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사님은 어느 당을 지지하세요?
부교역자 사이에는 족보처럼 내려오는 교역 생활의 철칙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정치적 중립성이다. 만약 교인 중에 누군가 “전도사님은 (혹은 목사님) 어느 당을 지지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렇게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천당을 지지합니다.” 아재 개그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교회 내에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야기했는지를 보여주는 심각한 생존법이요 처세술의 하나이다.
교회와 국가 또는 교회와 정치라는 주제는 매우 오래된 신학적인 주제이자 여전히 논란이 많은 내용이다. 오늘날 ‘정치적’이라는 형용사가 가지는 복잡 다의적인 상황을 넘어가더라도, 정치적 교회 또는 정치적 목사라는 명칭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의미와 사례들은 우리에게 매우 불편한 경험들을 떠오르게 한다. 정치적인 불안정과 이념적인 대립이 여전히 심한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교회나 목회자 개인이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은 여러모로 여전히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교회는 우리와 약간 상황이 다르다. 물론 독일은 원내 제일 정당이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DU, 약칭 기민당)이라는 이름을 내걸 만큼,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정치적 기여 및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참여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 독일교회(EKD)의 총회장인 하인리히 베드포드 슈트롬(Heinrich Bedford-Strohm)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적으로도 참여해야만 한다." ("Wer Gott und seinen Nächsten lieben will, muss sich auch politisch engagieren")라고 강력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독일교회가 생각하는 교회의 정치적 입장과 참여는 최근 우리의 부정적인 경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때문에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둔 이 시점에서 독일교회가 생각하는 교회의 정치적 입장과 참여를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2. 민주적 참여의 장으로서의 교회
독일교회는 국가 또는 정치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1517년 종교개혁 이후로 교회는 독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주체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난 500여 년의 시간 동안 독일교회의 정치참여는 수없이 많은 영광과 타락 그리고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었고, 이에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독일교회에서는 하노버에서 “일치와 갈등: 정치는 토론이 필요하다“ (Konsens und Konflikt: Politik braucht Auseinandersetzung)는 제하의 10가지 명제로 구성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중에서 이번 호에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10번째 항목인 "민주주의적 참여의 장으로서의 교회" (Die Kirchen als Orte demokratischer Beteiligung)에 수록된 내용이다. (원문주소: https://www.ekd.de/konsens-und-konflikt-10-die-kirchen-als-orte-demokratischer.htm)
성명서에서는 교회의 민주주의적 책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교회가 복음에서 말하는 평화와 화해의 정신에 입각해 사회적 불안을 진지하게 이해하고, 사회적 담론을 이끌며,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해야 하고 또 교회 스스로가 그렇게 하기를 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교회의 근거요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선포하며, 모든 사람을 믿음과 평화와 화해의 길로 부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회는 이러한 복음에 입각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정과 평화를 경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한 방법은 대단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성명서의 취지다.
그러면서 성명서는 독일교회의 정치적 위치를 재고하고 있는데, 독일교회는 약 2천3백만 명의 신도를 가진 거대하고 다양한 사회적 구성원들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독일의 문화와 사회가 기독교적인 문화와 전통의 유산에서 비롯되고 발전되었음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사회적 주류로서의 기독교나 변화의 주체로서의 교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책임적 의식을 가지고 다른 종교나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성명서에서는 교회의 정치적 참여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과제를 말하는데, 첫 번째는 교회가 정치적 담론의 도덕적이고 윤리적 차원에 기여하는 일이다. 모든 시민들이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결국 이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이다. 따라서 교회는 다양한 사회적 뿌리를 가진 성도들의 모임인데, 본 성명서는 교회가 예배와 교제 그리고 모임 등을 통해서 독일사회의 정치적인 문화와 공동체적 정신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 스스로가 민주적 절차와 질서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개혁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양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적 대립과 논쟁의 과열을 막고, 법률과 윤리에 의거해서 담론 윤리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적인 교회의 정치적 책무라는 것이 본 성명서의 입장이다. 즉 교회의 정치적 역할은 무엇보다도 민주적이고 법치적인 사회적 협의의 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두 번째로 교회는 복음의 정신에 입각해 사회의 소수자들을 대변하고 그들의 인권을 수호하고 발전시키는데 앞장서야 하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난민과 이주민들을 돌보고 그들의 인권과 정치적인 권리를 확보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본 성명서는 강조하고 있다. 특별히 독일에서 난민 문제는 메르켈 총리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나아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계기가 되기까지 했던 매우 논쟁적인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명서는 이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과 충돌이 불가피하며, 교회가 이를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결론적으로 앞서 베드포드 슈트롬 총회장이 말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적으로도 참여해야만 한다."는 명제의 저의는, 이념적이거나 정당 정책 및 노선을 염두한 발언이라기보다는, 교회의 사회적 자리와 정치적 역할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치적 역할이라는 것은 민주주의적 대화의 장으로서의 교회와 사회적 약자의 돌봄과 보호라는 역할로 요약해볼 수 있다.
