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집단 성착취('n번방') 사태, 교회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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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게임으로

“이거 게임이야.” 

‘n번방’ 운영자 갓갓이 또 다른 방의 운영자 박사 조주빈에게 한 말이다. 10, 20대 여성들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고 강요하며 노예로 삼아 성 착취 영상을 찍는 등 폭력을 일삼았던 일들을 갓갓 게임이라 불렀다. 그 장면을 보기 위해 수십 만의 남성들이 모여들었다.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의 비용을 치르며 자료에 열광하던 이들은 갓갓이 세팅한 게임판의 게이머들이었다. ‘n번방’ 참여자들은 그 판에서 타인을 향한 폭력과 착취를 웃고 즐기는 유희를 즐겼다. ‘갓갓은 자신이 짠 판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체험하는 놀이의 유희를 즐겼다. ‘갓갓이 이 일을 재미로 했다면, ‘박사 조주빈은 돈이 목적이라고 밝혔다.1 여자는 돈이 돼야한다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폭행, 사기, 협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출처: 머니투데이

 

이른바 ‘n번방이라 불리는 디지털 집단 성착취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500만이 넘는 역대 가장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방증해준다. 피해자와 가해자 중에 미성년자가 다수 사건에 개입되어 있고, 폭력의 행태나 정도가 잔인하며, 솜방망이 처벌에 힘입어 디지털 범죄가 날로 진화하고 있음이 밝혀지면서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점은 가해자 중 상당수가 이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가해자가 자신이 저지른 일이 범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피해자들이 겪을 고통에 무감각하게 일관하거나, 피해자와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또다시 성착취 영상을 찾고 있다. 일례로, ‘박사가 여성 피해자들을 일컬어 노예라 부른다면, 비용을 지불하고도 영상을 받지 못한 가해자들을 일컬어 피해자라고 부르는 지점은 주의 깊게 볼 부분이다. ‘박사를 비롯해 많은 가해자들은 폭력의 실제 피해자들을 향한 공감이나 죄책이 작동하지 않았다.2 개인정보 유출을 빌미로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피해자와 달리 익명성과 폐쇄성이 담보된 사이버 공간을 매개로 남성 가해자들은 유희를 즐겼다. 장차 이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갈 청소년·청년들이 자신의 만족과 욕구만 충족되면, 비용만 지불하면, 혹은 그럴만한 흠이 있다면, 타인에게 폭력이 가해져도 상관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탈이 가능한 공간을 찾아 나서는 존재들은 현실세계와 달리 디지털 공간에서 극한의 자유와 절대적 권력을 부여받고, 그 힘으로 즉각적인 만족을 충족시키는 데 익숙했다. 사이버 상에서 타인을 가상의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버리고, 거리감을 두고 그들의 고통을 소비하면서 폭력의 무게를 가볍게 느끼도록 했다. 

 

폭력을 게임으로 만들기까지

최근 드러난 계보에 의하면, 2018년 말, ‘와치맨이 설계한 판에 2019 2 갓갓이 본격적으로 비밀 대화방을 만들었고, 이후 켈리’, ‘체스터’, ‘박사가 연이어 새로운 방들을 개설하면서 점차 세력이 확대되었다. 공범자들도 있지만, 좀 더 많은 자료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지인들의 성착취물을 풀거나 자신이 구입한 영상을 재공유하는 일반인들도 적지 않았다. 제작, 유통, 소비 그 어느 지점에서건, 무엇 때문이건 이들 모두는 마치 괴물처럼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대하듯 살아있는 인간을 노예 삼아 몇 푼 돈에 조종하며 착취하고 팔아넘겼다.

