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으로 경계를 허물다 - 책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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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캐버너는 가톨릭 신학자로 정치 신학과 기독교 윤리, 교회론 분야에서 새롭고 독특한 해석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상가이다. 캐버너는 기독교 윤리학자로 유명한 듀크 대학교의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지도를 받아 「피노체트 치하 칠레에서의 고문과 성찬례」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1996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독창적인 박사 학위 논문 제목만 봐도 그가 정치, 윤리, 그리고 기독교 성찬에 관심이 있으며 또한 그러한 주제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급진 정통주의 신학 운동을 대표하는 학자로도 알려져 있는 캐버너는 2019년 현재 드폴 대학교 교수로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고, 또한 세계 가톨릭 신학 연구소 소장도 맡고 있다.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근대의 신학-정치적 상상과 성찬의 정치학』은 신학과 정치, 그리고 상상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한국어 번역본은 ‘상상’이라는 단어가 주제목이 아닌 부제목에 들어가 있지만, 이 책의 원제는 "Theopolitical Imagination: Christian Practices of Space and Time"으로 주제목의 두 단어 중 하나가 ‘상상’이다. 캐버너는 이 책을 통해 교회와 정치, 혹은 신학과 정치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묻는 이들에게 상상이라는 연결 고리를 제시한다. "정치는 상상의 실천이다"라는 명제로 시작하고 있는 이 책은 기독교 신학이 “그리스도교 이야기에 뿌리내린 다른 종류의 정치적 상상을 발휘하는 작업”을 통해서 정치에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한다.(12) 

신학이 정치를 논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하는 껄끄러운 장애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대 국가 운영의 근간처럼 여기지는 제정 분리의 원칙이다. 캐버너는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제정 분리의 원칙을 넘어서 신학이 사회적, 정치적 성격을 회복하는 데 논리적 근거를 확보하는 데 할애한다. 캐버너는 명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성격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82) 캐버너가 제정 분리의 원칙을 넘어서기 위해 취하는 방법은 ‘신화 깨기’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의 나뉘어져 있는데 각각의 주제는 제1부 “국가가 구세주라는 신화”, 제2부“시민 사회가 자유공간이라는 신화”, 제3부 “세계화가 보편화라는 신화”이다. 캐버너는 국가 권력에 의해 사사화(privatization)되어 종교 영역으로 갇혀 버린 그리스도교를 구해 내기 위해, 세 가지 신화가 모두 허구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고발한다. 

제1부 “국가가 구세주라는 신화”에서 캐버너는 국가의 종교적 성격에 주목하면서 국가가 사람들에게 구세주 역할을 하려고 하지만 이런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특별히 캐버너는 근대 국가가 형성될 시기에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자세하게 고찰하는데 이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 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에 종교가 전쟁을 일으켰고 이 혼란과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구원해낸 것이 바로 국가라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캐버너에 따르면 이것은 조작된 사실이며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하면 가짜 뉴스이다. 캐버너는 종교 전쟁은 국가의 탄생을 요구하는 사건이 아니었으며, “종교 전쟁은 그 자체가 국가의 산고”였다고 지적한다.(46) 그리고 그는 스스로 구세주 행세를 하고 있는 국가의 한계를 주목한다. 국가가 공통된 목적이 없는 시민들의 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이 ‘폭력’이기 때문에 캐버너는 교회가 이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대항-정치의 방법은 ‘성찬’으로, 캐버너는 화해를 요구하는 성찬은 폭력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적 통합을 이루려는 국가의 잘못된 질서 유지 방법을 대체할 수 있는 실천이라고 단언한다.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는 시민 사회가 왜 자유 공간이 될 수 없는지, 그리고 세계화가 보편화라는 신화가 가지고 온 부작용이 무엇인지 분석하면서 그 대안으로 거듭해서 ‘성찬’을 강조한다. 캐버너는 ‘공적이라는 것’과 ‘공간’의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교회야말로 진정한 ‘공적 공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교회에서 거행되는 성찬이 정의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가 있는 활동으로 새롭게 장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153) 이어서 그는 세계를 보편화된 장소의 집합으로 파악하는 세계화가 오히려 파편화된 주체를 생산할 수 있음을 비판하고, “장소 그 자체가 아니라 장소에 대한 특정한 공간을 운영하는 수행 이야기”인 성찬이야말로 진정한 보편성을 구현할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한다.(185) 

캐버너는 이 책을 통해 교회 안에 갇혀 있는 그리스도교를 세상으로 불러내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자신들의 교리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고 사회에 혼란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주홍 글씨가 새겨진 채 정치로부터 격리되고 국가의 감시를 받는 하나의 종교 집단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은 교회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죄책감으로 인해 쭈뼛쭈뼛하고 있는 수많은 교인, 목회자, 신학자를 세상으로 나와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발휘해야 할 정치적인 영향력은 교회가 국가의 정치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찬의 상상을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캐버너의 주장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솔깃한 제안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죄책감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선도적 역할을 감당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을 수 있다.

이 책은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도 알려 준다. 일요일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는데 그 일이 단지 그들 스스로의 마음의 안식만을 위한 것이라면 더 큰 사회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일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이고 이기적인 활동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찬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을 통해 새로운 공적 공간을 창조되고 그 공간이 확장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면 교회 바깥에서 그리스도교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세상에서 신학이 점점 퇴출되고 있다. 신학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은 신학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신학이 정치와 무관한 것이 되어야 한다면 점점 그 영역을 넓혀 가는 정치에 의해 신학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는 신학과 정치의 새로운 관계 맺음을 제안한다. 그것은 단지 신학이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계에 부딪혀서 더 이상 구원의 메시지를 줄 수 없는 정치에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해 서로 상생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이 책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교회 안의 사람들과 교회 밖의 사람들 모두가 주목해야 할 책이다. 

설왕은

재밌게 살고 싶은 신학자. 신학을 배움으로써 삶도 변했고 사람도 변했다. 그래서 이 좋은 신학적 지식과 지혜를 많은 사람과 나눌 기회를 찾고 있다. 미국 드류대학교(Drew University) 조직 신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Ph.D.)를 받았고 이웃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한 책 “사랑해설”과 “주기도문으로 응답하라”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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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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