#3. 선거를 앞두고 실시하는 교회의 민주주의 교육
앞서 살펴본 성명서가 독일교회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참여의 의의와 입장을 보여준다면, 실제적으로 선거를 앞두고 독일교회가 어떠한 활동을 하는지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별히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지역교회(Berlin-Brandenburg-schlesishce Oberlausitz)에서는 2019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교육을 실시했다. 선거교육에는 선거의 일정과 규칙에 대한 안내가 있었고, 독일 정부에서 발행한 선거공보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우리가 볼 때는 선거관리위원회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은데, 그런 일을 교회에서 한 것이다. 주교회(EKBO)는 이러한 활동의 근거로, 교회 역시 함께 사는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 교인들이 정치적인 토론과 자유로운 의사소통 및 결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교회의 이런 활동의 목표는 민주적 사회를 더욱 투명하게 하기 위해, 사실에 근거한 정보의 교환과 기독교 신앙에 적합한 후보 및 공약을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주교회는, 다양한 선거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선거를 앞두고 그리스도인 유권자가 생각해볼 만한 글을 발행했다. 책자의 제목은 ‘용감하게 싸우라 – 존중과 토론과 함께’ (Mutig streiten – mit Respekt und Argumenten) 였다.
(https://www.ekbo.de/fileadmin/ekbo/mandant/ekbo.de/3._THEMEN/Kirche_und_Politik/Mutig_streiten/Mutig_streiten._Mit_Respekt_und_Argumenten._Orientierungshilfe_der_EKBO.pdf)
책자의 취지는, 앞서 살펴본 독일교회(EKD)의 성명서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음의 정신을 실천하고 ‘인정과 화해와 평화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참여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해당 주교회(EKBO)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적 입장은 바로 ‘함께 사는 것’이었다. 책자에서는 갈라디아서 3:28을 근거로, 복음의 정신은 모든 종류의 경계와 구분,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종류의 차별적 관념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마 7:1-2)고 강조했다. 또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인은 의를 위하여 울고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밖에도 이 책자에서는 여러 성경구절을 들어, 이 말씀이 오늘날의 정치적 환경에서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실현되고 실천되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성서적 근거들을 제시한 뒤, 책자에서는 실제적으로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토론과 담론을 어떻게 인격적이며 윤리적으로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한 대화의 실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후보자를 만나면 어떻게 말하고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를 소개하는 지점이다. 교회가 강조하는 정치적 토론의 자세는 경청과 존중 그리고 사실에 근거한 질문이다. 그리고 약 8가지의 정치적 토론을 분류하고 이에 맞는 모범 질문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후보자와의 공청회에서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환경보호의 관점에서 당신과 정당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가정 정책에는 어떤 공약들이 있습니까?"
"사회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까?"