그런데 가해자들이 정말 ‘괴물인가?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꿔 물을 수 있다. 이 일은 박사 조주빈과 갓갓과 같은 소수의 몇몇에만 국한되는 일인가? 디지털 성착취 범죄는 디지털 미디어의 무한복제와 재유포가 가능하다는 특수성을 고려해 관련 자료를 기획, 촬영, 물리적 폭력과 협박에 가담하는 이들 뿐 아니라 성착취물을 구입하거나 소지, 유통한 이들까지도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더 근본적인 지점은 이번에 드러난 ‘n번방’ 사태 하나로만 사안을 축소시키거나, ‘괴물의 범주를 일부 가해자의 문제로 여길 수 없으며 오히려 여성을 존엄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남성중심적인 여성혐오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데 있다. 성폭력을 성차별과 함께 다루는 것처럼, 디지털 상의 성착취 역시 디지털 차원의 특수성과 물리적 성폭력, 여성혐오의 문제가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

우리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폭력을 상품화하는 것이 만연한 사회를 살아간다. 타자를 조종하는 남성적 권력을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한다. 한 인생을 망가뜨린 폭력에 대해 남성은 그럴 수 있다며 기껏해야 한순간의 일탈이나 실수로 여기기 일쑤다. 폭력적, 소비적 일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묵인하고 놀이문화의 일환으로 포함시키는 사회적 분위기는 범죄의 확산에 기여해왔다. 그리고는 원인을 피해자 여성에게 돌리곤 한다. ‘n번방’ 사태와 같은 남성들의 성착취 문화는 놀이가 아니다. 놀이의 긍정적 속성이 소거된 폭력의 향연일 뿐이다. 폭력과 성적 착취, 남성성의 과시와 재화의 교환이 빚은 타락은 비단 은폐된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서만 국한되지 않으며, 현실세계와 밀접하게 만난다. 오히려 이러한 놀이의 타락이 현실세계의 타락에서 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 대부분이 10~30대라는 점은 이들이 유별난 괴물이나 악마이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된 범죄들이 학습된 결과가 ‘n번방’ 사태로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뿐, 이런 일은 계속되어 왔다.

소라넷 폐쇄 이후 다크웹으로그리고 다시 보안이 철저한 텔레그램으로 이동한 이들은 보다 대담하게 성범죄를 기획하고 촬영, 소지, 유포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피해자가 음란물 유포로 처벌을 받고 2, 3차 가해를 받는 사이, 가해자는 앞날이 창창해서”, “초범이라서”, “호기심 때문에”,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풀려나거나 아주 미비한 처벌을 받았다.3 여성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착취 범죄는 집단적으로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개인에 의해서도 빈번하게 벌어졌지만, 지금까지 계속 되풀이된 방만한 처벌은 텔레그램과 가상화폐 등 디지털 매체의 접근성, 익명성, 폐쇄성과 만나 ‘n번방’ 사태가 벌어지게 한 충분조건이 되었다. 그리고 배후에는 생명 경시와 물질만능주의가 있다.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온 사회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고통받는 가운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n번방’ 사태를 해결되어야 할 주요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서지현 검사 이후 더욱 촉발된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얼마나 만연한지를 일깨웠으며,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켜켜이 쌓이면서 현재 ‘n번방’ 사태를 둘러싸고 소수의 운영진뿐만 아니라, 성착취물을 구입, 시청, 소지, (재)유포한 다수의 참여자 모두 가해자로 인식하고,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한국교회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교회가 이에 관심 가지고 목소리를 내며 참여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최근 확산된 미투 운동에서 드러난 것처럼, 2010~2016년 성범죄로 검거된 전문직 중 종교인들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는 경찰청 자료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4 교회 역시 심각한 성폭력의 현장과 무관하지 않다. 만의 하나라도 ‘n번방’ 피해자나 가해자 중에 기독교인이 포함됐다고 하면, 더욱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 안팎에서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에 대해서 엄격하게 제재하고 피해자에 대해서 보호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책임이 있다. 교회는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책임의 영역으로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다 근본적으로 교회는 지금껏 성폭력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던 전통적인 성서 해석과 교리들을 성찰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기독교 신학은 전통적으로 여성을 열등하고 보조적인 존재로 위치시키며,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위계적으로 규정해왔다. 또한 여성의 몸을 남성을 유혹하는 성적인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성차별적 문화는 폭력을 남성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남성의 폭력을 수용하는 결과를 낳곤 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적 가르침 속에서, 여성과 남성을 막론하고 살아있는 인간의 신체는 항상 인간 자체이며 존중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목적인 동시에 더 높은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 결코 누군가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본회퍼는 성폭행, 착취, 고문 등 인간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창조와 함께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의 신체를 착취하고 소유물로 삼는 것은 노예화나 다름없으며, 이것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리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것이다.6

