뒷골목을 뒤지며 미국 잡지를 골라 잡지사에 소개하며 번역료를 타내 하루하루 살아가는 괴로움은 그가 일기에서 쓴 것처럼, 번역을 할 때가 ‘세상에서 제일 욕된 시간이라고 단정하고 있다’는 구절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서강 언덕배기 인가가 드문 곳으로 들어가 양계를 시작한다. 천상 글쟁이였던 그에게 양계는 큰 이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 듯하다. 다음의 글에는 생활인으로서의 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수입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매일반이다
모이 한 가마니에 사백삼십 원이니
한 달에 십이, 삼만 원이 소리 없이 들어가고
알은 하루 육십 개밖에 안 나오니
묵은닭까지 합한 닭 모이 값이
일주일에 육일을 먹고
사람은 하루를 먹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은 봄에 알을 많이 받을 것이니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봄에는 알 값이 떨어진다
여편네의 계산에 의하면 칠할을 낳아도
만용이(닭 시중 하는 놈)의 학비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한다
나는 점등을 하고 새벽 모이를 주자고 주장하지만
여편네는 지금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니 사백삼십 원짜리 한 가마니면 이틀은 먹을 터인데
어떻게 된 셈이냐고 오늘 아침에도 뇌까렸다
이렇게 주기적인 수입 변동이 날 때만은
네가 부리는 독살에도 나는 지지 않는다
무능한 내가 지지 않는 것은 이때만이다
너의 독기가 예에 없이 걸레 쪽같이 보이고
너와 네가 반반―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보려무나!]‘ ― 「만용에게」 전문(1962)
이명찬 덕성여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김수영 시인이 가족과 양계를 하게 된 이 시기에 전에 없는 건강함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눈>, <폭포> 같은 작품들로 한국시인협회가 제정한 시협상의 제·1회 수상자가 되는데, 이것은 양계로 인한 생활의 안정, 가족관계의 회복, 자연과의 만남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시인 입장에서는 닭을 돌보느라 시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 ‘시를 배신한 것처럼’ 느껴졌던 듯하다.
<구름의 파수병>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도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1956)
생활을 위한 방편으로 불가피하게 생업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 하릴없이 파수병 같이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신세. 시에만 전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시인 김수영은 이후에도 주옥같은 작품들을 써내고 1968년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풀’을 완성한다.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눕는다.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라는 것이 하나의 유일한 해석이 존재할 수 없을 텐데, 시인이 경험했던 사회상, 그리고 시인이 걸어온 개인의 삶 역시 깊게 투영되어 있으리라. 양계로 생업을 이어나갔던 김수영 시인에게, '시'는 별도의 어떤 작업이라기보다는 그 자신과 하나가 된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술을 그렇게 좋아했던 그는 다음 날 숙취를 달래는 방법으로 시를 쓸 정도로 시 쓰기의 열정이 가득했다. 그가 혹시 전혀 다른 생업을 가졌든, 또는 백수로 경제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든, 그에게 맞는 또 다른 시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보면 이런 생업을 갖는 게 좋으냐 저게 좋으냐 라는 질문보다는, 가장 나에게 충실한 하루하루를 사는 길이 무어냐고 묻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글쓴이: 이재윤
늘 딴짓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고를 나와 기계항공 공학부를 거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지만, 동시에 인디밴드를 결성하여 홍대 클럽 등에서 공연을 했다. 영혼에 대한 목마름으로 엉뚱하게도 신학교에 가고 목사가 되었다. 현재는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작은 문화공간을 운영하며 Art, Tech, Sprituality 세 개의 키워드로 다양한 딴짓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자음악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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