책자에는 위와 같은 질문 예시들이 30가지 정도 나와있다. 질문의 내용이나 형식은 마치 기자가 후보자를 취재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이다. 이러한 질문의 형식 및 예시는 사회의 담론 윤리 및 토론 윤리의 민주적 장을 형성해야 한다는 독일교회(EKD)의 기본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실천적 노력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교회가 정치적 토론 및 사회적 담론의 윤리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도와 방향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4. 독일교회의 정치참여의 어려움과 비난
독일교회에서는 목사가 특정 정당에 가입하고 정당활동을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심지어 지난 3월 15일 열린 독일 바이에른 주의 지방선거에서는 총 12명의 목사들이 나와 각 지역의 후보자로 지원하기도 했다. 이중에 4명은 실제로 교회에서 시무하는 담임목사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독일교회는 교회와 목회자의 정치참여가 아주 자유롭게 보장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독일의 대부분의 주교회에서는 목사가 선거에 참가하고자 한다면, 3개월 전에 목사를 그만두거나 휴직을 해야 한다. 즉 목사로서 교회에서 설교나 성찬 집례, 결혼식 주례나 장례예식을 인도할 수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독일 헌법이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목사의 직분과 직업적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이 상충할 수 있으며, 나아가 교회 공동체에 분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후보자로 나선 목회자들 중에는 이러한 교회법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문제가 추후에 어떻게 개선될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이다.
또한 교회의 정치적 참여에 대해서도 사회적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교회의 정치적 참여는 주로 규범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차원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사회의 다양한 법적, 경제적, 의학적 등의 전문적인 문제에 대해, 교회가 교리적이고 교조적인 주장을 일삼는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극단적으로 한 정치학자는 교회는 이미 ‘죽은’ 조직인데 어떻게든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고 비난하는 기사도 있다. 역시 정치가 있는 곳에 논란이 없을 수 없다.
그럼에도 독일교회는 여러 가지 정치적 현안에 지속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최근 독일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치적 호소에는 가장 먼저 난민에 대한 구조 및 수용에 대한 입장이고, 다음으로는 환경보호와 보존에 대한 요청이다.
#5. 교회와 정치: 어려워도 가야 할 길
그러나 가시적 또는 현실의 교회란 마치 이미 천국에 있는 것 같은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아니며, 이 세상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던 상관없이 편안한 종교적 행위를 제공하는 백화점으로 존재하는 곳도 아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따라 끊임없이 이 세계에 적합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방법을 찾고 추구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본질적인 차원에서, 교회는 당대의 현실인 정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본질에 따른 교회의 사명은 ‘정치적인 교회를 만들자는 뜻’이 아니라, ‘세상을 더욱 깨끗하고 정의롭게 하는 힘’으로 교회가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한 요청이다.
한국교회는 여러모로 한국의 근현대사와 그 맥을 같이 해왔다. 그중에는 당시 모두에게 외면을 받았으나 훗날 높게 평가받는 정치적 참여도 있었고, 그 반대로 오히려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을 추락하게 만드는 행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독일교회 또한 마찬가지다. 특별히 제3제국 당시 히틀러의 극우적인 민족주의 광풍에 독일 그리스도인 연맹(Deutschen Christen, 약어 D.C.)이 지대한 협조를 했던 것은, 독일 교회사에서 지울 수 없는 죄악이었다. 동시에 당시 교회의 이러한 극우적 풍조에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 약어 B.K.)의 활동은 새로운 신학의 방향과 교회의 길을 제시했고, 이는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 되었다.
교회는 자신의 정치적 잠재력을 인식해야만 한다. 한국의 교회는 비록 개교회(個敎會) 중심의 수많은 교단으로 나뉘어 있지만, 그래도 1천만 명이상의 교인을 가진 거대한 사회적 구성원이다. 교회가 특정한 정치적 성향이나 진영의 논리에 따라가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고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잠재력, 특히 대한민국 사회를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롭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사회적 구성 주체로서의 자의식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어리석고 태만한 일이라 하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인 목사나 정치적인 교회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가 더 건강하고 윤리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참여하는 교회의 민주주의적 의식과 자세가 필요하다. 그럴 때에 교회가 참으로 이 땅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용
독일 빌레펠트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Ruhr Universität Bochum에서 조직신학과 기독교 윤리 박사과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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