이번 사태는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결국 한계가 없는 놀이문화의 폐해가 어디까지인지를 수많은 사람들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비용을 지불하면 응당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배금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권력이 되고, 생명을 경시하며 약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시킨다. 타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자신의 쾌락을 취한다. 반면, 하나님은 당신의 생명을 버리심으로 인간의 생명을 구하셨으며, 누구보다 약자의 편이 되어주시는, 사랑이 많으시고 공의로우신 분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이유다.( 6:24)

이제 교회는 하나님이 지으신 몸에 대한 바른 성서적, 신학적 이해를 전제로 기독교 영성과 성, 도덕성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생명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 또한, 날이 갈수록 디지털 미디어의 힘이 강력해지는 가운데,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올바르게 이용할 것인지, 삼위일체 하나님을 따라 서로를 존중하며 연합하는 친밀한 관계의 회복이 삶 가운데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지 일깨우며 폭력과 혐오, 차별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본회퍼는 하나님의 계명의 구체적인 내용 안에서, 그것을 통해 가능해지는 인간의 자유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강조한다.7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인간이 존엄함을 잃지 않고 생명으로서의 삶을 함께 살아가도록 세상을 변화시키는 편을 택하기를, 피해자들의 곁에서 함께 목소리 내는 것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가 재물이나 욕망, 쾌락이 아니라 생명의 하나님 한 분을 주인으로 섬기는 길이다.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각주

1 김남이, ““박사 하이갑자기 나타난 ‘n번방갓갓 이건 게임이야”,” <머니투데이>, [게시 2020.03.26.]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32614281068108

2 “[단독] “기자의 망상”... 끝까지 뻔뻔한 n번방 박사의 단톡,” <국민일보>, [게시 2020.03.23.] http://m.kmib.co.kr/view.asp?arcid=0014394690

3 캐나다와 호주 등 국제적으로 서버를 옮기며 운영했던 소라넷은 불법촬영물, 리벤지 포르노 뿐만 아니라 약물을 이용한 강간 등의 범죄영상까지도 제작 및 공유되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1999년 만들어진 이래 2016년 폐쇄할 때까지 17년 동안 백만 명이 이용한 소라넷 운영자가 징역 4년을 판결 받았고, 그것도 6명 중 3명은 아직도 신병 확보가 안 된 상태다. 2013년 등장해 제2의 소라넷으로 불리는 회원수 122만의 ‘AV스눕은 회원 등급을 올리기 위해 불법 촬영물을 경쟁적으로 올리도록 했는데 수십만 건의 영상이 공유됐지만 운영자는 징역 16개월 선고를 받았을 뿐이었다. 비슷한 시기 등장한 사이트 꿀밤이나 세계 최대 규모의 다크웹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웰컴투비디오운영자 손 모씨는 약 25만 건에 이르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유통시킨 죄로 한··영의 국제공조수사로 검거되었다. 검거로 신생아나 실종신고된 아이들이 구출되었으며, 그중 신체 훼손이 심각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징역 16월을 선고 받아 곧 풀려날 예정이다. 최근 성폭력에 가담한 연예인 '승리'도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4 도재기, “[미투] 결국 터진 성직자 성폭력... ‘올 것이 왔다떨고 있는 종교계,” <경향신문> [게시 2018.02.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252239015&code=940100

5 본회퍼, “역사와 선[2],” <윤리학>, 319.

6 위의 책, 254-55.

7 위의 책,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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